빙하 장례식
제19회 국제 지구사랑 작품공모전 동상 수상
by 바다시인 우재 박종익 Oct 12. 2023
빙하 장례식
우재(愚齋) 박종익
그린란드에서 날아온 부고장을 받았습니다
실종된 그녀의 행적은 알 수 없었고
그 흔한 증명사진 한 장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북반구 얼음벼랑이었던가요
일만 년 하얀 눈물을 증인으로 불러온
매머드*의 슬픈 장례식에 갑니다
얼음관 속에 누워있는 시조새가
말이라도 붙이면 새파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얼음산이 흰 이빨을 갈며 부르는 장송곡이
산맥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동맥을 자르고 봉우리를 깨뜨리며
속살을 파헤치는 일은
도굴범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가문비나무 아래서 늑대가 울고
붉은 보름달 차오르면
칼바람이 발톱을 세우고, 집 나온 별들이
둥근 이 땅에 잠들겠지요
빙하도 야수의 눈을 뜨고 앙갚음이란 단어를
기억할까요
이글루를 도둑맞은, 저 오 갈 데 없는 북극곰이
오로라의 희미한 증언을 실마리로
빙하 조각배를 타고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수십 번도 더 그려보는 범인의 몽타주
천 개의 눈빛을 가진 짐승의 머리
대왕고래보다 더 큰 몸통에
가시 지느러미를 붙여 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꼬리가 몇 개인지 알 길이 없네요
분명 눈 폭풍보다 더 차가운 심장과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범인의 모습은 점점 더 무섭고
고약한 얼굴로 변해갑니다
*매머드 : 빙하기에 멸종된 긴 코와 긴 어금니, 털로 덮인 코끼리와 비슷한 대형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