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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마사지

2020 <문학秀> 창간호에 원고발표

디지털 마사지


우재(愚齋) 박종익


몸 쑤시고 뒷덜미 뻐근하면

아로마 향기 묻어 나오는

하얀 담벼락에 얼굴을 새긴다

기쁨으로 밑칠해보고

슬픔을 덧칠하기도 한다

렘브란트는 어림도 없지만

백설 공주 거울 속에 나올법한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뽀송뽀송한 살결, 북한산 칼바위 턱선

사방을 휘저어도 잡히지 않는 허리선

의사 면허증 없어도 최고 성형전문가다

작품 아래에 쌓인 꽃다발 위로

신비한 얼굴들을 감상하고

마음에 들면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

디지털 거울에 비친 자화상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어도

왔다 갔다는 징표는 그지없이 반갑다

딱딱한 얼굴에 디지털 상형문자를 그려 넣는 순간

우연한 선물 같은 시간이 쌓이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작품 더미 위에서

내일도 전시회장은

온몸의 세포들을 간지럼 태우며

말랑말랑한 생기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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