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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일상 Jul 01. 2024

염좌와 느리게 힘주어 살아가기

염좌와 함께 걷기

할아버지가 앉은 자리를 끄적끄적


습관성 발목 염좌가 시작된 건 지난 여름이었다. 아이들의 방학을 맞아 계곡과 캠핑장을 자주 찾았던 발목에 결국 무리가 왔다. 조금 아프려니 생각하고 운동을 지속했다. 요가학원의 문턱을 밟는 순간 심상치 않은 고통이 전해져 왔고, 그럼에도 참고 발레요가 수업에 참여했다. 동작을 몇 분 지속하지도 못한 채 주저 앉고 말았다.

"염좌예요. 병원 치료 잘 하면 낫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건 아플 때는 발을 안써야 돼요. 한 1주일 발목을 쓰지 마세요."

생각보다 통증은 계속되었지만, 1주일 정도 쉬고 치료 받으면 된다는 의사선생님 말을 너무 믿어버린 것일까. 두 세달이 흘러도 발목은 좋아지지 않았다. 다만, 꼬박꼬박 챙겨 먹은 진통소염제가 통증을 잠시 잊게 할 뿐이었다.


좋아졌다 싶으면 또 염좌가 찾아 왔다. 걷다가 바닥만 잘못 디뎌도, 발에 무언가가 잘못 차이거나 살짝만 걸려도 염좌는 자꾸 내 신체에 드나들었다. 어느새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손님이 되었다.

문제는 바깥으로 돌아야 하는 나의 외향형 에너지였다. 나도 모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답답함에 우울감까지 들었다. 1주일에 한번씩 하는 배구며, 평일 저녁이면 꾸준히 갔던 요가학원까지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치료였다. 정형외과 치료를 받고, 한의원 치료도 꾸준히 받았다. 일을 할 때도 가급적 발을 덜 쓰려고 노력했다. 족욕도 열심히 했다. 치료를 열심히 한 가장 큰 이유는 얼른 나아서 다시 나다니고 싶은 욕구였다.


어느새 호전된 발목에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했다. 다시금 예전처럼 하루 12000보 이상 걷기를 시작하고 앉아 있는 것을 기피하며,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캠핑을 다녔다. 바다로 다니고 계곡으로 다녔다. 심지어 가벼운 산행도 했다. 그러다가 자신감이 생겨 2주 연속 장거리로 여행을 다녀왔다. 역시 여행은 많이 걷고 바쁘게 하루를 채우다 보니 발목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살짝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습관적으로 소염제를 한 알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장기전 돌입을 예고하듯 쉬이 좋아지지 않았다.

'착각이었구나. 완전히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발을 안쓰고 오랜 기간 침체기를 가질 수는 없었다. 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위해 집안일을 해야 하며 나 또한 정서적으로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숨길 수 없는 진실은 앉거나 누워 있으면 우울해 지는 나의 성향이었다. 처음 며칠간 퇴근하고 아픈 발을 테이블에 올리고 쇼파에 누워 있노라니 마음까지 병드는 것 같았다. 몸 전체가 쳐지고 아파질 것 같아 끝도 없는 슬럼프에 빠져 들었다. 타이레놀이 위로가 되었다. 한의사선생님은 진통제를 먹으면 발이 아픈 것도 모르고 무리해서 쓰게 된다고 가급적 먹지 말라고 했고, 정형외과 선생님은 소염기능을 하기 때문에 먹어서 염증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난 후자를 택했다. 염좌니까 염증을 다스려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복용한 소염제가 발목에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나을 때가 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발을 아끼지 않았다. 진통제를 계속 먹기로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무리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동네도서관에 가볍게 걸어서 다녀오기, 30분 정도 걷기, 아파트 계단 오르기 따위를 하기 시작했다. 몸 속 세포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다만 느리게 힘주어 걷기를 했다. 평소 에너지가 굉장한 나는 주변인들로부터 걸음걸이가 날쌘돌이 같다는 둥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냐는 식의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만큼 남들보다 두 배로 걷고 많이 움직였다. 그런데 발목이 아프니 오랫동안 움직임을 지속하려면 무리가지 않게 천천히 걷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오만하게도 지난 날 느리게 걷는 이들을 돌아볼 새 없었는데, 이제는 보인다. 또 툭하면 오는 염좌를 잘 리고 살아가려면 발목이 아닌 다리와 엉덩이, 배에 힘을 주고 걷는 법을 연습해야 했다. 혼자 터득한 방법이지만 꽤나 운동이 되고 근력까지 키워지는 느낌이다.


느리게 힘주어 걷는다는 것은 내 인생의 속도를 조금 늦추어도 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몇 백번 걷던 길에서, 느리게 걷기를 하고서야 남의 집 담벼락 너머 할아버지의 마당도 들여다 봤다. 할아버지가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쉬고 계시나 보다 했는데, 할아버지는 정성스레 가꿔 모양이 동그란 향나무를 보고 계셨다.

'그래,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혼자 앉아서 나무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있겠지. 지금부터 천천히 속도내며 그 연습을 해나가자.'

주변인들이 언제 쉬냐고 물을 정도로 항상 바쁜 나날을 보내 왔던 나이다. 늘 배움과 경험에 목말라 했고, 그것을 채우느라 이리저리 안다녀 본 곳이 없고 안 배워본 취미가 없을 정도였다. 결혼을 해서도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기에, 어느정도 아이들이 크고 나서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시달렸다. 돈과 에너지가 모두 자녀에게 향해 있는 당연한 현상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염좌가 찾아왔다. 그것도 수시로 말이다. 염좌로 인해 불행하다고 지인들에게 자주 표현하곤 했는데, 오히려 그 속에서 인생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는 요즘이다. 인생은 나에게 속도를 조금 늦추란다. 뭔가를 꼭 배우지 않아도 몸을 돌보는 것 또한 좋은 속도라고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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