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살쪄야 하는데 내가 살찌는 계절
어느 시점부터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으로는 유명 연예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칼로리를 걱정하는 동료 연예인에게 뱉은 일종의 위로의 말로 기억한다. 그 시점부터 이 언사는 급속도로 확산되어 사용되었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야"
케이크를 먹으면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래"
야식을 먹으면서 "맛있게 먹으면 지금도 0칼로리야"
분명 이 구절이 주는 효과는 확실하다. 어떤 고열량의 음식을 먹을 때도 걱정을 덜어준다. 열량 자체는 변하지 않으나 우리의 마음에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모종의 자기합리화 과정은 늘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의 합리성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
위 말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다"라는 명제다. 이를 분해하면 '맛있게 먹다'라는 원인과 '0칼로리'라는 결과과가 도출된다. 즉, 'p이면 q이다'라는 단순한 명제로 전환된다. 이때 '(1) p=맛있게 먹다 / (2) q=0칼로리'로 전환할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을 나눠서 생각한 후 종합해야 한다.
(1) p=맛있게 먹다
분명 '맛있게 먹다'에서 '먹다'는 큰 논쟁의 여지가 없다. 다만 '맛있게'는 다뤄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의미로 '맛있다'는 나의 미각적 취향에 들어맞는 음식을 섭취했을 때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맛을 혀로만 느끼진 않는다. 사람은 맛을 느낄 때 미각 정보와 후각 정보가 모두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맛을 느끼는 과정은 혀에서 받아들인 미각의 신경세포들과 코에서 받아들인 후각의 신경세포들의 반응이 뇌로 전달된 후 종합 및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들이 쌓여 나의 취향이 결정되고, 그 기억에 기반해 현재의 '맛있음'이 판단된다. 결국 내가 '맛있다'라고 생각한 것은 내 오래된 기억에 기반한다. 이것을 취향이라고 불러도 여기에서는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p를 '음식이 내 취향에 들어맞다면'으로 바꿔도 될 것이다.
(2) q=0칼로리
0칼로리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제로 음료수 같은 것이다. 식품위생법상 100ml 당 4칼로리 미만의 열량을 가진다면 0칼로리로 표기할 수 있다. 즉, 0칼로리이기 위해선 음식 자체의 열량이 극히 적어야 한다. 저열량 음식은 100g당 40칼로리 미만이어야 하고, 저당 역시 100g당 5g 미만이어야 한다. 물론 저열량과 저당 음식은 살이 덜 찔지라도 0칼로리는 아니다. 심지어 단백질 음식조차 운동을 하지 않으면 살이 찔 수밖에 없다. 단백질 섭취만으로 살을 뺀다는 의미는 곧 '닭 가슴살 외에 다른 것은 거의 먹지 않는다'라고 해야 한다. 결국 0칼로리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상관없이 음식 그 자체의 요소이다.
(3)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의 대안
결과적으로 '맛있게 먹다'라는 개인적 취향 활동은 '0칼로리'라는 물리적 요소에 영향을 줄 수 없다. 다만 닭 가슴살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이지만 분명 유의미하다. 통상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음식들, 가령 치킨과 피자, 라면, 베이글, 도넛, 케이크 등은 전혀 0칼로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맛있게'의 범주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고열량의 음식을 먹을 때도 맛있다고 느끼지만, 채소와 지방이 없는 고기 등을 먹을 때도 맛있다고 느낀다. 즉, 건강한 음식을 먹을 때도 '맛있다'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치킨, 피자, 라면을 먹어도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야"라는 명제를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0칼로리"라는 명제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맛있게'와 '0칼로리'의 연관성이 없고, 두 명제의 전건이 모두 '맛있게'의 범주에 포함된다면 '건강하게 먹으면 0칼로리'가 실제 그 의미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추석 때까지만 맛있게 먹고, 연휴 끝난 다음날부터 맛있게, 즉 건강하게 먹으면 된다.
다이어트는 항상 내일부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