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기 1일차
대학교 8학기 과정을 모두 마쳤음에도, 졸업은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낸 지 거의 4개월이 흘렀다. 흔히 반 년이 되지 않은 시간은 짧은 시간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으나, 한 해의 3분의 1이라고 표현한다면 공허로 채워진 4개월이란 시간은 경제적으로도 다소 아깝게 느껴진다.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휴식을 하고 싶어서였다. 얼마나 인생을 열심히 살았냐는 타인의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어떻게 살았든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일종의 변명을 첨부하자면 19살까지의 초, 중, 고등학교 생활, 재수 1년, 대학교 2년과 군대 1년 6개월, 다시 대학교 2년의 과정 동안 3개월 이상 쉬기만 한 시간은 없었다. 물론 방학에도 각종 자격증 공부, 전공 공부 등이 채워져 있다. "주말에 쉬잖아"라고 한다면 마땅히 할 말은 없으나, "주말 2일 출근하는 알바를 1년 8개월 했어"라고 반문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직장인이라고 가정했을 때, 휴식할 수 있는 주말은 보통, 토요일은 가족과 놀아주기, 일요일은 다시 돌아올 5일을 위한 체력 보충이 끝일 것이다. 그것이 휴식인가? 그렇다면 나와 핸드폰은 '팔과 다리가 달린 것' 빼고는 큰 차이가 없다.
어쨌든 4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을 '쉬면서' 보내보니 이제 쉬는 것도 재미없다. 주말 알바도 그만둔 채 보냈기에 그간 모아둔 돈을 탕진하다 보니 용돈벌이도 필요했다. 용돈을 받기만 하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적은 돈이더라도 그냥 신경 쓰이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물론 그저 쉬기만 하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공부도 했고, 어쨌든 장래에 필요한 언어 공부도 했다. 당연히 이전만큼 열정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평소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눈길은 주지도 않던 소설도 몇 권 읽었다. 늘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도 브런치를 통해 시도는 했다.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났다. 휴식을 원했던 나와는 다르게 각자 미래를 위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런 동기부여가 부럽기도 했지만 '현재의 순간도 미래의 한 과정이야'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다시 돌아와서, 내가 4개월 동안 얻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쁜 습관을 얻은 것도 많다. 먼저, 밤낮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밤과 아침이 바뀌었다. 기본 새벽 3~4시에 잠들고, 아침 11~12시에 일어난다. 수면시간은 사실 7~8시간으로 남들과 비슷하긴 하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고 한다. 두 번째로 '공허함'이 어색해졌다. 방에서 공부하더라도 음악이 없으면 쉽게 몰입하기 어렵고, 혼자 밥 먹을 때는 유튜브 없이는 너무 심심하다. 이전에는 그저 식탁에 커피 한 잔 올려놓고 공상하는 것도 곧 잘했었다. 세 번째로 집중력이 약해졌다. 책을 몇 페이지 읽다 보면 쉽게 다른 잡념이 끼어든다. 네 번째, 잠에 들기 쉽지 않다. 잠들 준비를 하고 자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다가 '스위치 끄듯이' 잠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더 좋다. 이건 원래 그랬으나 그 정도가 심해진 것 같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기 어렵다.
내가 진단하기에, 이 4가지 질병은 흔히 말하는 '도파민 중독'에서 기인한다. 수면장애와 불안장애, 집중력 저하는 도파민 중독의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 사례는 여타 질병의 합병증으로도 늘 언급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만든 4가지 나쁜 습관이 병원에서 진단받은 제대로 된 병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가 진단할 수 있는 것만으로 나는 병원에 가지 않을 이유가 충분하다. 짧게나마 도파민 중독의 과정을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도파민은 성취와 보상 등에 반응하여, 인간에게 삶의 의욕을 북돋아주는 물질이다. 그러나 사실 도파민은 각성 호르몬에 가깝다. 삶의 의욕을 올리는 것이 곧 각성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도파민이 지나치게 분비되거나 과도하게 계속해서 분비된다면 당연히 중독될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대중 매체에 많이 노출되면, 당연하게도 도파민 수용기에 문제가 생긴다. 유튜브를 계속 보는 것 말고는 어떤 것에서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내 몸은 자극에 계속 노출되면 휴식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내 몸은 피곤해지며 우울해진다. 다시금 우울해진 나는 이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 담배, 게임 등 자극적인 요소들을 찾게 되고, 더욱더 강한 자극적 요소를 계속해서 찾게 된다. 그렇게 내 몸은 망가지게 된다. 정확히 얘기하면, 뇌가 망가지고, 그로 인해 몸도 망가진다.
결국 도파민을 줄이고, 정상적인 범주로 나의 뇌를 돌려놔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행동 수칙을 정해야 할 것이다. 도파민은 각성 호르몬이기에, 예상치 못했던 것을 마주했을 때 과하게 분비된다. 그래서 그 분비량을 줄이려면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의 생활이 풍요로워서는 안 된다. 나의 뇌는 인류학적으로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전해 왔기에 풍족한 삶은 뇌에 맞지 않다. 그러기 위해선 결국 목표를 세우고, 평상시 나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결핍 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간 4개월의 삶은 '불규칙적'이었고, 너무나도 '풍족'했다. 대학교도 끝나니 이렇다 할 강제성도 없고, 성적을 잘 받아야 한다는 목표 의식도 사라졌다. 이제는 새롭게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하고, 규칙을 세워야 한다.
1) 7시에 일어나기
2) 유튜브 쇼츠 및 인스타 릴스 등 자극적 매체 끊기
3) 공허한 상태에서 잠들기
4) 하루에 1시간 유산소 운동하기
5) 언어 자격증 공부하기
6) 졸업논문 주제 찾기
7) 카페인 끊기
항목별 구체적인 계획을 여기에 모두 쓸 수는 없기에 간단히 7가지 규칙을 마련하면 위와 같다. 규칙은 각각 세부적일수록 좋다. 어떤 자격증을 공부할 것인지, 시험이 언제인지, 몇 시간 이상은 공부할 것인지 혹은 졸업논문 주제를 찾기 위해 어떤 분야를 볼 것인지, 봐야 할 논문 목록을 정리한다든지 등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어쩌면 일반적인 삶으로의 이행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너무나도 뻔하디뻔한 '자수성가한 사람'의 계획 같기도 하다. 도파민에 관한 이론은 이제 흔히 말하는 '좋은 삶'에 대해 뒷받침해 주는 이론이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 할 과학적 이유도 찾았으니, 그렇게 살지 않을 이유가 더욱 없어졌다. 이제는 도파민이라는 녀석을 가끔만 만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