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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스티나 Jan 06. 2025

효녀 심청

불효녀는 웁니다

“엄마, 설거지 제대로 한 것 맞아요?”

밥공기를 집어 든 딸이 살짝 짜증 섞인 화살을 날린다.

“했지? 왜?”

나도 욱하는 마음으로 밥공기를 들여다보았다.

“깨끗한데?”

“아이고, 엄마. 이 밥풀과 고춧가루 안 보여요?”

무슨 소리야? 내 눈에는 깨끗하기만 하고만.

돋보기를 내 눈에 씌워 주는 딸에게 그럼 네가 좀 하지?라는 말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우악! 진짜네?’

돋보기를 쓰고 보니 그릇뿐만 아니라 싱크대 주위의 얼룩과 자잘한 먼지들이 나에게 확 달려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아침에 닦은 거실 바닥에 머리카락과 티끌들이 중간중간 자리 잡고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나는 꽤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나는 보이지 않았지만 우리 집의 상태는 그리 청결하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 잠시 멍했다.


그때 우리 엄마 생각이 났다.

30년 전. 직장 생활하는 딸을 대신해서 손녀를 돌보기 위해 우리 집에 오셨다. 손녀만 돌본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여 모든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신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도 손수건 한 장 빨게 하지 않으셨고 시집가면 실컷 할 텐데 벌써부터 무슨 집안일이야.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에 대한 고마움은 잊고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엄마, 설거지 제대로 한 것 맞아요?”

“엄마, 청소 상태가 별로인 것 같아요.”

“엄마, 애기들 우유병은 잘 삶고 계신 거죠?”

손끝도 까닥하지 않으며 나는 꼴 같지 않은 유난은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한다고 했는데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또 그 말에 화가 났다.

“이게 안 보인다는 게 말이 돼요? 이렇게 잘 보이는데 엄마도 참.”

흰자위를 번득이며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그때는 진짜 이해가 안 됐다. 나는 이렇게 잘 보이는데 엄마가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시면 될 것을 꼭 저렇게 변명을 하시면 더러운 그릇이 깨끗해지나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많이 했다.

그때 엄마의 구부러진 등에 얹힌 딸에 대한 서운함과 딸 집에 와서 사는 서러움을 나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세상이 삐이 하며 급정거를 한다.

정신이 아뜩해지며 소금기 머금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엄........ 마..............

우리 엄마, 죄송해요. 나는 불효녀입니다.

나는 딸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남편도 있고, 돈(?)도 있고, 시쳇말로 아직 능력도 있는데도 괜히 서럽다. 우리 엄마는 남편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이 딸 집에서 사신 긴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온몸이 아프도록 떨렸다. 방학이라 결혼한 딸 집에 갔을 때, 사위가 퇴근만 하면 나도 모르게 문간방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애들 퇴근 시간만 되면 나는 바깥으로 나가서 아파트 단지를 돌고 돌고 또 돌며 어쩐지 그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나는 잠시 다니러 왔고 손주들 돌봐 주고 있는데도 어쩐지 그랬다. 아무도 눈치 준 적도,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쩐지 그랬다. 진짜 어쩐 지라는 말으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아들이 없어서 경험할 일은 없지만 아들 밥상은 앉아서 받고, 사위 밥상을 서서 받는다는 옛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 주신 것만 해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는데 살림마저 하셔서 나와 우리 남편은 공짜로 딸들 키우고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한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가시 돋친 잔소리를 해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니,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 내 머리를 수 천 번 쥐어박는다고 속죄가 되겠는가. 

  이제 나도 잘 안 보인다.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그릇도 더럽고 거실도 깨끗하지 않았다. 나는 한다고 했지만. 우리 엄마도 그랬겠지. 인간은 자기가 겪어 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동물이다. 아니 나한테만 해당되는 진리이다. 자식은 무조건으로 사랑하고 온갖 핍박에도-딸들의-돌아서면 또 사랑스럽다. 그런데 부모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엄마는 뼈 빠지게 하루 일과 마치고도 돌아오는 건 불만 가득한 딸의 지적질에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아. 나 왜 이렇게 나쁘니?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내가 한 행동만큼 나도 받는다. 이자를 쳐서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 무섭다.

“엄마, 죄송해요. 내가 참 불효녀였지요?”

“아이고, 아니다. 너는 우리 친척들에게 효녀 심청이라고 불린단다.”

“엄마, 부끄럽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무슨 심청이야. 심청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구먼.”

엄마와 통화를 하며 울고 웃는다. 

“엄마, 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이렇게 잘못을 빌 수 있도록 내 곁에 있어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덕분에 내가 평생을 참 편하게 살았네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셔야 해요.”

평소에 낯간지럽고 쑥스러워 말하지 못한 말을 술술 잘도 한다. 나 이제 철난 것 맞나 보다.

죽을 때까지 모르고 우리 아버지 만났더라면 내가 얼마나 죄송했을까? 주름진 얼굴을 활짝 펴시며 아녀, 효녀 심청이여, 그럼 그렇고 말고 하시는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나는 많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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