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다음 카페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남편의 핸드폰에 저장된 나의 이름이 '집'이라서 너무 서운하고 속상했다는 글이었다. 나는 그냥 '집'일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좌절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폭풍 공감이다. 집이 뭔가, 집이.
집을 영어로 하면 하우스이듯이 그냥 벽돌쪼가리와 시멘트 덩어리로 쌓아 올린 싸늘한 물체일 뿐이다.
차라리 '가정'이나 '홈', 거기다 '스위트홈'이라고 썼더라도 분이 안 풀릴 것 같다.
그보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이 너무나 기상천외해서 연신 무릎을 치면서 읽었다.
'기본‘-딱 기본만 하기에
'남의 편' -이건 맞는 말?
'내 인생의 로또'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집주인' -공동 명의로 해 달라고 하니 이혼하겠다고 해서 치사빵구라서
'이기적' -자신만 아는 이기적의 끝판이라서
'하숙생' -잠만 자고 나가서-이 정도는 양반일세-
'우리 집 갑부' -뭔 말인가 했더니 집구석에서는 궁상떨며 돈 쓰는데 발발 떨면서 바깥에만 나가면 펑펑 돈을 잘 쓴다고, 헐!
그중에 가장 웃픈 댓글은 바로 이거다.
'이쁜이' 그게 도대체 왜? 딴 여자랑 바람피우면서도 '이쁜이'라고 저장해 놓은 남편이 소름 끼친다.
가장 현명한 댓글은,
'ㅅ ㅂ ㄴ' 기분 좋을 때는 서방님이라고 읽고, 미울 때는 차마 쓰지는 못하지만 다 아리라 생각된다.
또 귀여운 댓글은,
'그때그때 기분 따라 바뀐다.' 그러면서 소심한 복수를 한다.
나의 폰을 들여다본다.
'내님'
재수 없는 단어인가?!
남편의 폰은 뭘까? 아마도 이름일 것이다. 그것도 한자로. 세상 멋없고 요즘 한자에 꽂혀서 모든 단어를 한자화하는 남편의 행태로 보아 안 봐도 비디오다.
'내님'이던 시절의 남편은 그래도 봐줄만했고 그럭저럭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요즘 우리 부부의 애정 전선은 시베리아 벌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삭풍이 부는 늦가을 들판쯤이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 짜증을 내고 공감 능력이라고는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는 그이 때문에 나는 제대로 상처를 받고 있는 중이다.
’ 그래, 인생은 어차피 홀로 가는 여행길이야. 내가 무엇을 기대해? 이제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리라!‘
쓸쓸함을 홑이불에 감추고는 제법 당당하게 두 어깨를 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섭섭함과 함께 인생의 허무감마저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내 폰에서의 남편 이름도 바꾸었다.
‘ ... ’
정말 할 말이 없다. 즉 답이 없다는 말로 해석해도 무관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밀어내고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옆에서 내 전화기를 보고 있던 손녀딸이 묻는다.
“할머니, 점 세 개가 누구야?”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모습을 본 딸이 한마디 한다.
“엄마, 또 왜? 아빠랑 싸웠어?”
점 세 개는 아무래도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바꾸었다. ‘남·편’
딸이 또 거든다. 그놈의 점은 또 뭐야? 마음의 거리인 거야? 암튼 우리 엄마 못 말려~
상대편의 핸드폰은 절대로 보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에 남편의 폰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궁금증이 폭발하여 내가 전화를 하고는 슬쩍 옆에서 지켜보았다.
‘내님’
나 혼자 감정의 널뛰기를 할 때 남편은 여전히 나를 ‘내님’이라고 했다. 남편의 무관심을 한결같은 애정이라고 확대해석하며 가슴까지 뭉클했다. 그래, 이것이 남편의 매력이지 하고는 허파에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퓨~
남편이 고수인가. 내가 하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