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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하는 말들

세상을 번역하다

by 정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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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20년 차 번역가.

한량처럼 살 줄 알고 번역가가 됐으나 이번 생은 틀렸다. 손목에 '세상을 번역하다'라는 타투를 새길 때만 해도 아내가 평생 번역할 거냐며 타박했지만 아마도 평생 하게 될 것 같다. 평생 해도 좋다.

영화 데드폴, 아바타: 물의 길, 보헤미안 랩소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을, 뮤지컬 하데스타운, 썸씽로튼, 미세스 다웃파이어, 틱틱붐, 원스 등을 번역했다


작가 황석영의 소개글의 처음을 보면서 이 작가가 가족을 많이 사랑하고 번역을 무지 러브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번역가로서 가장 무서운 단어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오역'일 거다. '마감'이라는 답을 하는 번역가도 많겠지만 마감은 돈이라도 주지.

번역가에게 오역은 그저 괴롭고 끔찍한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보완해야 할 결점들을 지적받은 거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일상에서 겪는 오역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 때도 오역을 인정하고 오역에서 배우고 나를 보완하여 다신 같은 오역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번역하고 오역하고 깨닫고 또 번역하고 오역하고 깨닫고, 이 지긋지긋하고 흥미진진한 순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서승희의 남편, 황윤슬의 아빠, 번역가 황석희


프롤로그에서도 역시나 가족애가 묻어난다. 그래서 이 작가가 따스하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오역, 오해 그 말에 대하여 풀어쓴 에세이다.



영화 〈데드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보헤미안 랩소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답으로 ‘메가 히트작’을 떠올렸다면 그것도 맞다. 하지만 다른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이 영화들의 한국어 자막이 모두 같은 번역가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예상했겠지만 바로 황석희 번역가다. 대중에게 친근하게 와닿는 재기 발랄한 번역으로 잘 알려진 그가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현실 세계를 번역한다. 흔히 번역이라고 하면 영어에서 한국어, 한국어에서 프랑스어와 같이 서로 다른 언어들 사이의 번역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럼 같은 한국어끼리는 어떨까.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말을 문제없이 이해하며 소통하고 있을까. 황석희 번역가의 신간 《오역하는 말들》은 번역가의 시선에서 조금 더 예민하게 바라본 일과 일상 속 오역들에 대한 이야기다. -네이버 서평



새벽부터 저녁까지의 시간 흐름에 따라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S#1 책상 앞, 새벽_번역 작업과 직업적 성찰

S#2 아침 공원 산책_일상의 관찰과 번역가적 시선

S#3 한낮의 거실_가족과의 소통

S#4 저녁 뉴스_사회적 관점과 오역에 대한 고찰


이 책의 메시지는 '번역은 언어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옮기는 일이다.' 황석희는 자신이 맞닥뜨린 수많은 번역의 딜레마를 통해 '정확함'과 '자연스러움', '원문 충실'과 '수용자 이해'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한다. 이 글을 읽으며 '번역'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섬세하고도 창의적인 노동인지 알게 된다. 번역이라는 것이 단순한 텍스트의 변환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로 정의한다.

저자는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라고 하며,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소통이 번역의 과정임을 강조한다. 연인의 문자 메시지부터 상사의 표정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의도를 '번역'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그리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한 번역가가 되자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이는 단순히 언어적 번역을 넘어 인간적인 이해와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


# 그 누구에게도 정의되지 말자. 특히나 내게 무가치한 사람이 하는 좋지 않은 말에는 더욱. 그들에게 정의되지도, 한정되지도 말자.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이며 나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누군가의 의견을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나를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기로 하자. P92

엄마의 생각이니까 제일 중요한 거야
내가 널 제일 잘 아니까



# 꿈이라는 불을 계속 지피기 위해서는 장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장작을 마련하려면 돈과 현실이 필요하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을 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다. 그런 현실감이 없으면 주변인들과 가족에게 걱정과 폐를 끼치게 된다. 내 모든 시간의 1초까지 쏟아붓고, 영혼을 갈아 넣어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위험하고 무모하다. 모든 걸 거는 건 도전이 아니라 도박이다. '올인 all in'이란 말을 오역해선 안된다. 이 말은 애초에 도박에서 유래한 도박 용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덧칠된 의미만 좇다가 본디 의미를 떠올리지 못하면 치명적인 오역을 하기 마련이다. p118


고된 길을 걸으면서도 때때로 그 하루가 보람차고 즐거워 슬쩍 웃게 되기를





# 올해는 꼭 보자며 서로 기약 없는 약속을 건네고 통화를 마쳤다. 웃으며 얘기하고 살갑게 전화를 끊으면서도 우린 너무 잘 안다. 올해 만나게 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걸 p146


어디 아픈 거 아니고, 큰일 있는 거 아니고, 옥장판 사라는 거 아니고
그냥 보고 싶어서




# 육아와 훈육은 복잡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고 반대로 정답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답이 없다. 프랑스식이든 한국식이든 필요한 것은 가져오고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소신 있게 아이를 키워야 한다. 원래 육아와 훈육의 본질은 지지고 볶는 거다. p193


우린 우리대로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다. 그거면 됐다.




# 다정한 사람이 훨씬 많다. 다정한 사람이 훨씬 많다. 다정한 사람이 훨씬 많다.

주문처럼 중얼대곤 소보로빵을 한입 베어문다. 정말이지 눈물 나게 다정한 맛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은 영화보다 현실에 잘 어울린다. p253


다정해야 해. 특히나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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