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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하루키와 음악

대체할 수 없는

by 정유스티나

나는 재즈를 잘 모른다.

나는 하루키도 잘 모른다.

둘 다 이름만은 너무 많이 듣고 흔한 단어라서 마치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대상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하루키와 재즈에 대한 지식이 플러스 100은 된 듯하다.

하루키가 재즈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에 이런저런 음악을 자주 사용한 것은 유명하다.

일본 도쿄, 무사시노 근처에서 '피터 캣'이라는 재즈바를 10여 년 가까이 운영하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성실한 주인이었다. 대학생 시절에 결혼한 하루키는 재즈카페를 열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은행에서 빌렸다. 하지만 그는 신혼 시절 빚이 있었다는 건 돌이켜 생각해 보면 꽤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도 한다. 하루키의 글 쓰는 태도가 여느 직장인과 같이 정확한 시간에 정해진 시간만은 무조건 글을 썼다는 것을 보면 재즈카페를 하면서 몸에 밴 근면 성실성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피터 캣'이 조금씩 안정되던 어느 날, 하루키는 텅 빈 진구 구장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다가 문득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나는 이제 소설을 쓰게 되겠구나.'

뭉클하다. 천재 작가-내 생각-하루키도 먹고사는 일은 버거우면서도 마땅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의 이런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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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없는


잘 알려졌다시피 하루키는 LP 예찬자다. 그가 LP를 수집하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CD가 대안 매체로 완전히 자리 잡았던 기간을 따져보면, 그는 대략 30년 동안 LP만으로 음악을 들었을 것이다. LP에 다한 하루키의 충성심은 희미하게나마 공감이 간다. LP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기 시작한 1990년대는 그에게 일종의 '상실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음질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반합리주의, 반실용주의다. 중간에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러닝 타임 70분이 음악으로 가득 찬 CD를 하루키는 '난폭하다'라고 여긴다.

하루키는 LP의 한 면을 다 듣고서 턴테이블의 암을 올리고 고판을 뒤집어 다시 바늘을 올려놓는 일련의 행위가, 그러니까 음악을 듣고 한숨 돌린 뒤 다시 음악을 듣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음악 감상에서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러한 행위 속에서 들었던 LP가 CD로 재발매되었을 때 드러나는 어색함은 때때로 음악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 하루키가 LP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선호 이상이다. 그것은 차라리 숭고한 사랑이다. 그에게 LP는 대체할 수 없는 무엇이다.

어쩌면 달라진 게 LP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음반을 듣던 양지바른 작은 아파트, 옆에 있던 고양이 그리고 하루키 자신이 모두 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키에게 있어 그 옛날의 LP는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불현듯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있던 전축이 생각났다. 음주가무를 즐기시던 아버지께서 아마 거금을 들여서 우리 집 안방에 자리를 잡았으리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나훈아의 고향역, 현미의 밤안개, 최희준의 하숙생 등.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LP가 싸구려 그림 같은 가수의 얼굴과 함께 무성영화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그 이후 오빠의 지독한 팝송 사랑으로 끌여 들인 팝송판과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필두로 LP판의 세대교체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요즘 노래는 도통 뭔 말인지 모르겠더라. 엄마야? 피융피융~노래하면 이미자가 최고지!"

"아이고, 아버지. 조용필 오빠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데요. 뽕짝 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그때 떫은 감을 씹으신 듯한 우리 아버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 나도 아버지와 똑같은 레퍼토리를 읊는다.

"요새 노래는 뭔 말인 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가수하면 조용필이지!"



1매짜리 광고카피를 쓰던 광고쟁이. 8매짜리 북 리뷰를 밀어내던 서점직원. 30매짜리 인터뷰 기사를 쓰던 패션지 기자에서 지금은 2천 매짜리 소설을 쓰는 작가로 변신. 소설을 쓰는 일이 고독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명랑한 노동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예술가라기보다 직업인데 가까운. 오전 9시에서 오후 7시까지의 사람. 때때로 야근을 하며, 자주 길을 잃고, 지하철 출구를 대부분 찾지 못하며, 버스를 잘못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는 일이 반복될수록 좋은 소설이 나온다고 믿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는 백영옥 작가.


재즈에 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음반사의 마케팅 담당자로 일하면서 여러 잡지에 재즈에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한 황덕호 작가


20년째 K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이소라의 메모리즈' 등 굵직한 음악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음악 관련 저서도 다수 출간한 정일서 작가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고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을 거쳤으며 현재 동 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류태형 작가


나름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고 무엇보다 하루키를 사랑하는 4명의 작가가 각각 다른 색깔로 하루키와 재즈와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류태형 작가의 '하루키라는 세계의 태엽을 감는 클래식'이라는 소제목으로 하루키의 작품 속에 녹아든 음악 이야기가 재미있고 신선했다. 하루키의 작품들은 어쿠스틱이 빼어난 음악홀이다.

당신이 재즈에 심취했거나 즐겨 듣는다면, 당신이 하루키의 작품에서 생의 비밀과 상실을 발견한다면.

이 책을 만나보길 권한다.

"책과 음악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열쇠였다"

라고 말하는 하루키와 그가 사랑했던 음악이 당신의 고막과 마음을 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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