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여행기 1
야반도주하듯 새벽에 길을 나선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킨다.
막둥이와 함께 하는 진도 여행의 서막이 올랐다.
초보운전자로서 운전이 하고 싶어서 몸살이 난 기사를 대동하고 떠나는 긴 여정이다.
어둠을 가르며 서울을 벗어나니 고속도로는 4차원의 블랙홀에 빠지는 것 같았다.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면서 오늘의 해가 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빼꼼히 얼굴을 보인다.
여행길을 축복하듯이 햇살이 피어오르고, 적당한 바람도 함께 따라왔다.
여행길의 즐거움인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전부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네비가 알려 준 도착 시간이 자꾸만 늦추어졌지만 결코 조급해하지는 않는다.
딸과 단 둘이 가는 첫 여행이라 설렘과 기대감에 이미 심장은 두근거림 한도초과이다.
장장 6시간을 달려서 진도대교를 건넌다.
"와~마을이 세트장 같아. 집들이 미니어처 같아!"
딸은 정다운 시골 마을의 귀여운 모습에 연신 탄성을 쏟아낸다.
"얘야. 운전하면서 주위 풍경도 다 보고 이제 프로 다 되었네?"
갑자기 거만해지는 딸의 엄지 척에 차 안의 공기는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왜군을 물리친 울둘목 전망대가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다.
갈 길이 멀기에 장군님 영접은 돌아올 때 뵙기로 하고 바로 운림산방으로 향한다.
'구름 속에 싸인 산방'이라는 신비로운 이름에 걸맞게 구름이 산중턱에 허리띠를 하고 늠름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운림산방은 세계에서 유일한 일가 직계 5대의 화백이 200여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대화백의 산실이다. 조선 말기 남종화가의 대가인 소치 허련 선생이 48세에 한양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진도에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저술활동을 하던 곳이다.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가 1982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에 의해 지금의 정갈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진도군 운림산방 소개에서-
소치 허련 선생의 작품 속에 고서화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수묵화에 담긴 거장의 혼이 지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태어나 보니 우리 조상이 엄청난 화가라니 얼마나 축복받은 유전자야. 벌써 출발선이 나랑은 달라. 태어난 순간 미술가로서의 성공적인 삶은 예약된 거지"
미술을 전공한 딸의 부러움 섞인 말을 들으니 엄마가 그런 DNA를 물려주지 못함이 괜스레 미안해진다.
'그림이 그림을 낳다' '남종화의 성지 운림산방'
소치의 작품을 전시한 1관에서 2대에서 5대까지 운림산방의 뒤를 이은 후대의 작품이 전시된 제2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화풍이나 추구하는 이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두 전시관을 보면서 발견한 것은 구름과 안개를 표현한 작품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은 인생길에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까지 겹친다는 건 엄청난 공포야. 하지만 그 길 너머 단 한 번이라도 가보면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아. 이 길을 처음 가는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걷는 이 길이 훨씬 더 쉽다는 거지. 그러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걷는 사람이 되어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길라잡이가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울 딸이..."
"엄마, 난 구름에 뒤덮여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그림 속에 너무나 작지만 선명하게 그려진 새들을 보았어. 아무리 막막한 현실이라도 또렷한 위로 하나 있다면 세상은 살 만한 것 같아. 나에게 그 새는 바로 엄마야."
우왕!
깜빡이 없어 훅 들어온 딸의 말에 감동의 쓰나미가 나의 몸과 마음을 덮쳐 세포 하나 하나가 춤을 춘다.
나는 간과한 새 한 마리가 우리 딸을 일으켜 세웠구나!
같은 그림을 보고 안개에 꽂힌 엄마와 새에 꽂힌 딸만큼 성향이 다르기에 많이 다투고 못마땅해했던 둘 사이에 갑자기 꽃향기가 풍긴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는 벚꽃이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