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여행기 2
진도여행 2일 차이다.
쏠비치 진도에서 2박을 묵을 것이다.
전망 좋은 오션뷰 객실은 거금 22,000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평소 같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은 옵션이지만 이번에는 거금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2일이나 묵을 것이고 무엇보다 쏠비치 아닌가? 새해 첫날에 일출을 보지 못했기에 선택이 아닌 필수 옵션이다.
새벽이라기보다는 아침인 7시 40분에 해가 뜬다는 정보를 접하고 여유 있게 눈을 떴다.
미명...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지만 여기에서의 미명은 황혼빛 절경을 빚어내고 있었다. 아마도 구름 아래에 해는 이미 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말간 얼굴의 해를 영접하기 전에 보라와 분홍이 섞여 있는 오묘한 빛이 바다와 맞닿은 하늘을 물들인다. 축제로구나!
드디어 기다리던 해님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카메라를 들이대며 동영상을 찍는다. 간간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렌즈 속으로 빠져든다.
하지만 하느님이 주신 나의 두 눈 렌즈로 보는 세상이 제일 아름답다. 한쪽 눈은 렌즈에 한쪽 눈은 직관하는 신공을 발휘하며 일출을 즐긴다. 게다가 소원도 빌어야 하니 완전 멀티플레이어이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의 축복과 함께 재물의 축복도 듬뿍듬뿍 내려 주세요. "
'아참, 저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꿈을 이루게 해 주시고 글이 술술 잘 써지도록 나의 손을 축복해 주세요."
손톱의 반원에서 온전한 원으로 뜨기까지 4분 정도 걸린다. 한 순간에 쓩! 하며 세상을 향해 까꿍 한다.
어제도 그제도 이 해는 떴을 것이고, 내일도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오늘 내가 보는 이 해가 365일 중의 하루이겠지만 진도 쏠비치에서 보는 해는 특별하다.
다시 맞이하는 새 해를 보며 어두운 곳을 환하게 밝히고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가,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아침해를 벅차게 맞이하고 바로 외출 준비를 한다.
여행 2일 차인 오늘은 본격적인 진도 투어를 하기로 한다.
사실 진도는 볼 만한 관광지는 다른 곳에 비하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천혜의 자연과 고즈넉하고 한가한 섬이기에 심신을 힐링하기에는 좋은 여행지이다. 진돗개로 유명한 진도이지만 요즘은 미스트롯의 ‘송가인’이 진돗개의 명성을 능가한 듯하다. 나도 송가인 씨의 팬이었기에 송가인 부모님이 사시는 집을 찾아갔다. 아담한 어촌의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그 작은 집에서 전국을 호령하는 트롯 가수가 탄생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담벼락에 송가인 키만 한 입간판이 즐비했다. 마침 송가인 씨의 아버지께서 마당에서 나오셨다. 방송에서 뵌 얼굴이기에 낯설지 않았다. 함께 인증숏을 남긴다.
“우리 가인이 좋아해 줘서 감사합니다. 우리 가인이가 진도를 살렸어요.”
세월호로 인해 진도를 찾지 않고 진도에서 나는 해산물도 외면당해서 진도 사람들이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송가인'이 빅히트를 치면서 진도에 관광차가 줄을 이었고, 진도가 기사회생했다고 하니 송가인 신드롬이 이렇게까지 클 줄은 미처 몰랐다. 어쨌든 진도 주민에게는 구세주가 된 송가인을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비장한 결심까지 한다.
-통 큰 유리문 너머 반짝이는 은물결이 소소하게 흐르고, 휘이잉 바람소리는 바이올린의 활을 켜는 것처럼 웅웅 거리는 어느 날. 창 쪽으로 난 키 큰 의자로 앉을 수 있는 탁자에서, 노트북을 꺼내 놓고 무심한 듯 자판을 두드리며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다소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 가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다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자판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
따스한 차 한 잔을 앞에 두었지만 글에 몰두하다 보니 어느새 싸늘하게 식은 잔을 보며 약간의 멈칫거림과 함께 다시 뜨거운 물을 담아 오는 종종걸음이 상쾌한 실루엣-
이것이 내가 평소에 꿈꾸었던 로망이다. 유치 찬란의 최고봉이다.
이것을 이루었다.
진도 여행 2일 차에 이루었다.
다만 배경이 은물결이 반짝이는 바다라는 것과 캔버스 같은 작은 창문이 다를 뿐이었다.
바람소리도 윙윙 제대로 효과음을 내주었고, 낡은 탁자의 꼬질함이 오히려 정다운 찻집이었다.
단 한 가지 에러가 있다면 노트북이 너무 후지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했지만 빛바랜 색깔과 무거운 중량 때문에 가방이 투박하다. 그래서 폼이라는 게 나지 않았다. 게다가 구입할 때 받은 **전자 글씨가 크게 인쇄된 마우스패드가 너무나 낡아서 꺼내기가 꺼려졌다. 진작에 마우스패드라도 바꿀걸...
하지만 그런 사소한 장애가 로망을 이루는 순간의 감격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최대한 우아하고 다소 거만한 몸짓으로 노트북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린다.
능숙하게 각종 선을 연결하며 준비태세에 돌입한다.
아무도 없이 딸과 단 둘만이 있는 찻집이었지만 어쩐지 자꾸만 도도해진다.
바로 나의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나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가끔 생각이 멈출 때면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빛처럼 생각이 휙 지나간다. 다시 생각이 날아갈세라 자판을 두드리며 나의 맥박도 빨라진다. 대단한 작가 나셨다.
딸과의 대화도 재미있다. 이럴 때 너의 기분은 어떨 것 같니?
젊은 감성으로 느낌을 툭 던져 놓으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보석 같은 활자를 얻기도 한다.
3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글을 2편이나 뚝딱 탄생시킨다. 물론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못할 부끄러운 아이겠지만 나에겐 소중한 자식이다.
주섬주섬 다시 짐을 싸면서 주인장에게 노오란 귤 2개를 건넨다.
"우리가 너무 오래 앉아 있었죠?"
"아니에요~근데 엄마가 일하시니 딸과 바뀐 것 같아요. "
가게 문을 나오면서 딸이 씩 웃는다.
"엄마, 너무 멋져!"
"진짜? 내가 생각해도 멋지긴 해~"
못 말린다는 표정의 딸을 보며 혼자 슬그머니 욕심을 내 본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볼까? 지구촌 어디에 있더라도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쓰는 사람이 되어 볼까?'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 지...
태어나서 난생처음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이란 걸 한 역사적인 날이며, 오랜 꿈을 실현한 날이라며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며 딸은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는 그거 너무 많이 해서 지겨워. 이제 카페에서는 차만 마셨으면 좋겠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