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볕에 며느리를 내보내다

by 정유스티나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 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라는 옛말에 은근 부아가 난다.

나에게는 세상을 다 주어도 바꾸지 않을 귀한 딸을 시어머니는 봄볕에 들판으로 내 보내서 시커멓게 얼굴을 태우려고 하다니.

나의 딸도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고 우리 어머니의 귀한 딸인 나도 딸보다 며느리로 살아온 세월도 만만찮다. 게다가 딸만 둘인 엄마의 입장에서 감정이입은 극대화되고 서운한 감정은 더 크게 와닿는다.

시어머니의 심술은 하늘이 내린다고 하던데 죽었다 깨어 나도 시어머니가 될 팔자는 아니니 그 마음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러기에 며느리를 봄볕에 내 보내고 가을볕에 딸을 내 보내는 시어머니의 처사가 못마땅할 뿐이다.

봄볕은 강하고 따가운데 비해서 가을볕은 순하고 따스하기에 생긴 말이겠지만 듣는 딸은 불편하다.

웃자고 한 말이고 삶의 부스러기를 표현한 말인데 죽자고 덤비는 것 같아 화를 그만 내야겠다.

사실 이 말에 대한 억하심정이 풀린 것은 우리 어머니 때문이다.

아들을 3명 주르륵 낳으시고 막내로 고명딸을 생산하셨다. 우리 어머니의 생산 타율은 3루 홈런이었다.

아들만 3명 낳으시고 그 딸을 낳지 않으셨다면 얼마나 인생이 고적하셨을까?

이건 순전히 나의 감상이다. 아들들이 효자이고 며느리들도 나름 할 도리들은 잘하는 복 받은 분이시니 딸의 진가를 못 느끼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학습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가 아닌가.


그 아들 중 둘째가 남편이다.

참으로 귀했을, 아니 귀함 받아 마땅할 딸을 대하는 우리 어머니의 태도는 다른 집에서 며느리 대하듯이 하셨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크고 튼실한 농작물은 며느리 셋에게 바리바리 싸 주시면서 딸에게는 그보다 덜한 것으로 대충 담아 주셨다.

명절을 쇠고 돌아가는 며느리의 손에는 참기름, 들기름, 남은 음식, 과일, 떡에다 술도 못 먹는 아들에게 술까지 싸 주시면서 딸에게는 확연하게 작고 소박한 보따리를 던져 주셨다.

보는 내가 민망해서 내 몫을 빼서 슬쩍 넣어준 적도 여러 번이다.

나 같으면 며느리들 다 보내고 딸만 살짝궁 남겨 놓고 감춰 놓은 골드바라도 건네고 싶은데 말이다.

이러니 하느님께서 나에게 아들을 점지해 주시지 않으셨나 보다.

보나 마나 심술덩어리인 시어머니가 될 상이지 않은가.

어머니의 이런 태도가 며느리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감사함에 효부로 거듭나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수이고 우리 어머니가 고수이신 것은 분명하다.


이런 어머니의 딸에 대한 태도를 한 번에 눙치는 일이 생겼다.

몇 년 전 시아버지께서 구순의 숨을 거두시고 소천하셨다.

남기신 유산을 분배하면서 큰아들부터 가장 크고 좋은 땅을 차례대로 나누어 주셨다.

막내딸에게는 가장 적고 안 좋은 땅을 주셨다. 큰아들의 아들, 장손에게도 산을 하나 남겨주시면서.

정작 딸과 사위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내가 더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옛날 어르신들은 아들, 특히 큰아들에 대한 무한 사랑이 있어서 그래."

둘째 아들인 남편의 담담한 한 줄 변명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친구 남편은 장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딸 둘에게만 많은 재산을 남기셨다고 분통을 터뜨린 것이 생각나서 우리 부모님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쯤이면 옛말 틀린 것 하나도 없다고 하시지만 이 말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가을볕에 며느리를 내 보내실 분이시다.




가을1.jpg 며느리들이 받은 풍성한 열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