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마도 개코인 것 같다. 타고난 유전자들은 하나같이 별스럽고 쓸모없는 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비염만은 비껴갔다. 덕분에 나는 냄새를 꽤 잘 맡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공기’의 냄새를 특히 잘 맡는 편이라 생각한다.
공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누군가가 시킨 포테이토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배달원, 그런데 비에 젖어 조금 눅눅한. 거나하게 취한 알코올 향에 뒤섞인 싸구려 로지 향수. 목구멍을 찌르는 매서운 담배 연기. 그리고 굶주린 길고양이가 헤집은 쓰레기봉투 속 커피 찌꺼기와 뒤엉킨 잡다한 냄새들. 대체로 잠시 눈을 찌푸리게 하는 냄새들이지만, 나는 누가 볼까 서둘러 표정을 갈무리한다.
그러나 꼭 언짢게 하는 냄새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미는 습기 어린 비 냄새와 새벽 서너 시쯤 물방울처럼 차오른 공기의 냄새를 특히 좋아한다. 그 둘은 언제나 조금 서늘하고 약간은 촉촉하다. 그리고 가을은 그 감각을 닮았다.
영화 <노트북>에서 노아는 차 한 대 없는 도로 위에 누워 앨리에게도 함께 누워볼 것을 권했다. 그녀가 어쩐지 떨떠름해 거절하니 그가 말한다.
“그게 네 문제야.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것.”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새벽 네시쯤, 아무도 없는 도로 위에 드러누워 물기가 잔뜩 묻은 서늘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만 상가 불빛마저 꺼졌을 어두운 새벽, 혼자서는 돌아다닐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인 나로서는 그저 그의 말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릴 뿐이었다.
그런 내가 겁을 내지 않아도 그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계절이 가을이었던 것이다. 기약 없는 오전의 빗방울을 기다리지 않아도, 겁쟁이 같은 마음을 책망하지 않아도, 약간 서늘한 공기와 희미하게 머무는 물 내음이 코끝에 걸리면 나는 비로소 행복하다고 여겼으니. 비록 타고나길 연약해 찬바람에 곧잘 생채기가 나는 숨통이겠으나, 그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계절은 냄새로 온다.
덜 저문 봄의 오후 다섯 시쯤, 막 돋아난 새싹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 퉁, 튕겨낸 그 자리에 흙더미가 젖어 차갑고 여리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연둣내. 기울어진 여름의 작열이 나무목에 정면으로 내려앉으면 덥게 달궈지는 송진과 수액의 단내. 바람에 사그락거리며 스쳐 가는 떫고 마른 잎 내. 그리고 무정하여 날카롭게 그을은 겨울 냄새까지. 계절의 냄새는 대체로 맑고, 찬연하며 아름답다.
유일하게 싫어하던 계절마저 사라진 나는, 이제 모든 계절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이 계절에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실타래를 이리저리 엮어 애정하는 당신에게 건네주고 싶어진다. 보드랍고 폭닥한 카디건과 니트를 사랑한다. 맑고 높은 하늘에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들녘에 저미는 황혼에 부끄러워 볼을 물들이고 싶다. 생명력이 넘치는 그 계절에 편지를 쓰고 싶다.
흡ㅡ 들이마시는 공기 속에서 누구보다 빨리 가을을 알아차리는 나는, 가장 먼저 당신에게 가을 인사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