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하모니
지난 3월 아직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할 때 우리는 만났다.
음악 선생님과 학생으로.
T.S.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이유는 봄의 소생을 역설적으로 고통으로 드러낸 표현이다. 하지만 4월이 오자마자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에게 잔인하게 굴었다.
수업을 마치며 나누는 '사랑합니다' 인사를 하기 싫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휘리릭 교실을 탈출했다.
수업 시간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반항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끔 노래 부르는 아이들도 땅굴을 100미터나 파는 소리로 웅웅 거릴 뿐 그건 노래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얘들아, 음악 시간에 노래 안 부르면 뭐 할까? 흠, 영어 단어 외울까? 아, 다음 시간에는 수학 문제지 준비할게."
이렇게 최후통첩을 날리면 10 데시벨 정도의 음량은 겨우 내준다.
"응, 바로 이거야. 얘들아. 선생님 눈높이 정말 낮다고 했지? 이 정도만 노래 불러줘도 선생님은 너무나 땡큐야~"
오버와 아부와 비굴을 담아서 우쭈쭈를 한다.
초등 1학년 담임과 6학년 음악 전담은 극한 직업이다. 제기랄.
하루하루 버틴 세월이 1년이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을 맞이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몸을 한껏 동그랗게 말아야 하는 겨울에 작별의 시간은 기어코 왔다.
솔직히 기쁘다.
섭섭시원이 아니라 시원섭섭의 제대로 된 버전이다.
교과서의 마지막 단원이 '음악으로 행복하게'였다.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과 치유를 영상으로 만났다.
2011년에 방영된 '기적의 하모니', 김천 교도소 밖 감동의 콘서트 영상이었다.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몰랐던 18명의 아이들이 합창으로 다시 태어나 세상과 호흡하는 내용이었다.
아빠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한 여덟 살 아이, 농약을 먹고 죽어간 아빠를 보고 충격을 받은 또 다른 아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한순간의 실수로 범죄자가 되었다. 이승철의 지휘 아래 소년들의 꿈 그리고 후회와 반성을 담은 노래가 공연장 가득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들이 합창이라는 하모니를 완성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내 마음 드립니다.
이 마음은 오직 그대만
그대에게만 드립니다.
양복 주머니에서 빨간 장미를 뽑아 가족에게 겨누며 아이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초대되어 온 가족들로 가득 찬 방청석은 눈물바다가 된다.
감정이라고는 없는 아이들인 줄 알았는데 그들에게도 눈물이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 음악 교실도 울먹인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걸 보면 운 것이 분명한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냅다 하품을 한다.
제일 뒷자리에 앉은 곰처럼 듬직하던 동혁이.
평소 감정 표현에 서툴고 수업 시간 동안 묵언 수행만 하다 가는 지훈이.
늘 몸을 똑바로 앉지 못해 책상에 엎드려 있기에 허리에 문제 있는 줄 알았지만 전혀 문제없음을 확인한 지언이.
모두 눈을 반짝이며 가슴으로 느끼며 어떤 수업 시간보다 몰입했다.
그리고 노래로 위로받고 사랑을 건네는 영상 속 수형자와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며 공감했다.
나는 짐짓 모른 체 얼른 눈을 돌려준다.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고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치유력을 확인한 벅찬 순간이었다.
내가 애정하는 노래, '바람의 노래'를 어느 방송사에서 기획한 '뜨거운 싱어즈' 중 '베테랑'이라는 남성 중창단의 4단 화음으로 들었다.
수업을 빙자해서 나의 사심을 채우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내가 더 큰 세상으로 날갯짓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세지가 이 가사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볼펜을 선물했다.
수업 내도록 감정에 북받쳐 감동 쥐어짜기를 하던 아이들은 수업 중 가장 빠른 걸음과 환한 웃음을 안고 선물을 고르느라 머리를 맞대고 손은 분주했다.
그 어떤 감동도 눈앞의 선물이 주는 기쁨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4월에 뚝 끊긴 인사를 시도한다.
차렷, 선생님께 하트!
"사랑합니다!"
빛의 속도로 문을 박차고 나갔을 녀석들이 오늘은 행동이 굼뜨다.
"올 한 해처럼 리코더를 많이 불 날은 없을 거야. 기쁠 때나 슬플때나 늘 음악과 함께 하고 리코더를 기억해 주세요"
녀석들의 뒤통수에 대고 마지막 구애를 외치며 질척인다.
마지막 수업이 생각 이상으로 성공적이어서 그동안의 속상함이 속없는 애정으로 치환되어 교실의 공기를 따스하게 데운다.
'기적의 하모니'는 우리 교실에서도 이루어졌다.
마지막 수업에, 안타깝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