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빛이 되다

브런치 글벗과의 만남

by 정유스티나

이건 기적이다.

사전 약속이나 일정 공유도 없었는데 우린 꼭 만나야 될 사람처럼 만났다.

내가 제주행 비행기를 탄 것부터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질기고 질긴 학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하였다.

소위 '퇴직 도우미'가 지난해에 등장했다.

해마다 만만치 않은 아이들이지만 참을만했다.

올해는 역대급 도우미가 나타났다.

특정 한 명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게다가 아이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늪이었다.

까마득한 후배의 시건방짐과 무례함에 참담했다.

명리학을 깊이 공부하던 지인이 올해는 구설수를 조심하고, 각별히 말조심, 행동조심을 하라고 했다.

평생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잊힐 만하면 터졌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나를 공격했다.

교직에 대해 남아 있던 작은 미련마저 싹둑 싹을 자르는 진정한 '퇴직 도우미'의 활약에 K.O패, 마음이 싸늘히 식었다.

천직이라 생각하고 평생을 해 오던 업을 접으려니 시원 섭섭보다 섭섭 시원이 더 크다.

잘 됐다, 나를 토닥이다가 뻥 뚫린 구멍에서 불어오는 쓸쓸한 바람에 내 마음 둘 곳을 잃었다.

친구가 세컨드 하우스인 제주에 한달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상황이 제주가 나를 불렀다.

난생처음 혼자 비행기를 타는 미션을 치르며 제주의 품에 안겼다.

그, 런, 데.

브런치 글벗 중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만 해'를 공동 집필하고 출판 전반에 걸쳐 대장님인 '마른틈' 작가님이 제주에 머물거라는 소식이 톡방에 올랐다. 그것도 나와 같은 날짜에 입도한다는 것이다.


"어머머, 대장님. 제주에서 랑데부 한 번 할까요? 제가 맛난 식사 한 끼 대접드리고 싶네요."

"어머머, 작가님. 너무 좋아요. 식사는 되었고 차라도 한 잔 해요."

"어머머, 저는 지금 제주에 살아요. 함께 하고 싶네요."

"어머머, 제주도 오시는 틈님, 유스티나님 저 제주 살아요. 합류하고파요."

'부럽다요ㅜㅜ'

'가고 싶네요 제주....!'

'^^ 눈이 오면 좋겠네요.'

'어흑 저는 왜 쓸데없이 제주도도 안 가서ㅜㅜ'

'좋은 시간 보내세요~~ 언제 기회 되면 저도 뵙고 싶습니다. 모두들'




제주1.jpg 제주 현지 작가님의 선물




단톡방이 잠시 설레는 달뜸과 부러운 한숨으로 다글다글 끓었다.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성사되었다.

여행객인 마른틈 작가님과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미리 만났다.

나의 롤모델이자 우리의 대장님, 마렁텅 작가님을 만나다니 그것도 여행지인 이곳 제주에서.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된다는 유행가의 매직이 이루어진 것이다.

뜨거운 포옹과 함께 수줍은 눈 맞춤이 그간의 동경을 말해주었다.

"저는 요즘 글태기라 쓰는 것을 못하고 있어요. 방학만 하면 나의 일상도 셧다운 하는 오랜 습관이라. 운동도 안 하고 루틴도 무너지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못된 버릇이 어김없이 도졌네요. 그런데 꼭 그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더 커요. 재능도 없고 노력도 안 하니 이제 그만 써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엄마를 만난 아기처럼 어리광을 부린다.

"어머, 아녜요. 작가님 글 너무 좋아요. 제가 시건방져서 다른 사람의 글을 잘 안 읽는데 작가님의 글은 분명 나의 마음을 건드렸어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만든 책,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만 해' 책을 지인에게 선물할 때 모든 작가님의 글이 다 좋지만, 유스티나 작가님의 글을 꼭 읽어 보라는 인덱스를 넣어서 주었어요."

찌르르르르르르.

온몸이 감전되어 심장이 쫀득쫀득해진다.

갑자기 앞에 앉은 작가님의 얼굴이 흐려 보인다.

아마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나 보다.

유능하고 다정한 작가님들과 작업할 수 있는 행운을 주신 신께 감사드리고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매거진은 어떻게 하던지 함께 걸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절필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위태롭게 걷는 중이었다.

마렁텅 대장님의 토닥임은 빛 그 자체였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떠올랐다.


한 가슴에 난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다면
난 헛되이 산 것이 아니리라
한 인생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있다면
한 고통을 위로할 수 있다면
기운 잃은 한 마리의 개똥지빠귀를
둥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면
난 헛되이 산 것이 아니리라



그래, 에밀리의 마음으로 글을 쓰자.

초심을 잊지 말고 닥치고 쓰자.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쓰자.

한 마리의 개똥지빠귀를 둥지에 데려다 주는 마음으로 겸허히 내려 놓자.

계획도 예고편도 없이 훌쩍 떠난 여행지, 이곳 제주에서 나는 빛을 보았다.

마렁텅 대장님을 통해서 오신 높은 분의 계시일까?

멍 뚫린 가슴을 메우기 위한 우리 아버지 베드로 님의 손길이실까?

제대로 좌절 중이었던 나를 일으켜 반석에 올려놓으신 것은 분명하다.

제주에서 만난 따스한 작가님들의 환대와 동지애에 영상의 날씨지만 제주 딴에는 한파라고 엄살떠는 매서운 바람은 훈풍이 되어 두 뺨을 어루만진다.



제주.jpg 작가님과 만난 제주의 그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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