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야만 했던 졸업식

세종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by 정유스티나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살자고 삶의 방향키를 돌렸을 때, 나는 무식해서 용감했다.

글쓰기를 책으로던 강의로던 배우지 못했기에 현타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가장 기본이 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오랜 나의 버릇으로 인한 오류투성이었다.

게다가 깐 데 또 까는 무지막지함을 글에서도 적용했으니 중의어와 반복되는 표현의 나열로 글이 지저분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살아 펄떡이는 글감이 있으면 뭐 해?

그것을 먹기 좋고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내지를 못하는데.

배워야 했다.

마침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는 후배가 적극 추천했다.

"언니, 작가가 되려면 약력에 '문예창작학과'라는 타이틀 하나는 붙박아야 신뢰도가 올라가요."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또 몇 년을 허송세월하며 머뭇거렸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위기감에 '세종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에 노크했다.

똑똑, 저 같은 할머니도 들어가도 될까요?

그렇게 나는 만학도가 되었다.


연어가 되어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고 3학년 대학진학을 앞둔 내가 불안하게 서성이고 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성적도 집안 형편도 간당간당했지만 꿈은 야무졌다.

본고사를 보지 않고 예비고사로만 전형하는 특차 모집에 응시했다.

'세종대학교'였다.

나와 성적이 비슷한 친구 2명과 함께 같은 과에 원서를 넣었다.

시골 촌년 3명이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아마 7호선 지하철이 없었기에 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왔을 것이다.

캠퍼스에 있던 연못 벤치에서 한참 앉아서 새 봄에 이 자리에 있기를 빌었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런데 경쟁률이 어마무시했다. 난 쫄았다. 재수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기에 떨어진다는 것은 대학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엎친 데 겹친다고 안전장치로 넣어 놓은 교육대학교와 면접날짜가 같았다.

밤새도록 온갖 신들에게 물어보고 뒷집의 할머니한테도 수십 번을 물어봤다.

'서울로 갈까요? 대구로 갈까요? 뒷집의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알겠습니다. 짠!"

대구에서 끝나면 시작을 달리해서 다시 서울에서 끝나게 조작하며 뫼비우스의 띠가 되었다.

급기야 동전신에게 나의 운명을 맡겼다. 다보탑이 나오면 서울, 숫자가 나오면 대구.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도 결정하지 못한 나는 눈이 휑하니 십리는 들어간 엄마의 얼굴을 보고 교대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서울 대학생의 꿈은 화석이 되었다.


그 학교이다.

비록 사이버대이기는 하지만 40년 긴 세월을 돌아 돌아 입학했다.

마치 처음부터 이미 짜인 인생의 날실과 씨실처럼.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였기에 강의는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라이브 강의에 한 번의 결석도 없이 참석했다.

성적과는 하등 관계없는 강의였지만 사이버대의 목마름을 줌수업인 라이브강의로 해갈했다.

실시간으로 교수님과 학우님들의 얼굴을 보며 소통하는 라이브 강의가 특히 좋았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교재를 보고 또 보며 대학생이 된 뿌듯함을 즐겼다. 물론 며느리도 모르는 나만의 자아도취이다. 만학도가 되니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게 되었다. 열공의 대가는 달콤했다. 난생처음 '장학생'이 되어 자식들 앞에서 어깨에 힘도 넣어 봤다. 학기를 마치면 종강 파티장에서 연예인 보듯이 교수님과 학우들을 만나 젊은이 흉내도 내 보았다. 가을이면 대학 축제에서 체육 대회에서 줄다리기도 하고, 인기 가수들 노래에 떼창도 해 보는 낭만도 누렸다.

물론 직장과 살림, 손주 돌봄, 각종 독서 모임 등으로 거의 혼이 나간 상태였다.

몸이 몇 개가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스케줄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은 명료해졌다.

아픈 만큼 성숙한 것은 의식만이 아니었다.

나의 글쓰기 실력도 '일취월장'했다는 고사성어 외에는 대치할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입학 초기에는 공부에 치여 그나마 쓰던 글쓰기도 딱 끊게 되니 회의가 왔다.

'글을 잘 쓰려고 문창과에 왔는데 글은 한 편도 못쓰고 내가 뭔 뻘짓을 하고 있는 거야'

통렬한 자기비판과 함께 힘든 공부에서 도망가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배움은 공기처럼 스며들었고 향기처럼 은은하게 묻어났다.

나의 글은 주위의 독자들이 놀랄 정도로 달라졌다.

아니 그렇다고들 한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쓴 글이 맞냐고 칭찬인 듯 칭찬 아닌 기분 좋은 디스 멘트도 날린다.

'그럼 예전에 난 도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글을 쓴 거야?'

뾰로통하게 대꾸하지만 단전에서 올라오는 흐뭇함에 부르르 떨린다.

2년의 세월이 그냥 간 것이 아니었다.

이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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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졸업이다.

4.5학점에 4.3학점이라는 성적표 덕분에 성적 우수자로 특별상을 받았다.

45년 만에 학사복과 학사모를 다시 썼다.

가족들의 환대와 축하 속에서 꽃다발보다 환한 웃음꽃이 폈다.

졸업생 하나하나 각자의 사연과 각기 다른 현실 속에서 오직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주경야독을 했으리라.

가정과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더 나은 스펙을 위해,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더 나은 밥벌이를 위해 힘들지만 뿌듯한 시간을 견뎌왔을 것이다.

여느 대학과 달리 졸업생들의 연령층이 아주 다양했다.

뽀송뽀송한 젊은이들과 함께 희끗희끗한 흰머리의 중년, 손주들의 축하에 훈장 같은 주름살이 더욱더 깊게 파이도록 웃으시는 나와 같은 만학도까지.

이것이 사이버대학교의 매력이다.


빛나야만 했고

빛나야 마땅했으며

역시나 빛났던 졸업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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