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나도 누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

by 온오프

수희는 명절이 반갑지 않았다. 누군가는 연휴라고 불렀지만, 그녀에게 그 날들은 늘 마감일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반드시 해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수희는 늘 후자였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달력을 보는 횟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날짜를 세지 않아도 해야 할 음식의 목록은 이미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은 몇 가지를 부쳐야 하고, 나물은 색을 맞춰야 하며, 국은 무엇으로 낼지, 고기는 얼마나 재워야 할지. 설렘 대신 계산이 앞섰다. 쉬는 날이 아니라 준비의 날들이 이어질 뿐이었다.

어디선가는 연휴를 맞아 여행 계획을 세우느라 들뜬 목소리가 오간다. 항공권 가격을 비교하고, 숙소 사진을 확대해 보며 “이번엔 제대로 쉬자”고 웃는 사람들. 그 시간에 수희는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에 서 있다. 사람들 어깨에 밀리고, 장바구니가 서로 부딪히고, 손에는 점점 무거워지는 봉지가 매달린다. 생선과 고기, 채소를 고르느라 몇 번을 멈춰 서야 한다. 양손 가득 짐을 든 채, 무언가를 차려내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진 사람의 걸음은 가벼울 수가 없다.

그 장면 속에서 문득 ‘빈부격차’라는 말이 떠오른다. 통장의 숫자가 아니라 시간의 차이, 노동의 차이, 그리고 쉼의 차이. 누군가는 명절을 쉰다. 누군가는 명절을 치른다. 같은 날을 맞이하면서도 전혀 다른 무게를 진다.

가난은 꼭 돈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가난이 아니라, 마음의 가난. 누군가의 수고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제하는 태도. “이 정도는 네가 해야지”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식탁 위의 공기. 누군가 대신 움직여주고 대신 지쳐주는 일이 당연하다고 믿는 안일함. 그 마음은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실은 타인의 시간을 빌려 유지되는 풍요였다.

그 풍요를 가져본 적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은 점점 기대하지 않게 된다. 부탁하지 않게 되고, 결국 스스로를 소모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수희 역시 그랬다. “같이 하자”는 말 한마디면 넘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벽을, 그녀는 단 한 번도 건너지 못했다. 아니, 건너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먼저 말하는 순간 괜히 유난스러운 사람이 될까 봐, 괜히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될까 봐.

손에 들린 봉지 속에서 생선 비린내가 진동한다. 달랑, 달랑,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닐이 흔들린다. 코를 찌르는 냄새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진다. 냄새 때문일까. 아니면 이 역할이 늘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 때문일까.

시장 한켠에서 생선을 다듬고 있는 주름진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갈라진 손등, 젖은 앞치마, 무표정한 얼굴. 오래전부터 같은 일을 반복해온 사람의 등이다. 수희는 잠시 그 등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둔다. 자신의 삶도 저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분간되지 않는 소리였다.

명절 당일, 부엌은 전쟁터가 된다. 기름이 튀고, 불이 여러 개 켜지고, 냄비 뚜껑이 쉴 새 없이 들렸다 닫힌다. 만들고, 차려내고, 치우고, 다시 정리하는 시간. 기름 냄새가 배어버린 손, 뜨거운 국물을 옮기다 데인 손가락, 설거지 물에 불어버린 피부. 거울을 볼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그녀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하루 속에서 수희라는 사람은 점점 희미해진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오늘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묻는 이는 없다. 타인을 위해 존재한 순간들만 또렷하게 남는다. 타인을 위한 시간들이 모여 어느새 삶이 되어버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역시 명절 음식은 집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수희는 잠시 고개를 든다.

누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는 그 말 속에서,

정작 누가 ‘해주는’ 사람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모두가 잠든 뒤에야 부엌 불이 꺼진다. 싱크대에 물기를 닦고 나서야 수희는 의자에 조용히 앉는다. 식은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으며 문득 생각한다.

한 번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고.

아무 준비도, 아무 계산도 없이

그저 누군가 차려준 밥상 앞에 앉아

“맛있다”는 말만 해보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그녀도, 누가 해주는 밥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