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플랫폼: 빛과 그림자의 기록

by hong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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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향의 시작

버스의 옆구리에 박힌 노명(路名)처럼, 명절은 언제나 가야 할 곳을 먼저 가리킨다.

나의 명절은 늘 귀성 혹은 귀향이라는 이름의 이정표와 함께 시작되었다. 때로는 뒤처진 마음을 달래려 늦게 출발했고, 때로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낯선 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터미널의 입구로 밀려 들어갈 때면,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매연의 매캐함과 오래된 콘크리트의 습기, 그리고 누군가의 고단함이 섞인 그 묘한 냄새. 그것이 내게는 명절의 첫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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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머뭇거리는 빛

현대식 플랫폼의 매끄러움 대신, 때로는 낡은 역의 그늘진 구석에 마음이 머문다. 낮게 내려앉은 천장의 철골 구조물은 마치 삶의 무게처럼 어깨를 누르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빛은 비스듬히 바닥을 긋는다.


그 먹먹한 풍경 속에 서면 떠난다는 설렘보다, 이곳에 남겨두고 가는 시간의 부피가 먼저 가슴에 얹힌다.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돌아올 일을 걱정하는, 기묘한 정체(停滯)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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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른의 불안, 마흔의 숨 가쁨

30대의 나는 불안한 현재를 배낭처럼 메고 플랫폼을 건넜다. 그때의 명절은 현실로부터의 짧은 도피이자, 곧 다시 마주해야 할 숙제 같은 예고편이었다.


40대가 되어 다시 선 플랫폼은 공기부터가 다르다. 이제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오는 순간이 있다. 앞으로 마주할 명절들이 마냥 선명한 빛깔만은 아님을, 채워야 할 의무와 견뎌야 할 빈자리가 늘어갈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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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표정한 풍경

플랫폼에는 다양한 온도가 섞여 있다. 묘하게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청춘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환한 광원이 된다. 반면 나이 든 이들의 얼굴은 빛바랜 외벽처럼 고요하게 표정을 지운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속사정까지 묻지 않는다. 버스는 무심하게 제시간에 맞춰 들어오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실은 채 익숙한 순서대로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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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이 열리는 순간

터미널의 육중한 문이 열릴 때마다 찬란한 빛이 실내를 가로지른다. 그 빛의 경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다림을 견딘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화면 속으로 침잠하고, 누군가는 연기 속에 한숨을 섞어 내뱉으며 먼 곳을 응시한다.


명절의 기록은 반가운 재회의 표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쁨과 의무, 기대와 피로가 뒤섞인 그 조용한 얼굴들 틈에서 나는 비로소 명절의 진짜 얼굴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