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의 옆구리에 박힌 노명(路名)처럼, 명절은 언제나 가야 할 곳을 먼저 가리킨다.
나의 명절은 늘 귀성 혹은 귀향이라는 이름의 이정표와 함께 시작되었다. 때로는 뒤처진 마음을 달래려 늦게 출발했고, 때로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서둘러 길을 나섰다.
낯선 이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터미널의 입구로 밀려 들어갈 때면,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공기가 있다.
매연의 매캐함과 오래된 콘크리트의 습기, 그리고 누군가의 고단함이 섞인 그 묘한 냄새. 그것이 내게는 명절의 첫 장면이었다.
현대식 플랫폼의 매끄러움 대신, 때로는 낡은 역의 그늘진 구석에 마음이 머문다. 낮게 내려앉은 천장의 철골 구조물은 마치 삶의 무게처럼 어깨를 누르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빛은 비스듬히 바닥을 긋는다.
그 먹먹한 풍경 속에 서면 떠난다는 설렘보다, 이곳에 남겨두고 가는 시간의 부피가 먼저 가슴에 얹힌다. 출발하기도 전에 이미 돌아올 일을 걱정하는, 기묘한 정체(停滯)의 순간이다.
30대의 나는 불안한 현재를 배낭처럼 메고 플랫폼을 건넜다. 그때의 명절은 현실로부터의 짧은 도피이자, 곧 다시 마주해야 할 숙제 같은 예고편이었다.
40대가 되어 다시 선 플랫폼은 공기부터가 다르다. 이제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오는 순간이 있다. 앞으로 마주할 명절들이 마냥 선명한 빛깔만은 아님을, 채워야 할 의무와 견뎌야 할 빈자리가 늘어갈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플랫폼에는 다양한 온도가 섞여 있다. 묘하게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청춘들의 얼굴은 그 자체로 환한 광원이 된다. 반면 나이 든 이들의 얼굴은 빛바랜 외벽처럼 고요하게 표정을 지운다.
하지만 카메라는 그 속사정까지 묻지 않는다. 버스는 무심하게 제시간에 맞춰 들어오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실은 채 익숙한 순서대로 차에 오른다.
터미널의 육중한 문이 열릴 때마다 찬란한 빛이 실내를 가로지른다. 그 빛의 경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다림을 견딘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화면 속으로 침잠하고, 누군가는 연기 속에 한숨을 섞어 내뱉으며 먼 곳을 응시한다.
명절의 기록은 반가운 재회의 표정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쁨과 의무, 기대와 피로가 뒤섞인 그 조용한 얼굴들 틈에서 나는 비로소 명절의 진짜 얼굴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