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설날의 환대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에서 설날 아침이면 까치가 운다.
까치의 설날은 어저께인데 오늘도 극악스럽게 울어 제낀다.
어제도 오늘도 까치 설날할래.
오늘은 우리의 설날이란다. 까치야.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아기는 걸음마를 한다.
뒤뚱뒤뚱 걸음마하던 아기는 뜀박질한다.
폴짝폴짝 뜀박질하던 아이는 더 이상 뛰지 않는 어른이 된다.
아이고, 언제 이렇게 컸니.
애들 크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더디게 늙는 거야.
애써 위로해 보지만 서까래가 무너지고 두 기둥도 시원찮다.
분명 쇠락해 가지만 몬 본 척, 안 그런 척 꼿꼿하게 서 있을 뿐이다.
설날 떡국 한 그릇은 그냥 떡국이 아니다.
일 년 365일을 옹골차게 살아 낸 대가로 먹을 수 있는 세월이다.
나이와 맞바꾼 떡국은 몸을 살 찌우기보다 영혼의 허기를 달래준다.
계란 지단과 소고기볶음을 고명으로 머리를 장식한 쫄깃한 떡과 구수하니 뜨끈뜨끈한 국물은 포기할 수 없는 설날의 아름다운 마음의 점이다.
설날이면 어김없이 떡국 끓이는 냄새로 명절의 달뜸이 잠시나마 온 집안을 종종걸음 한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나이테 하나 추가는 달갑지 않다.
떡국은 먹되 나이는 먹지 말라고 농처럼 덕담을 던지지만 이룰 수 없는 희망사항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애달프듯이 다다를 수 없는 소망은 눈가를 짓무르게 한다.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가고 피부에 검은 꽃이 피어나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만 봐야 하기에 처연하다.
언제부터인가 설날은 때때옷 입고 세뱃돈 받는 이벤트데이가 아니라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황망한 시간이다.
이 세상을 떠나서 이제는 보지 못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지는 위안의 날이기도 하다.
저 세상에 가려면 반드시 건너야 한다는 요단강의 강바람이 내 볼을 스치는 온도가 더 서늘하게 다가오는 푸르른 날이기도 하다.
풀 먹인 무명 같은 빳빳함보다 다듬이질하여 부들부들해진 너그러움으로 설날을 맞이하고 싶다.
달콤한 약과 하나 입에 물면 세상을 다 가졌던 유년의 순진함으로 설날을 사랑하고 싶다.
끝도 한도 없이 볼 줄 알았던 설날의 말간 얼굴이 언젠가는 불이 꺼진 무대에서 나뒹굴지도 모르기에.
올해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온 설날을 환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