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라는 순간 이동

발음이 자라는 동안

by 시트러스

1. 뜻밖의 이동

"엄마, 슴가 이동할 수 있어요?"


두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슴가?" 잘 못 들었나?


"네, 못해요?" 세희가 따지듯 물었다.


아니... 하려면 할 수 있지?
이게 아닌가?
보통은 하나?


갈팡질팡하는 사이 만 7세 쌍둥이들이 속닥거렸다.

"못하나 봐... 아빠는 할 수 있을걸?"

물어봐라! 아빠 슴가 이동할 수 있는지!


2. 발음 하나의 우주

의문은 아이들이 쓴 종이를 보고 풀렸다.

'순간 이동'


"아아! 순간! 이동!"

나는 그제야 멘탈을 제자리로 불러왔다.


발음도 성치 않은 이 아이들이 올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된다.

"재롱 잔치하고 졸업하면 우리 순간 이동해야 한대요."

"맞아요. 김지우랑 신지현이 그랬어요."


3. 1년짜리 예고편

요즘 우리 집 최고의 화두는 재롱 잔치다.
사실 '요즘'이라기엔, 1년 전부터 이어진 예고편 같은 행사였다.

졸업 전 마지막 무대.


집에서는 매일같이 노래가 흘렀다.
"솔직히 말할게 많이 기다려 왔어~"
아이들이 노래를 외우는 동안, 나는 그 기다림을 외웠다.


두희는 겁이 많고 잘 운다. 12월생인데도 반에서 두 번째로 큰 키가 무색하다.

세희는 겁이 없지만, 나를 닮아 몸치다. 이 아이들이 무대에 선다니.

걱정이 앞섰다.


4. 겨울엔, 같은 방향으로

그날, 남편은 반차를 냈고 나는 조퇴를 했다. 첫째 원희는 자체 학원 휴강을 선언했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다.


늦은 오후, 조금 길어진 겨울 하늘 아래 택시를 탔다. 재롱 잔치가 열리는 구청 건물로 향했다.

어둑한 조명 속, 관람석에서 발 사이에 작은 핑크 꽃다발을 세워둔 남편과 첫째를 찾았다.


"지금 무슨 차례야?"

곧 응원단 복장의 아이들이 무대로 뛰어나왔다.

그중 배가 볼록한 아이. 또래 중 가장 작은 아이.


소리 없이 손을 붕붕 흔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작은 꽃이 피어나듯 환하게 웃었다.

아, 이 아이들이 정말로 자라고 있구나.

무대에서 빨개진 코는 보이질 않길 빌며 마주 웃었다.


5. 무대 뒤의 계절

그리고, 도움반 친구 뒤에 무릎을 꿇고 동작을 함께 하고 계신 저분.

아이들 곁에서 같은 호흡으로 팔을 움직이시는 분.

10년째 우리 집 세 아이를 맡아주신 담임 선생님이셨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 온 뒤, 1년 가까이 첫째는 멀리 떨어진 어린이집에 가야 했다.

갈 곳 없던 우리에게 자리가 생겼다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조금 무뚝뚝하신가? 잘 부탁드린다고 고개를 몇 번이나 숙여 인사를 드리고 왔다.


그 뒤로 선생님은 한결같으셨다.
산발로 등원한 아이들의 머리를 땋아주시고, 텃밭 상추를 봉지째 건네주시고,
아픈 날엔 간식을 들고 집 앞까지 찾아와 주셨던 분.


6. 10년 치의 온기

"아이들 옷 부족하지 않으세요?" 졸업생 기부로 들어오는 옷은 보따리째 자주 우리 집으로 직행했다.

"두희, 세희 잘 놀고 있습니다. 천천히 오세요, 어머니."

사진 속에는 아침에 보낸 꼬질한 아이들 대신, 뿌까 스타일 공주들이 웃고 있었다.

선생님은 늘 제일 먼저 등원해, 제일 늦게 하원하던 아이들 곁을 지켜주셨다.


살면서 타인의 순수한 호의를 만날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오래된 진심은 설명 없이도 곁에 남는다.

나는 긴 시간 동안 그 다정함을 빌려 아이들을 키웠다.


7. 겨울이 넘기는 페이지

첫 무대가 끝나고 조명이 밝아졌다.

무대 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의 옷매무새를 다시 만져주는 손이 눈에 들어왔다.

"민준아, 이리 와." 선생님이 몸을 낮추자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었다.

작은 손들이 서로의 반짝이 의상 소매를 붙잡았다.


졸업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와, 부모와, 그리고 선생님의 시간이 함께 마침표를 찍는 일이었다.

그동안 쌓여온 돌봄의 시간이, 조용히 다음 칸으로 옮겨갔다.

발음은 여전히 서툴고 앞니는 아직 비어 있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한 계절을 건너가고 있었다.


나는 객석에 앉아 문득 생각한다.

순간 이동은 몸이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8. 그리고, 우리

그 시간이 겨울처럼
린 걸음으로 지나 가기를 바란다.


다음 무대가 열렸다.

나는 새 발레복을 입고 환히 웃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얼굴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그리고 가만히,

시간을 누르듯 가슴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