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비비다

봄동 비빔밥

by 정유스티나

봄을 맞이한 지 예순 하고도 손가락 몇 개가 더 필요한 세월을 살아내면서도 봄동을 몰랐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주부로 산 시간도 수십 년이지만 봄동 요리를 한 번도 식탁에 차려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요리와는 내외를 하며 멀리 했지만 특히 나물로 맛을 내는 요리가 더 어려웠다.

'봄동'이라는 나물이 따로 있는 줄 알았더니 노지(露地)에서 겨울을 보내어, 속이 들지 못한 배추. 잎이 옆으로 퍼진 달고 씹히는 맛이 좋은 봄철 대표 나물.이라고 네이버 사전에서 알려 주었다.

배추, 너였니?

추운 겨울을 견뎌낸 기특하고 장한 아이.

물론 급식이나 식당에서 가끔 먹은 기억은 있지만 자주 먹지 않았기에 아련한 추억 따위도 없다.

그런데 올봄에는 이상하게 '봄동'에 꽂혔다.

요즘 핫한 식재료이고 숏폼에 자주 등장하는 나물이어서는 절대 아니다.

'봄동'의 줏가가 오르고 올봄에 제일 잘 나가는 유행하는 음식인 줄도 까마득히 몰랐다.

그냥 내 몸이 원했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평생 처음으로 '봄동'을 샀다.

400원이라는 가격표에 너무 싼데? 이 정도면 망쳐도 아깝지 않겠지!

계산대에서 100그램이 400원이고 내가 고른 넙데데한 그 녀석은 4,650원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살짝 당황했지만 그냥 사버렸다.

그다음에 할 일은 바로 유튜버 요리 검색이다.

부끄러운 고백 하나를 더 하자면 평생 내 손으로 김치를 담근 적이 없다.

그래도 이날까지 굶어 죽지 않고 살아온 것을 보면 복이라고 해야 하나? 직무유기라고 해야 하나?

암튼 김치의 사촌인 겉절이를 하는 방법을 모르니 요리 선생님의 레시피를 보고 또 보며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나 되감기를 했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왔다.

얌전하게 다리를 모은 배추만 보다가 있는 대로 뱃속을 다 드러내 놓은 그 녀석을 다듬는 것도 일이었다.

레시피를 복기하며 다시 켜고 재생하기를 반복하며 '봄동 겉절이'를 완성했다.

누가 보면 대단한 요리라도 하는 줄 알겠지만 나한테는 생애 최초의 도전이었기에 의미 있었다. '봄동'이 '겉절이'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은 생각보다는 쉬웠다.

'흠, 김치도 도전해 봐야겠는걸?'


옆에서 군침을 흘리며 보고 있던 남편이 설레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고 대기 중이다.

큰 양푼에 뜨끈한 보리밥을 양껏 담고 정성스레 만든 '봄동 겉절이'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고추장 두 스푼, 참기름 한 스푼을 두르고 양손으로 진지하게 비빈다.

비빔밥에 대한 나만의 정석이 있다.

고추장 비빔밥에는 참기름은 절대 넣지 않는다.

간장 비빔밥에만 참기름을 넣는다.

그리고 어떤 비빔밥이던 계란 프라이는 함께 비비지 않는다.

이유는 고추장 비빔밥의 순수성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할까?

그런데 '봄동 비빔밥'에서 이 질서가 깨졌다.

고추장 비빔밥인데 참기름을 첨가한 것이다.

아마도 봄동이 주는 상쾌함 초과에 취해 고소함까지 욕심이 났나 보다.

그리고 이 조합을 결정한 나 자신을 마음껏 칭찬했다.

코를 찌르는 고소함에 뱃속 시계는 아까부터 울어댄다.

꿀 떨어지는 눈 맞춤 끝에 달콤한 입맞춤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치아는 거들뿐 씹지도 않고 혀를 굴려 꿀꺽꿀꺽 잘도 넘어간다.

"히야, 최곤데."

"히야,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맛있네."

두 볼 가득 '봄동비빔밥'을 밀어 넣으며 찬사와 자화자찬을 늘어놓는다.

만든 공이나 시간에 비해서 잔치는 너무 빨리 끝났다.

금방 바닥을 보이는 양푼을 하릴없이 박박 긁는다.

"아, 밥을 더 많이 비빌걸."

뱃속은 벌써 가득 차서 볼록인데 입은 계속 달라고 아우성이다.

봄동, 너 진짜 괜찮은 녀석이구나.

생애 첫 도전이랄 것도 없는 도전이 기대 이상의 히트를 치는 바람에 나의 장바구니에 '봄동'이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그 녀석을 발견만 하면 기어코 집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봄동 전'

또 하나의 히트작이다.

부침이야 내 전공분야이니 그냥 뚝딱 부쳤더니 배추 전과는 또 다른 아삭한 식감과 함께 향기로운 봄내음이 살아서 펄떡인다.

노란 어린잎은 얼마나 야들야들한 지 그냥 쌈으로 싸 먹거나 생으로 씹으면 겨우내 추위를 견디며 속을 들이지 못한 헛헛함을 생동하는 봄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 준다.

이래서 '봄동, 봄동' 하나보다.

의도치 않았지만 올봄 트렌드 음식인 '봄동' 요리로 나의 봄은 한껏 렌드에 감한 자가 되었다.

봄동을 사용한 요리는 그냥 요리가 아니다.

'봄'을 함께 비비고 부치기에 아찔한 봄내음에 취한다.

딱 지금 안 먹으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기에 반드시 먹어야 할 봄나물, 두쫀쿠보다 봄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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