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련이
목련 나무에서 부드러운 털로 둘러싸인 꽃몽우리를 꺾어서 물병에 꽂아서 자취방에서 키웠다. 꺾인 가지에 매달린 목련은 물만 있어도 꽃을 피웠다. 그렇게 한 계절을, 그 꽃에게는 한 번뿐인 생명을 방으로 끌고 왔다. 대학교 1학년부터 몇 년간 봄이 되면 그렇게 목련 나무를 꺾었다. 나는 그 꽃을 ‘련이’라고 부르며 친구처럼 대했다. 하얀 속살이 드러나고, 외롭게 꽃을 피우는 동안 ‘련이’를 바라보며 행복해했다. 나의 하얀 친구, 나의 작은 행복, 나의 ‘련이’
‘련이’ 지면 프리지어를 사서 자취방에 꽂아두었다. 해가 드는 창가에 꽃병을 두고,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빈 방을 밝혀주는 그 노란 꽃, 은은한 향으로 채워주는 프리지어를 좋아했다. 프리지어는 친구보다는 떠들고 있는 아이들 같은 느낌이었다. 늦은 귀가에 아무도 없는 방으로 가도 프리지어를 보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소리는 ‘오늘 뭐 했어?’, ‘왜 이렇게 늦었어?’ 같은 것들이었다.
프리지어가 지면,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도서관 뒷길에는 라일락이 피었다. 그 라일락 앞을 바삐 지나다니며 시험 준비를 했다. 방에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수면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시험 범위는 고무줄이 늘어나듯, 공부할수록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공부만 하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시험기간에도 꾸역꾸역 과외를 해가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다시 도서관으로 가는 밤이면 라일락 향이 아찔하게 봄바람에 실려와 피곤한 나를 깨워주었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벚꽃은 이미 지고, 라일락도 사라지고, 봄도 끝물이었다. 봄은 ‘련이’와 프리지어와 라일락으로 차례로 왔다가 갔다. 그들의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짧은 봄도 그렇게 지나갔다.
나의 봄은 봄볕과 봄바람을 느끼지 못한 ‘련이’와 나를 밝혀주던 사치품 프리지어와 아찔한 첫사랑 같은 라일락으로 중첩된다. 나의 봄은 꽃으로 가득하게, 그렇게 외롭고 밝았고 아찔했다.
봄볕을 한 번도 바로 맞아보지 못한 ‘련이’는 가련했다. 이름까지 붙여가며 좋아했으나, ‘련이’는 나로 인해 갇혔다. 외로움을 달래주던 ‘련이’, 그 고마운 꽃을 나는 봄이 되면 떠올린다. 프리지어나 라일락처럼 만날 때마다 설레고 반가운 기분이 아니라, 애잔함이 먼저 온다.
그 '련이'를 시로, 기억해 본다.
우리 련이
설애
봄엔 련이 핀다
뽀얀 볼에 햇살 머금은
어린것을 데려다가
방에 혼자 둔다
련이는 종일 기다리며
피고 피다가
봄을 저버렸다
고개 숙인 련은
검게 잊었다
봄을 툭 버렸다
련아, 미안했어.
련아,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