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의 3월은 조용히 시작되지 않는다.
교실마다 새로운 이름표가 붙고, 엄마 손을 놓지 못한 아이들의 울음이 복도를 따라 번져간다.
교사들은 더 바빠진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고
낯선 하루에 천천히 익숙해지도록 곁을 지킨다.
“괜찮아, 선생님이 여기 있어.”
그 말 한마디에 아이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고
교실은 서서히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정신없이 ‘시작’ 속에 서 있다.
그래서일까, 계절이 바뀌는 것도 늘 한 박자 늦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도
아, 봄이 왔구나,
하고 먼저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
수선화다.
어린이집 화분에는 해마다 같은 자리에 수선화가 올라온다. 겨울 내내 아무 기척 없던 흙이 어느 날 보면
살짝 갈라져 있고, 그 틈 사이로 연둣빛 싹 하나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꽃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여린데도
그 모습 하나로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된다.
며칠이 지나면 그 작은 싹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잎이 길어지며 바람에 살짝 흔들릴 만큼 자라난다.
그리고 또 어느 아침,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큼 조용히 노란 꽃망울이 맺혀 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렇게 하루, 이틀 사이에 꽃은 활짝 피어나고
어린이집 한켠이 환하게 밝아진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수선화는 늘 자기 때를 알고 올라온다.
그래서 더 신기하고, 그래서 더 반갑다.
그래서인지 수선화를 보면 괜히 마음이 놓인다.
아, 올해도 봄이 오고 있구나.
수선화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결국 꽃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수선화는 자기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한편 동양에서는 수선화를 ‘물 위의 신선’이라 부른다.
맑은 물가에 피어 고요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신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어떤 이들에게는 맑고 단정한 마음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같은 꽃인데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이
어쩐지 사람과도 닮아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수선화는 늘 그 자리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해마다 그곳에서 자기 시간을 기억하듯 피어난다.
망설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이 자신의 계절이라는 것을.
바쁜 신학기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잊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이 시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럴 때 수선화는 아무 말 없이 알려준다.
지금 이 시간도 결국은 따뜻한 계절로 이어지고 있다고.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올해도 3월 초,
어김없이 고개를 내민 수선화가 유난히 더 반가웠다.
누구보다 먼저 봄을 살아내는 꽃.
그래서일까.
나는 아직 봄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날에도 그 꽃을 한 번 떠올려본다. 이미 어딘가에서는 봄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피어난다는 것을.
봄은 그렇게, 수선화처럼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