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씁니다

쓰는 사람

by 정유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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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나의 고뇌는 시작되었다.


머릿속에서는 무수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손가락 끝을 통해서 활자로 나오는 결과물은 영 시원치 않다.


모니터를 째려보고 있는다고 자판에서 내 손가락이 춤추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그라미인데 삐뚤빼뚤 정체를 알 수 없는 도형이 되기가 일쑤이다.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들이 저마다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어쩜 그렇게나 잘들 쓰는지...



'어휴, 미쳤지 미쳤어. 내가 무슨 글을 쓴다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고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책들이 쏟아지는데 난 명함도 못 내밀어. 설사 책이 나왔다 해도 창피만 당할 게 분명하니 꿈 깨자.






꿈 깨
깨몽!





이렇게 수년을 흘려보냈다.

지천명을 지나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게 되어 듣는 대로 다 이해하게 된다는'이순'의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록 세상의 이치는 다 깨닫지 못했지만 나의 마음에 크나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내가 무슨 거창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고 한 건 아니잖아?

다른 사람의 이목이나 평판이 뭐가 중요해?

다만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보는 거야.

지금 죽어도 그리 원통하지 않을 만큼 살았으면

이쯤에서 내 인생을 반추하며 기록해 보는 것도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비록 나의 삶이 비루하고 딱히 이룬 것은 없을지라도 나한테는 가장 소중한 인생이야.'


이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급함과

더 늦으면 진짜 후회하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강한 불안함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래
그 까짓 거
한번 질러보는 거야!








시작을 씁니다.jpg 공저 '시작을 씁니다'




벼락을 맞은 듯이 섬광 같은 깨달음과 다짜고짜 질러 보자는 무모한 용기로 무작정 '공저 쓰기'에 참여했다.



'시작을 씁니다'

마침 책 제목도 지금 나의 상황과 찰떡이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책이 세상에 태어났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힘들었지만 그 경험은 짜릿했고 기쁨으로 충만했다.


물론 뒤이어 닥치는 부끄러움에 대한 현타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기뻐하고 뿌듯해하는 가족이 있기에 괜히 했다보다 잘했다가 되었다.


초등 2학년이었던 손녀는 피아노 학원 다니는 것을 두려워해서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책을 내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고 한다.


무모한 도전이 무한한 도전이 되는 순간이다.


비록 2년이 지난 지금 세상으로 나간 내 자식을 다시 거둬 들이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지만...





이제 또 쓰려고 한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만족할 것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이유로 포장하지는 않겠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읽고 위로받기를...


한바탕 웃음 뒤에 찔끔 눈물이 나는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서 향기를 뿜었으면 좋겠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나의 상처와 나의 역경과 나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생활 속의 소소한 이야기를 활자화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육신은 초록별 소풍을 마치고 본향으로 돌아가더라도


내 이름 석 자로 지어진 삶의 편린들은 나의 자손들에게 길이길이 남아서 나를 추억해 줬으면 좋겠다


"우리 할머니(증고, 고조), 쪼꼬만 귀요미 할머니, 책을 쓰시고 참 멋쟁이셔.


나도 할머니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될게요."


하늘에서 두 귀 쫑긋하며 듣고 있을 것이다.




-스릴러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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