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나는 누구인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숱한 시간을 고뇌와 번민으로 보낸다.
물론 그 크기와 깊이는 천차만별이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겠지만 말이다.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수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하고 헤일 수 없는 많은 낮의 시간이 상념으로 채워진다.
우리 소싯적에는 혈액형으로 모든 성격 파악의 실례를 범했다.
모든 사람을 혈액형 네 개에 끼워 맞춰 판단하고 가까이하기도 멀리하기도 했다.
나는 B형이다.
소위 나쁜 남자의 피이다.
여자에게는 좋은 여자의 피로 치환될 리가 없다.
고로 나는 나쁜 여자의 피를 가졌다.
요즘 세대에는 MBTI로 성격을 나눈다.
나는 잘 모르겠다.
문항도 너무 많고 선택하기도 애매모호하다.
신세대 흉내 내느라 한 번 해 봤는데 어느 유형인지 알파벳을 외우지는 못하겠다.
인생은 도전이지. 나의 뜻대로 따라 주지 않으면 하드캐리!
라는 풀이만 기억할 뿐이다.
요즘도 인터넷에 수많은 혈액형에 따른 특징과 성격, 궁합, 병에 대한 취약점,
공부하는 방법, 수혈 정보까지 검색이 가능하다.
나는 혈액형이 편한 구한말 세대이다.
B형의 특징을 보면 나와 비슷한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면도 있다.
특히 누구보다도 조직에서 묻혀가길 소망하며 개성적이기보다는 순응적인 성격이다.
낙관적인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대처하지는 못한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연기를 하지만 내면에서는 엄청 조바심 나고 안달복달하며
내 심장을 갉아먹고 내 팔자 내가 볶는다.
그래도 아무리 큰 걱정이 있어도 잠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 것을 보면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느긋하다고 해야 하나 수긍한다.
혈액형별 특징으로만 보면 차라리 A형에 더 가깝다.
조직에서 협조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중요시하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중시한다.
예민하지는 않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입어서 늘 가슴에 반창고가 붙어 있다.
재미로 보는 혈액형별 성격이지만 결코 재미로 끝나지 않는 무엇이 분명 있다.
혈액형 궁합을 보니 여자 B형하고 남자 A형일 때 여자 입장에서는 가장 좋아 보인다.
반대로 말하면 남자는 좀 괴로운 관계라고 한다.
우리 부부가 여기에 속한다.
트리플 A형인 옆 지기가 나로 인해서 많이 억눌리고 피해보며 사는 건 아닌지 슬쩍 미안하다.
왜냐하면 딸들의 의견에 의하면 늘 아빠가 엄마에게 당(?) 하고 산다고 나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다소 억울한 점이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인정하기에 잠시 반성의 묵념을 한다.
남편 쏘리~^^
그래도 사랑해.
당신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