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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힙한 그녀

by 정유스티나

너 또 입술 뚫었니?


자유로운 영혼인 막둥이 입술에서 반짝이는 보석을 발견했다.

이미 귀에 피어싱이 주렁주렁이다.

코에서도 입술에 있는 것과 같은 반짝거림을 보고 기겁을 한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지만 여전히 또 기을 한다.


무슨 원시인의 피가 흐르는 거야?

왜 그렇게 뚫어대니? 내가 몬 산다.

전생에 중세 시대의 여전사였나?

자고로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몸이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소중히 여겨야 하거늘

이 무슨 해괴망측한 처사인고?


사뭇 부모로서의 위엄으로 승기를 잡으려 해도,

헤헤~

능글맞은 웃음과 잔나비띠 특유의 알랑거림으로 무마하려는 막둥이가 이번에는 좀 밉다.

게다가 그런 것들이 은근히 어울리기에 반박 불가라는 것이 약이 오른다.



모델-내 딸과 비슷하지만 내 딸은 아님






이쁜 딸을 낳으며 행복한 상상을 했더랬다.

프랑스 인형처럼 꾸며야지.

긴 머리를 구불구불하게 펌을 한 후 색색별 리본으로 묶어 줘야지.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종이인형의 옷처럼 프릴은 기본이요, 블링블링한 드레스를 입힐 거야.

내가 좋아하는 상아색과 연한 살구색 옷을 입히면 온 동네가 환하겠지?

그 꿈이 산산조각 나는 데 딱 3년 걸렸다.

이목구비는 천생 여자인데 여자여자한 옷을 입히면 도통 어울리지를 않았다.

잔뜩 사놓은 꿈실현 드레스는 몇 번 입히지도 못하고 장롱에서 숙면을 하다 작아져서 지인들 아기들에게 가 버렸다.

내가 봐도 어색하기에 아깝지는 않았다.

흑백이나 무채색의 시크한 옷이 우리집에 등장했다.

치마는 안드로메다로 사라지고 티셔츠와 바지로 옷장이 채워지고 당연히 딸의 차림새로 환승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어떻게 되었을까?

거리의 쓰레기는 다 쓸고 다녔다.

그 애의 바지는 종종 구멍이 뚫렸다. 구멍이 없으면 바짓단이라도 풀어 재꼈다.

6.26 사변 때나 입었음직한 구호물자 같은 옷을 누더기처럼 걸쳤다.

급기야 지가 무슨 박진영이라고 가죽이라고 하기엔 비닐에 가까운 바지를 입었을 때는, 정말이지 동네 창피함에 내 딸이라고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에구구, 그 옷 돈 주고 산 거니?

그럼, 엄마. 이 옷 구하느라 명동을 다 뒤지고 구제 옷집을 얼마나 돌아다녔는데.

아주 힘들게 구한 옷이야. 그리고 저 옷은 바다 건너온 옷이야.

내 눈에는 구호물자만 같구먼.

어휴, 엄마. 무슨 그런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세요? 멋을 모르시는구먼.


우리 모녀는 자주 이런 대화를 서로의 뒤통수에 대고 해댔다.

그런 옷차림이 딸에게는 잘 어울린다는 것에 또 약이 오른다.


평생 튀는 것이라고는 꿈에도 해 본 적 없고,

떄와 장소에 맞는 복장으로 지루함을 더해 주었으며,

밤문화라고는 헬스장에 가는 것 밖에 없어서,

제부가 '청교도적인 삶' 이라는 형을 때린 우리 부부에게.


세상 힙한 그녀는 나막신을 연상하는 굽높은 구두라도 신어야 하고,

물 건너 온 구제 물품으로 어두컴컴을 담당하며,

튈 게 없으면 하다하다 금빛 번쩍이는 양말이라도 신어야 한다.

이런 딸이 나에게서 났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고 적응이 안된다.


내겐 너무 힙한 딸!

이제 엄마 그만 놀라게 하고 좀 살살해 줘.

이제 나도 힘들어.

이제 엄마도 늙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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