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칼날이 없으면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이 있다.
까마득한 구멍을 통해 세상 부드러운 혀를 거쳐 나가는 말(언어)이 이 세상 어떤 검보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서있다.
형체도 냄새도 색깔도 없는 무형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부드러운 동심원이 되어 심장을 어루만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기도 하고, 뾰족뾰족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마음의 상처를 남기며 선혈을 흘리게도 한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라는 속담이 생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한 '서희'의 외교 대담도 있다.
우리는 말을 않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
말로 상처받았을 때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비수를 꽂았다고 반성될 때 내가 자주 읊조리는 노래이다.
주로 옆 지기와 두 딸과의 관계에서 자주 발생한다.
코로나 시대에 매식이 전혀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요린이였던 내가 매일 유튜버 요리선생에게 요리 하나를 전수받아서 정성껏 저녁밥상을 차렸다.
대부분 일품요리로서 퓨전요리였기에 흉내는 낼 수 있었다.
게다가 결과물의 모양만 근사한 것이 아니라 맛도 괜찮았다.
"여보, 너무 맛있지 않아? 와~내가 생각해도 나 요리에 재능이 있나 봐."
매번 자화자찬을 한바탕 늘어놓으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자아도취였다.
"여보, 당신 나이면 이 정도 요리는 다 해."
띵~
나의 깨방정을 참다 참다 뱉어낸 말치고는 5톤 무게의 철퇴로 머리를 맞은 듯 잠시 정신이 멍했다.
"맞아. 내 나이에 이 정도 요리는 다하지. 하지만 내 나이에 이런 요리 안 해. 주위에 보면 이렇게 노력하며 밥상 차려 주는 사람은 없다고."
다소 추측성 확신으로 섭섭함의 단말마를 겨우 내뱉고는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1주일 동안 한 지붕 두 가족, 남편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말을 섞지 않았다.
요리에 대한 모욕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모욕이며,
나의 노력을 하찮게 여기는 남편의 태도에 타인이 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눈치 없는 남편도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그때부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빌었지만 나의 정 떨어짐은 꽤 오래갔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의 상처가 문득문득 뻘건 살을 드러낸다.
"아빠가 잘못했네."
"아버님, 간이 많이 크시네요."
두 딸과 사위의 응원과 공감 덕분에 어찌어찌 화해를 하고 평화를 되찾았지만
나의 옹졸한 마음은 지금도 응어리가 있음을 고백한다.
그 이후 요리에 대한 열정이 뚝 떨어졌기에 그에 대한 손해는 고스란히 남편이 감당할 몫이다.
'말 한마디에 없던 빚도 덤터기로 덮어쓴다'라는 속담을 사전에 등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