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단상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 있다.
지하철 타는 시간이 30분을 넘어가다 보니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내 다리도 슬슬 무리가 왔다.
게다가 책을 읽거나 핸드폰의 노트기능을 이용해서 떠오르는 단상을 글로 쓰는 작업을 종종 하다 보니
앉아 가는 것이 소망이 되었다.
타는 역에서는 십중팔구 자리가 나지 않는다.
그럼 차선책은 빨리 내리는 사람을 찍어서 그 앞에 서는 작업이다.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르듯이, 누가 빨리 내릴지 도무지 알지 못하기에
그날의 촉이나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재수가 좋으면 한 정거장 지나고 바로 앉기도 하지만
마지막 한 정거장을 남겨 놓고 자리가 나는 최악의 날도 있다.
그래도 한 정거장도 못 앉은 적은 없으니 감사할 일인가?
몇 주가 지나면서 앉아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나를 발견한다.
얼굴 생김새로 어느 역에서 내리는 지를 알아 맞추기는 불가능하니,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 소지품, 앉아 있는 자세 등등을 종합해서 유심히 살핀다.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과 앙증맞은 가방을 든 아리따운 청춘은 강남 언저리에서 내릴 것 같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풋풋한 사과 향기가 나는 싱그러운 청춘은 대학이 있는 역에서 내릴 확륙이 꽤 높다.
50대나 60대의 중장년층의 사람들은 어쩐지 좀 멀리 갈 것 같다.
일자리가 멀어도 꿋꿋하게 출근길에 오를 것 같아서이다.
마치 나처럼...
정차하는 역을 안내하는 전광판을 자꾸만 흘끔거리는 사람은 십중팔구 일찍 내린다.
가끔 맞기도 하지만 내가 찍은 사람은 미동도 없고 옆 사람들만 연이어 내리는 비운을 맞이하면
나의 촉을 비관하고 좌절한다.
‘선무당이 그렇지 뭐'
잘 맞추면 작두타지 왜 지하철을 타?
그런 날은 힘든 출근길이 더욱더 고난의 길이 된다.
오늘도 퇴근하기 위해서 출근을 했다.
좋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미처 선무당의 레이더를 켤 새도 없이 잭팟이 터졌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서게 된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한 정거장 지나자 내리는 것이다.
브라보!
이렇게 작은 행운에 이리도 기뻐하는 소시민이지만,
이 맛에 부서지는 햇살만큼이나 눈부신 하루를 예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