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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뭔 날?

by 정유스티나

"엄마, 나 오늘 학교 가기 싫어서 부산에 왔어."

"뭐라고? 왜? 무슨 일 있나?"

"엄마 보고 싶어서 왔지~"

"아, 오늘 만우절이지?"

"앗, 엄마. 어떻게 알았어? 오늘 만우절인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웃음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나의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마침 엄마는 젊은 시절 만우절의 추억을 생각하고 계셨다.

엄마 친구가 집으로 놀러 오라는 전화를 받자마자 한복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예쁜 스카프로 단장한 후 발걸음도 가볍게 친구집에 갔다. 그런데 친구가 집에 없다.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전화를 해 보니-그 당시는 스마트 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친구가 오늘이 만우절이라서 속여 먹었다고 했다.

"아이, 그건 아니지~그런 도를 넘는 장난을 하면 안 되지."

내가 괜히 부아가 나서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아냐. 그때는 만우절은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누구라도 폭싹 속여 먹어야 하루를 잘 보낸 것 같았지. 화나기는커녕 얼마나 웃었던지. 마침 오늘 아침에 만우절인 걸 알고 그때 일이 떠올라서 혼자 웃고 있던 참이었다."

"오홀, 우리 엄마 멋쟁이고 센스 있으신대?"

나의 만우절 행사는 대실패로 끝났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 나 학교 가기 싫어서 당신 회사로 가고 있어. 우리 땡땡이치고 놀러나 가자."

"뭐라고? 아니.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왜 그래?"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기까지 한다.

"일은 무슨? 나도 학교 가기 싫은 날도 있지. 나 앵벌이 못 시켜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거야?"

"참내. 도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오늘이 뭔 날이지 알아?라고 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당황하는 남편을 보니 만우절 행사 대성공이다.

"사람도 참. 깜짝 놀랐잖아. 그러고 보니 오늘 만우절이네? 옛날에는 불났다고 소방서에 장난 전화도 많이 하고 만우절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는데. 잊고 살았는데 당신 때문에 한 번 웃네."

"즐거웠다면 땡큐입니다."

내친김에 절친의 전번을 찾는다.

"친구야, 나 오늘 학교 가기 싫어서 너네 집에 왔는데 내려와. 마음도 꿀꿀한데 바람이나 쐬러 가자."

"아이고. 내가 너를 아는데 네가 그럴 애니? 우리 집 앞이면 올라와. "

"오잉? 나는 좀 그러면 안 되니? 네가 내려와."

계속 깔깔 웃으며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면 내가 왜 그랬는 줄 알 거야."

무슨 날이냐고? 짱구를 굴려도 모르겠다고 계속 웃는 친구. 만우절 행사 폭망이다.

출근길 20분 걸으며 자체적으로 개최한 만우절 퍼레이드는 3전 1승 2패이다.

승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일탈에 대한 거짓말이 나에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다.

그건 내가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역으로 말하면 참 재미없게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각성하고 시정해야하나?




우리 어릴 적에는 만우절이 국경일인 줄 알았다. 태극기는 달지 않았지만 거짓말이 공인되는 경사로운 날인 것은 분명하다.

그 시절 아이들이 순수하고 거짓이 없어서 만우절이 더 특별한 날이었나 보다.

거짓말이 가능한 날인 만우절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만우절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중국집에 전화해서 잔뜩 시킨 후 거짓 주소를 알려준다던지, 소방서에 전화해서 우리 집에 불났다는 장난 전화를 하는 것 같은 좋지 못한 폐해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며 같이 폭소하며 즐기는 축제라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긴 시간 만우절을 잊고 살았다. 요즘 아이들도 만우절을 크게 애용하는 것 같진 않다.

옛날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요즘 아이들은 평소에도 거짓말을 많이 해서 만우절이 특별한 날이 아니게 되었나?

잊고 살던 만우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음으로 시작한 오늘 나를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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