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처입은 무릎은 이제 다 나았을까
어린 시절 나는 잘 넘어지는 아이였다. 성격도 급하고 생각은 늘 저만치 앞서가 있어서 몸이 말을 안 듣는 타입이었다. 곁에서 늘 듣던 소리가 얌전하게 생겼으면서 의외로 덜렁거린다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무릎은 언제나 상처투성이였다. 한 쪽이 아물면 다른 한 쪽에 또 다시 생채기가 나고를 반복하기 일쑤였다. 과산화수소수를 상처 한가득 들이 부으면 뽀글뽀글 나던 하얀 거품과 냄새는 어린시절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십대의 내가 엄마아빠의 서재에서 발견한 책 한 권이 있었다. '나를 운디드니(Wounded Knee)에 묻어주오'라는 다소 두꺼운 책이었다. 미국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가 달려 있고, 책 표지에는 눈을 지긋이 감은 한 인디언이 누워 있는 모습이 있었다. '운디드니'는 '상처입은 무릎'이라는 뜻을 가진 라코타족 '와크팔라'의 이름을 번역한 이름이고, 인디언 전쟁 말기 운디드니 학살까지의 이야기를 원주민의 구술사로 기록한 책이었다. 청소년 시절의 나는 그 내용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들의 '상처입은 무릎'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억울하게 상처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아가 어쩌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아프고 힘든 과거일은 골치아프다며 접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나 아픈 과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보다는 감추고 싶고 불편한 이야기들에 눈길이 갔다. 그래서 나의 역사적 관심이 주로 제노사이드, 강제징용, 양민학살, 디아스포라 등에 도달했는지 모르겠다. 혹시 더 공부를 지속했다면 저런 주제를 연구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저 경기도 한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박물관에서 일하지만, 내 삶의 방향은 언제나 저런 역사를 향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늘 느낀다. 나는 상처입은 사람들과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