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에 나는

by 에쩨르

눈이 되고 싶다

네가 잠든 밤이면 소리 없이 내리는 도둑눈 되어 소프라노로 터지는 탄성을 듣고 싶다
희붐한 시간 눈 맞으러 나온 너를 위해 초설의 눈밭이 될게

가끔 멍해 있을 때는 갈기눈 되어 깨우고
흥뚱항뚱 들뜬 날엔 싸락눈 되어 채찍질할 거야

허허로운 날엔 사락 사락 뽀드득 뽀드득 알레그로 안단테로 노래가 될게
간간이 내리는 포슬눈 되어 사분사분 이야기도 들려줄 거야

한길 사람 속 몰라 휘휘해할 때면 투명한 얼음꽃 되고
헛헛한 속내 다 털어놓을 수 있도록 설원이 되겠어

별을 이고 발을 끄는 하사분한 날엔 함박눈으로 위로가 되고
속살 에이는 슬픔에 우는 날엔 눈석임물로 흐를게

답답한 일에 치인 날엔 얼음 알갱이 되어 타는 위벽에 흐르고
네가 아픈 날엔 꽃눈이 되어 빙글빙글 춤을 추겠어

일에 눌려 휘진 날엔 통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이 되고
벽에 부딪혀 낙담할 때면 소나기 눈으로 활기가 되어줄게



갈피 못 잡고 헤맬 땐 해끔한 눈길 되고 불의와 타협할라치면 벼락눈으로 흥뎅이 칠 거야
작은 거라도 후무리면 날카로운 고드름 되어 양심을 찌르겠어

서툰 사랑 떠나보내고 터벅거릴 때는 리무진 위에 소복한 복눈으로 내리고
빈 마음에 온기 차오르도록 수천 개의 보석으로 반짝이겠어

그러다 그러다가 네 생이 찬란하게 타오르는 날 눈썹 끝에서 헤실바실 녹아지겠어



희붐하다ㅡ날이 새려고 희미하다
흥뚱항뚱ㅡ마음이 들떠 꾀를 부림
알레그로ㅡ빠른 템포의 음악 표시어
안단테ㅡ느린 템포의 음악 표시어
사분사분ㅡ가만가만 말하는 모양
휘휘하다ㅡ고요하고 쓸쓸하다
헛헛하다ㅡ뱃속이 빈듯한 느낌
하사분하다ㅡ몹시 지쳐 나른하다
휘지다ㅡ기운이 다 빠지다
해끔하다ㅡ하얗고 깨끗하다
흥뎅이치다ㅡ방해하다
후무리다ㅡ남의 것을 슬쩍하다
헤실바실ㅡ모르는 사이에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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