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향 속에서 피어난 그리움

by 에쩨르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 가을빛이 가득하다. 나는 요즘 모과향에 취해 산다. 채반 가득 모과를 담아놨더니 밖에서 돌아오면 향기가 달려 나와 맞는다. 인향만리라고 했던가. 모과를 보고 있으니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온다.


미향 씨와의 인연은 특별했다. 오래전 방송국 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수상작을 실은 책이 나왔다. 이듬해 신문사 주최 독후감 대회가 있었고 거기서 대상을 받은 분이 미향 씨였다. 그런데 내 글을 읽고 독후감을 썼단다. "훌륭한 분들이 쓴 책도 많은데 왜 하필 나 같은 사람이 쓴 글을 읽었을까?"

궁금하던 차에 연결고리가 생겼다. 당시 모 방송국에 ㅡ명사와의 대담ㅡ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미향 씨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신청을 한 것이다. "대상 수상자들의 만남입니다" 아나운서의 멘트에 긴장이 풀렸다. 방송이 끝나고 연락처를 알게 되어 그때부터 우리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만 들은 사이였지만 편지를 통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미향 씨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입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 상태를 보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움직일 수 없으니 죽는 일도 쉽지 않았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음식물 거절이었는데 식구들이 입을 벌리고 강제로 먹였다. 그렇게 병원생활을 하던 중 꾸준히 찾아온 교회 전도단 덕분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삶을 포기하려던 딸의 눈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고 간호하던 엄마를 시작으로 7남매가 다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묘하시다. 택한 백성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찾아내신다. 막내딸의 사고로 전통적인 유교 가정에 예수가 들어온 것이다.

재활병원에서 7년을 지내면서 손가락과 목에 힘이 생겼고 입에 작은 봉을 물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건강한 청년을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짐이 될 수 없다고 줄기차게 밀어냈는데 주말마다 찾아온 정성에 못 이겨 문을 열게 되었단다.

기적은 계속 일어났다. 전신마비 장애인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전례를 깨고 아들을 낳아 손자가 없는 시댁에 대를 이어주게 되었다.

미향 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로 등단했다. 운전에 휠체어를 밀고 강의 노트까지 대필하며 한 몸처럼 움직여준 남편 덕분이었다. 그 헌신에 보답하듯 큼직한 문학상은 거의 휩쓸었다. 수상 소식을 들을 때면 나도 덩달아 기쁨으로 출렁거렸다.

우리는 계속 편지로 소통했다. 얼마나 힘들게 편지를 쓰는지를 알기에 부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글을 출력해 발송하는 것은 그 남편 몫이었다. 질투 많은 우리 남편이 편지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이 양반들 연애하는구먼!" 그랬다. 동성이었기에 망정이지 자칫 부적절한 관계로 시끄러울 뻔했다.

미향 씨 아들이 자라 한글을 익히게 되니 봉투에 주소를 써 주었다. 해마다 달라지는 아이의 글씨 변천사를 보는 것도 기쁨이었다.

하나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우리 얘기는 끝이 없었다. 그녀 앞에서 내 영혼은 늘 가난했다. 하나님께 닿아있는 그 깊은 영성이 늘 놀라웠다. 자연스레 기도의 동역자가 되어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어느 해 여름 편지가 왔다. "김샘 보고 싶다고 졸랐더니 남편이 휴가 때 데려다준대요" "부천에서 목포까지?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몸 성한 제가 갈게요. 부모님 식사와 애들 도시락 때문에 집 비우기 힘들지만 그래도 틈을 내 볼게요"

우리의 간절함이 닿았는지 부천 장례식장에 갈 일이 생겼다. 구십 넘은 고모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밤차로 올라가 조문하고 새벽에 미향 씨 집을 찾았다. 첫 대면이었지만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욕창 때문에 특수 매트에 누워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고 있는 것을 보니 기도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능력의 팔로 붙들어 주세요." 보행기에 앉아 이른 방문객을 낯설어하는 성빈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새벽 출근을 했던 성빈 아빠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첫인상이 순했다. 조건을 따져 상대를 고르는 세상에서 몸이 불편한 여자의 손과 발이 되겠다고 다가온 사람, 수시로 들락거리며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면서도 늘 웃는단다. '이 시대에도 순애보가 있구나! 좋으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네' 기차를 타고 오는데 막연한 걱정이 바람에 날아간 느낌이었다.

미향 씨는 내 선생이었다. 열 살이나 어린데도 늘 언니 같았다. "제게 소원이 있답니다. 청국장 좋아하는 남편에게 내 손으로 청국장찌개 한번 끓여주고 싶어요." 그런 편지를 받는 날이면 술에 취해 꼴도 보기 싫은 남편 술국을 넉넉한 마음으로 끓였다. 아이가 넘어져 꺽꺽대는 것을 보면서도 도와주지 못한 무력함을 피력할 때면 내 아이들 대하는 손길도 부드러워지곤 했다. 감사는 형편이나 조건이 아닌 존재 자체에 있다며 절대 감사를 노래하는 그녀 앞에서 내 불평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가끔 서울 딸네 집에 왔다고 연락하면 지체하지 않고 달려왔다. 전동 휠체어를 밀고 찻집에 들어가 서너 시간씩 회포를 풀었다. 도서관이나 찜질방에서 기다리다 온 그 남편은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먼 데 있어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그 한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내 글을 평가절하하는 나를 꾸짖으며 과분한 칭찬을 해 주었다. 내 삶의 여정을 들으며 어떻게 견뎠느냐고, 하나님 앞에 가면 인내상은 꼭 받을 거라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그대 있고 나 있으니 세상은 점점 좋아질 거라고 말해놓고 함께 소리 내어 웃었다.

몇 년 전, 수원으로 이사 왔다는 말을 듣고 그날 저녁에 바로 왔다. 풍성한 꽃바구니와 모과 한 봉지를 가져왔다. "선생님이 가까이 오셔서 너무 좋아요. 맨날 맨날 놀러 올래요"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가 밤늦게 돌아갔다.

모과 선물이 조금 생소했는데 자고 나니 집안 가득 향기가 그윽했다. 그렇게 미향 씨 덕분에 모과향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놀러 왔었는데 한동안 소식이 뜸했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터라 흐름 끊지 않으려고 애써 참고 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이상 기온으로 여름처럼 더운 날이었다. 예의 바른 사람인데 이런 날 오라는 것은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랴부랴 부천행 버스를 탔다. 집에 들어서니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미향 씨가 누워있었다. 놀라는 내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뇌에 종양이 생겨 수술했다는 것이다. 지난주에 퇴원했는데 기력이 없어 이제야 나를 불렀단다. "공평하신 하나님 맞아요? 이 몸으로 살아온 것 뻔히 아시면서, 머리 하나 맑은데 그곳에 암이 자라는 것을 두고 보셨대요?" 불평이 터져 나왔다. 함께 손잡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한 번만 더 은혜를 베푸사 치료와 회복이 급속히 일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돌아오는 버스에서 또 아룄다. 내 생명 5년쯤 떼어서 미향 씨 살게 해 달라고.

병은 인정사정도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내 기도를 흘려들으셨을까? 밤늦게 돌아왔는데 뒷 날 아침 연락이 왔다. 미향 씨가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다시 부천으로 달렸다. 그 남편이 나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나보다 선생님을 더 좋아했는데..." 어떻게든 아내를 붙잡고 싶었다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 한 사람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쏟았으면서 무슨 아쉬움이 저리 많을까.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는 얼만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성적표를 받는 날이 다. 장례식장을 가득 채운 눈물을 보니 그가 얼마나 따뜻하게 사람들을 품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상주가 된 성빈이를 안고 한바탕 울다 돌아왔다. 어제 얼굴을 맞댔던 사람이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가는구나. 준비 없는 이별 앞에서 한동안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우두망찰 여러 날을 서성이다 꿈을 꾸었다. 미향 씨가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주님 손 잡고 생명수 강변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두 다리로 걷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그 좋은 곳에 있구나!' 그 꿈 후에 평정을 되찾았다. 격렬한 애도가 서서히 수그러 들었다. 꿈속까지 찾아와 나를 안위해 준 미향 씨 덕분이었다.

그렇게 미향 씨는 떠났다. 그 뒤로 가슴 한쪽이 늘 휑하다. 모자란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봐준 덕분에 그 기대치만큼 되려고 몸부림쳤었다. 내 하는 일이라면 틀린 것도 맞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믿고 지지해 준 유일한 내 편, 그런 미향 씨가 세상에 없다.

누워서 35년을 살면서도 장애에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맞섰던 사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전자를 용서하고, 키보드를 눌러 시대의 악을 지적했다. 남매들 가정에 해결사로, 자애로운 아내요 엄마로, 교회에서는 신실한 권사님으로 하나님 연주에 맞춰 삶을 드렸다.

모과를 보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꽃이 예뻐서, 열매가 못 생겨서, 향기가 좋아서. 문득 미향 씨가 모과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예뻐서, 몸이 부자유해서, 영이 향기로워서.

이 땅의 호흡이 끝나는 날 하얀 원피스를 입은 미향 씨를 만나게 되리라. 그날을 기다리며 잠시 그리움을 접어두려 하지만 아, 그래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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