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가을, 체육대회 날인데 밥도 못 먹고 학교로 달렸다. 전날 밤 아빠가 친구를 데려온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걸핏하면 자취방을 점령해 버리곤 했다.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배도 고픈 데다 달리기도 꼴등을 해서 기분이 나지 않았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배꼽시계가 연방 울려댔다. 그때 마이크를 잡고 진행하던 선생님께서, 구령대 위에 서 계신 분이 자기 아버지인 학생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누구야? 누구 아버지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땅바닥에 낙서를 하다 무심코 쳐다보니 세상에, 우리 아버지가 아닌가! 흙 묻은 손을 털며 엉거주춤 일어서자 친구들이 “너희 아빠야? 진짜? 할아버지 아니고?”하며 한 마디씩 했다. 중절모에 두루마기를 입었으니 누가 봐도 할아버지였다. 구령대를 향해 나가는데 창피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왜 하필 이런 날 학교에 와서 망신을 시키는지 울고 싶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반색을 하며 “배 고프지야? 여그 김밥 싸 왔응께 묵어라잉.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응께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겄다야.” 하며 교문을 향해 걸어가셨다.
수건에 둘둘 말은 도시락을 보니 창피함이 배가 되어 배고픈 것도 잊어버렸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풀었다. 그런데 김밥에 계란지단이 없었다. 대신 단무지가 두 개씩, 그리고 굵게 자른 소시지가 들어있었다. 도대체 김밥을 어디서 났는지 궁금해 맛이 어떤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삼켰다.
학교가 파하고 오는 길에 집 앞 구멍가게 할머니 얘기를 듣고 나서 궁금증이 풀렸다. 소풍 철이라 김밥 재료를 내놨는데 아버지가 기웃거리더란다. 그러더니 오늘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한다는데 아이가 빈속으로 갔다며 김밥을 어떻게 싸는지 묻더란다. 여차여차 설명을 하며 김밥 재료를 팔았는데 한참 뒤에 탄내가 진동하더라는 것이다. 건너가 보니 플라스틱 쟁반에 불이 붙어 계란 물이 질질 흐르고, 아버지는 허둥대며 “요상하네. 으째서 이것이 오그라질까?” 하더란다. 플라스틱 쟁반을 프라이팬으로 사용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시절이 그랬겠지만 일생 부엌 일과 무관하게 살아오셨다. 할머니는, “살다 살다 곤로 위에다 플라스틱을 얹은 사람은 첨 봤다.”며 혀를 찼다.
아버지는 부잣집 외아들로 별명이 "용알덩이"였다. 용의 눈알처럼 귀하다는 뜻이었다. 어릴 때부터 땅에 안 내려놓고 키워 발에 흙이 묻지 않았다고 한다. 시골이었지만 집에는 머슴들과 부엌일 하는 아줌마가 있고, 동네에서는 “엎어진 고무신짝도 안 뒤집어 신은 양반”으로 통했다.
아버지는 철 따라 유람을 다니다 제사나 명절이면 들러 집안을 살펴보는 정도였다. 등산이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을 때 전국 명산을 다 오르셨다.
평생 손에 물 안 묻혀 본 아버지, 차려준 밥상만 받던 천하의 우리 아버지가 딸을 위해 도시락을 싼 것이다. 옆구리가 터지고 달걀지단도 없는 헐렁한 김밥이었지만 그 일은 마음속 비밀한 곳에 자리한 따뜻한 기억이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던 나무들이 단풍 옷으로 갈아입었다. 바람에 몰려다니는 나뭇잎을 보니 은행나무 흐드러진 교정에서 딸을 찾던 아버지가 떠오른다. 애잔한 그리움과 함께 다시는 볼 수 없는 안타까움도 여울진다.
딸자식 배 고플까 봐 어설픈 솜씨로 김밥을 말았을 아버지, 그건 분명 사랑이었을 것이다. 늘 어렵고 설면했지만 존재만으로 큰 산이요 버팀목이었던 분, 가만히 그 이름을 불러본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