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개구리들의 고향 방문
섬개구리 스물두 명이 여행가방을 챙겼다. 오래전부터 별렀지만 저마다의 삶에 얽매어 날 잡기가 어려웠다. 앞만 보고 달릴 때는 아프지도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번갈아 병원 출입이 잦아졌다. 벌써 세상을 떠난 이도 여럿이다. 이번에도 큰 수술을 하고 죽다 살아난 친구가 "우리 숨 붙었을 때 고향이나 한번 가보자"는 말에 급하게 일이 성사되었다.
내 고향은 신안군 천사 섬에 속해 있는 도초도다. 흑산도를 오가는 쾌속선의 중간 기항지라 교통도 좋다. 이름처럼 풀이 우거진 섬으로,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곳이다. 우리는 그 섬마을 초등학교 동창이다. 6년 내내 한 교실에서 보냈는데 경기 일원에 사는 친구들이 날짜를 맞췄다.
“오메, 목포가 이라고 좋아져부렀다냐?” “그랑께 말이다. 전에는 비렁내 풀풀 나고 질도 찌럭찌럭 했는디 때 빼고 광내부렀다야.” 어디에 숨어있다 튀어나왔을까? 목포항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면서부터 서울 말은 온데간데없고 고향 사투리가 터져 나왔다.
여유 있게 배도 탔겠다, 방도 넓고 에어컨도 빵빵하겠다, 친구들은 크루즈라도 탄 것처럼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배가 출발하자 본격적으로 수다가 이어졌다. 초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식모살이, 점원, 공장으로 흩어졌던 친구들이 중년을 넘기고 연락이 닿았는데 서로의 인생사를 풀어놓느라 만날 때마다 시끌벅적하다. 평생소원이 교복 한 번 입어보는 것이었다는 영자의 말에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전히 개구진 복남이가 "졸업할 때까지 구구단 못 외운 사람 손들어" 하자 서 너명이 손을 들면서 웃음꽃이 피었다.
개골개골 수다에 빠졌는데 어느새 서남문 대교가 보인다. 서남문 대교는 흑산도에서 육지를 향해 들어오는 첫 관문이다. 화도 선착장에 내리자 “인재의 고장”이라는 표지석이 우리를 맞는다. “으째서 우리 도초가 인재의 고장인 줄 아냐?” “아따, 군수, 국회의원에 판검사가 줄줄이 나오고 법무부 장관까지 나왔응께 그라제. 거 머시냐. 중앙청에 태극기 꽂아분 사람도 길수 조부시잖어” 갑자기 우리 모두 인재라도 된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고향 관광도 식후경,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을 거른 터라 배꼽시계가 연방 울려대고 있었다. 시목리 해변에 있는 횟집에 도착하자 맛있는 냄새가 달려 나와 손님을 맞는다. “때가 한참 지울었는디 을매나 시장하까?" 쥔장이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바지락 미역국에 톳 밥, 얼갈이 겉절이, 실갈치조림, 민어찜, 새우장......바다 향이 물씬 풍긴 반찬이 한상 가득이다. 주인아저씨는 간재미를 손질하고 있었다. 막걸리에 주물러 즉석에서 무친 회는 입에 착착 감긴다. 우리는 정신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아주머니는 접시를 비우기도 전에 자꾸자꾸 채워주시며 “오메, 으째야쓰까. 매칠 굶은 사람들 같구만잉. 뺏어 묵을 사람 없응께 싸묵싸묵 잡솨.” 하신다. 오랜만에 고향 찾은 나그네들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물씬 전해져 온다.
거한 점심을 먹고 모교에 들렀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인구 소멸로 학교는 폐교되었고 건물은 생태 수도 체험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마침 방문객을 맞는 교실이 있어 의자에 앉아봤다. 눈치 빠른 반장이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구호를 외치며 그 시절을 소환했다. 운동장을 거니는데 고무줄 끊고 치마를 걷어올리던 짓궂은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이제 그 아이들은 흰머리 희끗희끗한 초로의 할아버지가 되어 뒷짐 지고 둘러서서 쓸쓸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문바위로 향하는데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내리쬈다. 여름걷이를 마친 밭들은 시금치 뿌릴 준비를 하느라 맨살을 드러내고 유월 벼는 군데군데 황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우리는 들판 한가운데 서서 심호흡을 했다. ‘와, 이 상큼함이라니!’ 공기만 마셔도 살이 찔 것 같다.
해넘이를 보기엔 이른 시간이라 박정모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박정모 대령은 도초 한발리 출신으로 서울 수복 후 처음으로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영웅이다. 아직 적의 잔당이 남아있는데 옥상에 올라가 인공기를 끌어내리고 태극기를 달아 섬놈 깡다구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유일하게 살아계시는 친구 어머니 집에 들렀다. 마당 가득 붉은 고추가 말라가고 한쪽에서는 녹두가 까만 꼬투리를 비틀고 있었다. “타닥, 타다닥 탁...” 어머나! 이 신기한 소리라니!
높지막한 밭두렁을 타고 마을 뒤쪽으로 내려서자 바닷바람이 혈관을 타고 온몸에 퍼진다. 우이도가 가까이 보이고 흑산도에서 나오는 쾌속선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린다. 문바위로 가는 길은 풀이 우거져 어머니가 챙겨주신 낫과 막대기가 아니었으면 포기할 뻔했다. “흐미, 50년 만에 고향에 와서 낫질할 줄 몰랐다야.” 어릴 적 고향을 뜬 뒤 처음이라는 경숙이는 소싯적 꼴 베러 다니던 실력을 발휘해 풀을 베며 길을 만들었다.
문을 닮았다는 문바위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깎아지를 듯한 절벽일 뿐이다. 살기가 하도 팍팍해 이런 낭떠러지만 보면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친구의 말이, 벼랑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가슴을 때렸다. “그런 생각 한 두 번 안 한 사람 있다냐? 살아 낸 것이 능력이여. 앞으로 우리 모두 능력자라고 부르자” 우스갯소리로 대꾸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갯바위에는 고동과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오메! 오메! 저 불덩어리잔 보드라고!” 고동 따느라 엎드려 있다가 친구의 감탄사에 고개를 드니 진짜 둥그런 불덩이가 바다 가까이 내려오고 있다. 종일 지구를 달군 태양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서쪽 하늘을 점점 붉게 물들이더니 바다까지 붉게 물들여놓고 해가 떨어졌다. 잠깐이었다. 우주만물이 고요 속에 잠기는 것 같았다. 우리도 약속한 듯 그 장관에 잠시 말을 멈췄다. 고향이라서 더 특별했을까? 이렇게 찬란한 일몰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어둠을 밟고 들어서니 친구 어머니가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신다. “이 가스나들아, 질도 옹색한디 그라고 나냥개 부리고 댕기냐?” 어두워서 걱정하셨던 모양이다. 밥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새 녹두를 넣어 지은 밥과 게젓국, 고사리나물을 보자 식욕이 발동했다. 게젓국은 칠게에 매운 고추와 마늘을 갈아 만든 음식인데 특별한 맛이다. 섬을 떠난 뒤 도무지 맛을 볼 수 없었던 게젓국을 보고 너도 나도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어머니는 모기장을 치고 잠 잘 준비를 하는데 우리는 또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걸어서 서남문대교를 건너 보기로 했다. 어선들의 불빛을 보며 낭만에 젖으려는데 찐득한 바닷바람과 함께 날벌레가 얼굴에 엉겨 붙는다. “깔따구들이 우리를 사정없이 환영해 불구만잉” 짜증도 유머로 풀어내는 친구 덕분에 또 한바탕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싸목싸목 걸어서 한 시간, 밤바다에 웃음만 잔뜩 뿌려놓고 돌아왔다.
뒷날은 큰 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밤늦게까지 킥킥거리다 잠들었는데 다들 잘 일어난다. 쾌청한 공기 때문일까? 장소가 바뀌었는데도 푹 잤다. 요즘 들어 이렇게 숙면을 취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나섰다. 향나무가 줄 서 있는 테크길을 지나 능선에 오르니 오른쪽으로는 고란 평야가, 왼쪽으로는 시목 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인다. 이제 막 노란빛을 띠기 시작한 들판은 섬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넓다. 쪽빛 바다 위에서는 해무의 춤사위가 한창이고 안개가 밀려난 바다는 햇살과 만나 물비늘로 반짝거린다. 아름드리 해송 숲 아래는 바위손이 군락을 이루고 마삭줄과 콩란이 기생하여 소나무를 점령할 기세다. 육지의 등산로에서는 볼 수 없는 처녀림 같은 풍경에 감탄사가 연이어 터졌다.
“오메, 산이 으찌 까구락진가 숨이 붙었다 끊어졌다 사람 죽겠다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져 심심할 참이 없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고르며 가파른 길을 올라 채고 나니 시야가 트인다. 배낭을 베개 삼아 너럭바위에 누웠다.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몸을 내맡기고 있으니 잠시 신선이 된 기분이다. “좋다!” “좋다!” 돌아가며 맞장구를 쳤다.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뜨거운 볕에 녹아버렸는지 해풍에 날아갔는지 머릿속이 가뿐하다.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매고 있는데 여럿이 흩어져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아래쪽에서 “여기 길 있다!”는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은 곳, 그곳이 도초가 아니었던가.
한 군데라도 더 볼 욕심에 씻지도 못하고 다시 명당리로 향했다. 산모롱이를 돌자 드넓은 소금밭이다. 도초는 천일염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염부들은 여름 철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소금을 달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맛있다는 말이다. 염전에서는 희고 깨끗한 소금 꽃이 피어나고, 폐염전 양식장에서는 분수와 함께 새우들의 수중 발레가 한창이다. 느긋하게 해찰하다 뱃 시간이 다 되어 선착장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보고, 듣고, 먹고, 걷고, 깨닫고, 오감여행 한번 제대로 했다. 삶이 휘청거릴 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직은 청정한 내 고향이 자랑스럽다. 고운 모래 위로 고운 시간 흐르는 곳,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을까? 배에 오르던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 한다. “야! 우리 여그 들어와서 항꾼에 모태 살끄나?” 음식에 배부르고 정겨운 말에 배부르고 이틀 동안 허한 속 든든히 채웠다. 고향에서 받은 에너지로 우리 인생 3막도 넉넉히 살아낼 것이다. 목포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며 고훈 시인의 “내 고향 도초”라는 시비 앞에 섰는데 다들 말이 없다. 이 땅에 없는 부모님들 생각에 숙연해진 모양이다.
보릿고개 파도고개 너머로 키워낸
당신의 아들딸들이
이제 그 가지 담 넘은 큰 나무 되어
여기 모두 돌아왔습니다
살아내느라 버거우면
누구라도 한달음에 달려와
어머니 땅에 가슴을 묻고
거품세월 토해내며
오늘 하루는 저 파도와 함께
고향 노래가 되십시오
비렁내ㅡ비린내
찌럭찌럭ㅡ질퍽질퍽
싸목싸목ㅡ천천히
너틀너틀 ㅡ살 오르는 모양
깔크막ㅡ벼랑
포실해지다ㅡ넉넉해 지다
깔따구ㅡ모기 닮은 날벌레
까구락지다ㅡ경사가 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