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동백꽃

by 에쩨르

세상 모든 소음이 낮잠에 빠진 시간, 고요를 깨고 불규칙하게 어떤 소리가 들렸습니다. 퍽! 퍽! "죽음에 대한 명상" 필사를 하고 있던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찾아 창문을 열었습니다. 봄내내 정원을 밝히던 겹동백꽃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더군요. "동백은 여느 봄꽃들처럼 하르르 하르르 꽃잎 휘날리지 않고 모가지째 낙하 하는구나!" 그 때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화영 씨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대요." 너무 갑작스런 부음에, 그 기이한 순간의 겹침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느닷없는 사고로 성우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세상 물정 모르는 화영 씨가 세 아이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스러워 위로하는 편지를 썼었는데 이렇게 하늘나라에 있는 화영 씨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상 기후 때문에 더위가 극성이었지요. 아무리 더워도 때가 되면 물러가듯 우리 삶에 견디기 어려운 일들도 그렇게 해결될 날이 있을 텐데 어쩌자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는지요. 지내놓고 보면 별것 아니었다고 옛말 할 날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성급한 결정을 하고 말았는지요?

뉴스에서 그대 사업체 사고 소식을 접하고 몇 번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짧은 메시지 한 통을 남겼었지요. “요즘 힘들죠? 지금은 막막해도 시간 가고 돈 들면 다 해결될 거예요. 밥 잘 챙겨 먹어요.” 그것이 이 땅에서 주고받은 마지막 메시지가 되어 버렸네요.

가까운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낸 적도 있었는데 그대와의 이별이 왜 이렇게 가슴 린지 모르겠습니다.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산에 올라도 온통 머릿속은 화영 씨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일손을 놓고 멍청하게 앉아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인사 한마디 없이 갈 거면서 뭐 하러 오지랖 넓게 이 일 저 일 다 챙기고 정은 듬뿍 남겨 놓고 가셨나요? 주변 사람들 일에는 조언도 잘해줬으면서 정작 본인의 일은 어쩌면 그렇게 바보처럼 숨 죽여 신음도 내지 못했나요? 내가 사춘기 아들 녀석 때문에 속상해할 때 “문제는 해결되기 위해 있는 것이여”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그대가 생일 선물로 준 로션은 아직 반도 줄지 않았는데, 그대 얼굴보다 더 큰 겹동백 꽃과 찍은 사진은 앨범에서 웃고 있는데,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던 이십여 년의 추억은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어떻게 잊으라고 그렇게 훌쩍 떠나셨나요. “애들 데리고 현장 학습 나왔는데 감자 꽃이 피었어요. 언제 감자 삶아 줄 거예요?” 뜬금없이 전화 걸어 아직 밑도 들지 않은 감자 삶아 내라고 억지를 부리더니 해마다 감자 꽃은 피어날 텐데 누가 내게 감자 삶아 달라고 치근덕거려 줄까요? 내 썰렁한 유머에는 누가 배꼽 잡고 웃어주고, 유행하는 우스갯소리 못 알아듣고 멍해 있으면 누가 깔깔거리며 놀려줄까요? 격식도 갖추지 못한 내 밥상에 최고의 찬사를 보내주더니 가기 전에 한 번만 불쑥 찾아와 내가 차려준 밥 한 끼 먹고 갔으면 서운함이 덜했을까요? 꼬부랑 할머니 될 때까지 문학 모임 계속하자더니 이렇게 허무하게 약속을 깨버리다니요.

너무 빨리 아빠를 잃은 탓인지 일찍부터 애늙은이가 되어버린 어린것들, 엄마 손까지 놓칠까 봐 치맛자락 잡고 뱅뱅 도는 모습 우리 눈에도 보이더구먼 어쩌면 그렇게 무책임하게 떠날 수가 있단 말인가요? 비 오는 날, 흐린 날, 많을 텐데 누가 그 녀석들에게 우산이 되어준대요? 예고 없이 바람도 불어닥칠 텐데 누가 그 아이들에게 바람막이가 되어 준대요? 그래도 애들은 끝까지 눈에 밟히던가요? 먹지도 자지도 못해 비틀거리는 몸으로 고아원 찾아가서 애들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면서요? 그것들 생각해서 딱 한 번만 더 생각할 수는 없었나요? 이것저것 다 해보고 그래도 막히면 돌아가는 길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대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겁도 없이 덜컥 들어섰나요? 누구에게 심한 말 한마디 못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용감했나요? 다들 조금이라도 더 살아보겠다고 억지로라도 명줄 늘리려고 야단들인데 죽음의 길이 뭐가 그리 급하던가요?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처럼 삶을 정리도 안 한 채 마감하고 싶던가요? 절망의 끝 어딘가 에는 희망의 샘 줄기가 있을 텐데 끝까지 찾아보기는 했나요?

너무 황당하고 준비 없는 이별 앞에서 이렇게 원망과 끝없는 물음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러나 화영 씨, 우리는 잘 압니다. 너무 착해서, 모질지 못해서 그 길을 택했다는 것을, 가슴 쥐어뜯으며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단이었겠지요. 누구에게 한마디 원망도 돌리지 않고 모든 걸 떠안은 화영 씨야말로 진정 책임감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남을 탓하는 세상에서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화영 씨의 양심이었는지요? 그래도 화영 씨,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열 번을 다시 생각해 봐도 화영 씨가 잘못한 거예요. 아무리 이해하려고 생각을 바꿔봐도 도리질이 되는 걸 어떡해요. 저승의 문이라도 가르고 들어가서 화영 씨 만나 조목조목 따진 후,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고백 받아내고 다시 데려오고 싶어요.

화영 씨! 미안해요. 그대 혼자 그렇게 힘들어할 때 우리는 잘 자고 잘 먹고 있었어요. 다음 모임에는 밝은 얼굴로 나와서 이런저런 사고 수습얘기 들려줄 거라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십 년 세월을 함께 했으면서도 죽도록 힘들었던 화영 씨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없었다는 자책이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캄캄한 그 길에 들어섰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 무서워서 얼마나 떨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

부주산 너머로 날아간 그 연기가 화영 씨의 마지막이었던가요? 성우 아빠 가신 뒤 조심조심 그 태풍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태풍이 자기도 전에 더 큰 태풍이 몰려와서 화영 씨를 휘감아 아주 아주 먼 곳으로 데려가 버리네요. 그곳은 다시는 바람이 불지 않는 평화로운 곳인가요? 눈물도 한숨도 없는 애통함도 없는 그런 곳인가요? 흰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가는 화영 씨를 보며 ‘좋은 곳으로 가시오’ 인사했는데 내 말 들리던가요?

평소에 주기를 좋아하더니 그대는 떠나면서도 우리에게 인생의 큰 화두 하나 각인시켜 주고 갔네요. ‘생명은 귀한 거라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힘들 때는 엄살까지 보태서 주변 사람들까지 다 알도록 끙끙 소리 내며 앓아야 한다고...’ 우리는 그대가 가르쳐 준 대로 오래오래 악착같이 살다 갈 거니까 기다리지 마세요.

그대 가는 길 외로울까봐 30년 된 동백나무를 함께 보냈습니다. 아니, 해마다 퍽 퍽 소리내며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모질게 맘 먹고 베었습니다.


화영 씨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를 새록새록 기억합니다. 죽음이 또 다른 저쪽이라면 우리 거기서 만나 못다 한 사연들 풀어봅시다. 그대와 함께 했던 날들은 정지된 화면처럼 오래오래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거예요. 그대가 우리에게 남겨 두고 간 곱고 여린 마음만 기억할게요. 다정했던 목소리, 장난 끼 섞인 말씨, 그 순한 웃음만 간직할게요. 잘 가요. 잘 가요. 화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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