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쩨르

어릴 적부터 마을에서 가장 큰 집에서 살았다. 마루방에는 가족 주치의 한의사가 상주해 살았고, 곡물 창고 옆에는 머슴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늘 싸웠다. 방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버지가 첩을 끌고 들어와 한집살이를 했다. 잘못은 아버지가 한 것 같은데 엄마가 늘 쫓겨 다녔다. 그런 밤이면 찬송가 소리가 들리는 영숙이네 초가집이 늘 부러웠다.

결혼을 하고 집을 지었다. 면 소재지에 하나뿐인 양옥집이었다. 기둥을 세우기 전에 옥상 콘크리트부터 치자 신기한 듯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이름도 생소한 “라면조” 공법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뭔 복을 받아 이렇게 좋은 집을 짓느냐며 한 마디씩 했다. “지혜로 집을 세우라.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허느니라.” 잠언의 구절처럼 지혜로운 여인이 되리라, 식구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좋은 집을 만들리라 결심하고, 쓸고 닦고 기도했다. 적금 통장은 불어나고 아이들도 잘 자라는데 왠지 공허했다.

아이들이 상급 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도시로 이사했다. 업계에서 소문난 건축업자가 지은 집으로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단독 주택이었다. 정원에는 향나무와 야자나무가 담을 넘고 철 따라 꽃들이 피어났다. 호화 주택이라며 동네에서 세금이 가장 많이 나왔다. 집들이에 오신 분들은, 서방 잘 만나 호사한다는데 나는 도리질을 했다. 빛 좋은 개살구, 비단치마 속에 넝마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크고 좋은 집이 아니라 이해와 배려, 존경과 감사가 있는 가정이었다.

남편과 나는 너무 달랐다. 가치관, 인생관, 취미, 식성, 종교까지. 그는 술酒, 나는 주인主, 서로 다른 주님을 섬기다 보니 자주 부딪혔다. 마음 통을 넓히고 인내의 시간을 늘리다 보니 늘 외로웠다.

남편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나처럼 마누라 편히 모시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좋은 집에서 바깥일 안 시키니 남편 노릇 잘하고 있다는 거다. 동상이몽이 따로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평안과 편안은 다르다. 넓은 집은 편하지만 평안까지 채워주지 못한다. 평안에 허기져 살다 보니 어릴 적 영숙이네 집에서 새어나오던 웃음소리가 더 그리웠다.

성경은 인생을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사람을 일컬어 장막집이라고 한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이다. 나그네에게 이 땅의 집은 텐트일 뿐이다. 텐트가 아무리 좋아도 거기에 계속 머문 사람은 없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고 한다.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따뜻한 일인가.

어느 날 그 대목을 묵상하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

ㅡ나는 지금 집 한 채를 짓고 있다. 남들이 버린 폐기물도 모퉁이 돌로 사용할 만큼 건축에 통달한 일급 목수에게 맡겼다. 내 취향이나 속내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분이니 꼭 맞는 집을 지어주실 것이다. 나는 그분이 요구한 대로 자재만 올려 보내면 된다. 그 집의 주재료는 믿음이다. 시멘트와 모래 대신 사랑과 헌신을, 목재와 대리석 대신 용서와 인내를 사용한다. 눈물을 접착제로 쓰고, 못 박을 곳에는 기도를 심는 특별한 집이다. 나는 자재 구하느라 날마다 동동거린다.

그 집의 청사진을 펼쳐 보았더니 너무 멋지다. 옆에는 수정 같은 생명수 강이 흐르고 그 강가엔 열두 가지 과실을 맺는 나무가 줄지어 섰고, 정원에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굴고 있다. 길은 황금으로 깔렸고 문짝은 진주, 내실 벽은 옥으로 쌓았다. 밝은 빛이 가득한 그 집엔 슬픔과 애통, 눈물과 한숨이 없다.

이 땅에서 껴안고 살아온 불안 걱정 욕심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 미련 없이 던져 버리고 하루빨리 그곳으로 이사하고 싶다. 내가 불편한 이 집에서 견디는 것은 오직 새 집에 들어갈 소망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집으로 이사 갈 생각을 하면 힘이 솟는다ㅡ

얼마 전, 강사로 오신 목사님께서 오늘 밤이라도 천국에 가고 싶은 사람 있냐기에 손을 번쩍 들었다. 나 혼자였다. 팔십 넘은 할머니들도 가만히 있는데 뭐가 그리 급하냐는 강사님 말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회갑을 넘기고부터 육신이 서서히 후패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어느 때라도 부르시면 나서려고 차근차근 채비를 하고 있다. 장기 기증 서약을 하면서 유언장도 쓰고 영정 사진도 찍어 놓았다.


시신도 없는데 장례식도 하지 말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유언했는데 남편은 죽어서도 나랑 집안 선산에 나란히 묻히겠단다. 마지막 가는 일까지도 이렇게 다르다.


요즘은 테니슨의 시, <모래톱을 건너며>를 암송하고 있다.

ㅡ해지고 저녁별
나를 부르는 소리
나 바다로 떠날 때
모래톱에 슬픈 울음 없기를
무한한 바다에서 온 것이
다시 제 고향으로 돌아갈 때
소리나 거품이 나기에는 너무나 충만한
잠든 듯 움직이는 조수만이 있기를

황혼 그리고 저녁 종소리
그 후에는 어둠
나 배에 오를 때
이별의 슬픔이 없기를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부터
물결이 나를 싣고 멀리 가더라도
나를 인도해 줄 분을 만나게 되기를
나 모래톱을 건넜을 때ㅡ

모래톱을 건넜을 때 인도해 줄 분을 만날 상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새 집으로 이사 갈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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