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사용하던 프라이팬이 망가졌다. 남편이 근무하던 농협 연쇄점에서 샀는데 그때 초등학생이던 딸이 결혼했으니 15년 넘게 쓴 셈이다. 올록볼록한 바닥이 닳아질 정도로 사용했는데 몸체와 손잡이가 연결된 나사못이 삭아 떨어졌다.
혹여 고칠 수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손잡이가 망가진 것을 다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모질게 맘먹고 사용불가 판정을 내렸다.
선물로 받은 프라이팬도 있었고, 코팅 벗겨진 프라이팬에서 유해물질 나온다며 식구들도 그만 버리라고 종용했었다.
프라이팬을 분리수거함에 넣으려는 순간, 뭉클한 감정이 올라와 다시 가져왔다. 토사구팽이라 했던가. 아무리 생명이 없는 것이라지만 함께해 온 세월이 있는데 어찌 쉽게 버릴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 보니 프라이팬은 사물의 경지를 넘어 우리 가족의 역사,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함께 해 온 동반자였다.
이 프라이팬 속에는 세 아이들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이 오롯이 들어있다. 아침이면 볶음밥을 해 먹이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도시락을 다섯 개씩 싸느라 하룬들 프라이팬을 사용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돼지고기 갈아 동그랑땡을 부치고, 명란젓으로 간 맞춘 달걀말이와, 부추 양파 다져 넣은 두부 부침은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난 인기 메뉴였다. 소풍 갈 때면 김밥에 들어갈 달걀지단을 부치고, 겨울이면 김장 김치가 바닥이 날 때까지 김치 부침을 해 줘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출근 늦은 남편 빈속 채울 때 우유에 곁들였던 스크램블, 여름이면 동네 평상에 모인 어르신들께 부추전을 대접하고, 잡채 좋아하는 어머니는 프라이팬 채 식탁에 올려놓으면 뜨끈뜨끈해서 좋다고 밥그릇은 저만치 밀어 놓으셨다. 편식 심한 아들 녀석 농구선수처럼 키 크게 하는데도 이 프라이팬이 한몫했다. 야채 듬뿍 넣어 볶은밥을 김이나 유부에 싸 놓으면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덥석덥석 집어 먹었다.
애들 생일이면 오늘은 몇 명이나 올까 기대하며 고기를 굽고 명절 때는 식구들이 프라이팬 가에 둘러앉아 새우를 튀기고 동태 전이며 산적을 부쳤다. 시키지 않아도 제각각 튀김가루를 입히고 건져내며 “언니야 이것 먹어봐. 누나야 이게 더 맛있다” 밀가루 범벅된 손으로 먹여주며 추억을 만들었다.
아이들 키우느라 동동거렸던 삼십 대, 부모님 모시느라 옴짝달싹 못했던 사십 대, 술에 빠진 남편 때문에 속을 끓이던 날들, 그래도 먹어야 한다고 애들 먹다 남긴 찬밥 덩어리 눈물로 간을 맞추며 애꿎은 프라이팬을 박박 긁어댔었다. 내 아픔, 내 속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이 프라이팬을 어찌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 깨끗이 씻은 뒤 햇볕에 말려 다락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
어느 주말, 다락에 올라간 남편이 고물을 모아놨다고 구시렁대며 프라이팬을 내놨다.
"다시 올려놓으세요."
"아니, 버려도 주워가지도 않을 쓰레기를 왜 그냥 두라는 거야?"
"그냥 놔두라고요"
"그러니까 왜 그냥 두라는 거냐고? 고철 묵혀두면 금으로 변한대?"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화가 치솟아 "요"자를 빼고 반말로 쏘아붙였다.
"그게 밥을 달래? 돈을 달래? 냄새가 나길 해?세금이 나와? 그냥 놔두라고!"
"참 이상한 여자 다 보겠네."
"그래, 나 이상한 여자다. 정상이었으면 너랑 살았겠냐? 수많은 날 술 쳐 먹고 다니며 내 애간장 녹일 때 저 프라이팬에 눈물밥 볶아 먹으며 살아냈거든. 서방이란 놈은 내 속 몰라도 저 프라이팬은 다 알고 있을 거다!"
눈만 크게 떠도 입을 다물던 아내가 하이소프라노로 달려드니 감당하기 어려웠을까? 남편이 슬그머니 나가버렸다.
버린다고 할 때 그냥 내버려둘 걸 그랬나? 프라이팬도 싸움거리가 되는 걸 안 좋아하겠지? 이것도 집착인가? 내가 이상한 여잔가? 물음표를 줄줄이 쏟아내며 나는 또 프라이팬을 다락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