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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다kim Nov 01. 2021

가슴 뛰었던 다육이와의 첫 만남

- 나는 직감했다. 곧 내가 다육이랑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의 시간은 언제나 정신없이 흘러갔다. 27살 첫째 아이를 낳고, 30살 둘째 딸을 품에 안게 되었다. 더 이상 내 인생의 출산은 없을 줄로만 알았다. 아니 확신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37살, 덜컥 임신을 하게 되었다. 나도 남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 나이 37살, 남편은 39살. 지금 아이를 낳게 되면 첫째 딸과는 무려 10살 차이가 나게 될 일이었다.


당시 남편이 하는 일도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내가 이 나이에 낳아서, 아이를 끝까지 잘 키워낼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귀하게 찾아온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이제껏 내 앞에 닥친 모든 일들을, 설령 그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모두 해내 왔으니까.

결국 38살, 큰 딸과 10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노산이라 제왕절개를 하여, 힘겹게 낳은 막내아들은 어느새 고교 진학을 앞둘 만큼 장성했다. 이젠 남편보다 덩치도 훨씬 좋다. 뽀얀 얼굴로 '엄마~'하며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달려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훌쩍 커서 모든 걸 척척 알아서 해내는 늦둥이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시간이 자꾸만 빨리 흐르는 것 같아 허망하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 중년 여성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한다는 갱년기가 시작되었다. 몸무게가 쭉쭉 늘면서 무기력함이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누워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아들은 공부하느라 바쁘고, 두 딸은 내 품을 떠나 머나먼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대학생으로서 낭만적인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으니 깊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 더더욱 외로웠다. 큰 딸은 남편이라도 붙잡고 수다를 떨라고 조언했지만, 해도 뜨기 전에 나가 지친 몸을 이끌고 밤늦게 퇴근하는 남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전에 없이 우울하고 힘이 빠지는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큰 딸이 보내준 갱년기 약을 먹어도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큰 딸은 매일같이 전화가 와 나의 상태를 체크하기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내게 '엄마도 취미 생활을 하나 가져보는 건 어때? 취미 생활만큼 우울감이나 무기력감을 떨쳐내는 데 좋은 게 없다고 하더라'라고 힘주어 말했다. 딸의 이야기에 스마트폰으로 내가 할 만한 취미를 찾아보긴 했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그러다가 실로 오랜만에 유튜브 어플에 접속했는 게 알고리즘의 영향인지 가장 상단에 다육이를 키우는 영상이 떠 있었다. '다육이? 어디서 들어는 봤는데, 한 번 볼까?'라는 생각으로 클릭하여 업로드된 영상을 봤다.


연달아 몇 개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나서 난 막연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다른 식물과는 다르게 다육이는 물도 자주 주지 않아도 되고, 관리법도 쉽네? 아니 게다가 가격까지 싸잖아? 단돈 몇천 원에도 어딜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예쁜 다육이를 살 수 있네? 이렇게 좋은 취미가 없잖아. 이 정도라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겠는데?



그날 밤, 서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다육이를 키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정한 큰 딸은 "엄마, 잘 생각했어. 그래 그렇게 취미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에너지도 회복해 보자고. 주말에 집에 내려갈 테니까 다육이 농장에 함께 가 보자."


약속대로 큰 딸은 토요일 아침 서울에서 첫 차를 타고 내려왔고, 우린 이른 아침을 함께 먹었다. 그런 다음 차를 아 인근의 다육이 농장으로 갔다. 처음 보는 다육이는 종류도 많고

비싼 것은 몇십, 몇 백하는 것도 있지만  2~3천 원 정도면 이른바 '국민 다육이'라고 불리는 저렴한 종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또, 난이나 관엽식물처럼 공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잘 성장하고, 뿌리가 잘려도 최소 몇 달 이상 버틸 수 있도록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식물이라 키우기도 쉬운 것 같았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 상황에 이 보다 더 좋은 취미는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딸은 "엄마 원하는 만큼 다 사도 돼. 내가 다 사줄게"라며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보였다. 딸의 재촉에 난 정말 원 없이 사고 싶은 다육이를 모두 골랐다. 딸은 엄마를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어 너무 기분이 좋다며 가격도 묻지 않고 냉큼 결제했다. 분명 빈 손으로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정말 모녀 둘이서 다 들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다육이에 파묻힌 상태였다.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와 냉큼 베란다에 구입한 다육이들을 늘어놓았다. 낮에 농원에서 함께 구입한 예쁜 화분에 다육이들을 일일이 옮겨 심었다. 그리고 한참을 바라봤다. 연신 사진을 찍어대기도 했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다육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내 마음을 잠식했던 우울감이, 슬픔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나는 직감했다.


내가 다육이랑 사랑에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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