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해서 집에 오니 식탁 위에 딸이 보내온 책이 담긴 박스가 있었다. 그 어떤 택배 상자보다 떨리는 맘으로 언박싱을 하였다.
책은 생각보다 사이즈가 작고 앙증맞았다. 이걸 쓸려고 울 딸이 그렇게 힘들었나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밥을 차리는 동안 한 권을 꺼내 신랑 보고 먼저 읽어보라고 하였다. 딸이 몇 달 동안 고생하며 쓴 첫 책이므로 아빠도 꼭 읽어보라고 말한 게 생각 나서다. 절반을 읽고 나서 저녁을 먹은 후 나머지를 읽고 아무 말없이 신랑이 책을 건네주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소파에 기대어 떨리는 맘으로 한줄한줄 읽어 내려갔다.
서울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책으로 딸의 당시 느꼈던 마음을 되짚어보니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힘들다 힘들다 해도 다들 겪는 거라 무덤덤히 넘겼던 때를 생각하며 왜 좀 더 따뜻하게 말해주지 못했나 미안하기도 하였다.
내 뱃속으로 낳고 수많은 얘기들을 평소에 주고받지만 다 알 것 같았는데 딸에 대해 몰랐던 서울살이 얘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딸이라 첫정을 주고 항상 잘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한 것이 딸에게는 무거운 짐을 하나 안겨준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게 밀려오는 이 감정.
매번 책 얘기 중에 엄마 얘기가 절반이 넘는다기에 어떤 얘기를 썼나 걱정 반 궁금증반으로 상상만 하다 오늘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너무 사실적으로 적어서 걱정도 되지만 "엄마. 에세이는 진짜로 마음을 적어야 된다."라는 딸의 말이 생각나 흐르던 눈물을 훔쳤다.
내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라 소파에 기대어 숨도 쉬지 않고 집중해서 읽고 있는데 딸의 전화벨이 울렸다. 흐름이 끊기는 게 싫어서 받지 않을까 고민하는 내가 신기하기도 하였다.
평소 책을 좋아하지도 가까이하지도 않았던 나를 브런치라는 친구를 소개해준 딸 덕분에 요즘은 자기 전이나 새벽에는 꼭 구독한 작가님들의 글은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며 특별한 감정을 느낀 날은 매번 용기를 플러스해서 브런치에 글을 써본다. 아직은 글을 쓴다는 게 많이 어색하고 힘들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준 딸에게 감사하다.
딸이 쓴 책 맨 끝부분의 이 페이지 글을 읽고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줄줄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