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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다kim Nov 04. 2021

엄마, 나는 하나도 안 지겨우니까

제발 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주세요.

새벽 5시 30분.

우렁찬 알람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겨우 눈을 떠 CCTV 카메라 어플을 열어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한다.


팔순을 넘기신 부모님께서는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시골에서 거주하고 계신다.

연세가 많으시기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마음에 작은 오빠가

시골집 거실과 마당에 CCTV를 설치했고,

언제든 볼 수 있도록 어플과 연동을 해줬다.


덕분에 난 언제든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을 때,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부모님이 갑자기 보고싶을 때,

어김없이 핸드폰을 켜서 어플에 접속하여
부모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본다.




세 아이  키우면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아버지는 병원 갈 때마다  내가 보호자가  되어

모시고 다녀야 하고 평생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일을 너무 하신 탓에 어머니는 요즘 들어 부쩍

허리가 조금씩 굽어지시는 것 같아 뵐 때마다
마음이 시리고 아프다.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내 나이 어느덧 오십이 넘어가니,
나는 엄마의 딸이고, 내 딸의 엄마임을 절실히 느낀다.


부모님이 모두 안 계시는 지인들은

내게 "살아계실 때 잘해야 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며
수차례 말을 하는데 머리로는 알겠고
가슴으로도 이해가 되지만

바쁜 현실에 늘 신경을 크게 쓰지 못하는 것 같아
하나 밖에 없는 딸로서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늦둥이 뒷바라지 하랴, 학원일 하랴,
항상 밤늦게 마치는 나의 일상에 지쳐
앞으로 부모님께서 내 곁에 함께 계시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듯하다.




큰 딸은 몇년 전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이제 본인 앞가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둘째 딸은 노량진에서 열심히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고
막내 아들은 앞으로 고등학교랑 대학교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줘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처럼 돈으로 부모님께 효도하기는

사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2년 전 쯤 부모님 댁 근처로 이사를 오면서
예전보다 자주 찾아가서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뵙고 효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이들에게는 몇십, 몇백도 쉽게 쓰면서
정작 나를 낳아주시고 평생동안

헌신하신 부모님께는

몇십만원도 잘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을 원망할 때가 많다.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터라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부모님께서 나보다는

훨씬 더 경제적으로

여유로우시니까 생각하며 나를 달래는 날이 많다.




큰 딸은 매일 저녁 퇴근을 하고 나면
내게 전화를 걸어온다.


우린 한 시간이 넘도록,
핸드폰이 뜨거워지도록

수다를 떨며 하루 일과를 공유한다.

매번 나와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며
시시때때로 영양제와 선물을 보내오고
동생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큰딸을 보며
나는 오늘도 깊이 반성을 한다.

정작 시골에 두분이서 계시는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께서는
항상 당연히 잘 계시겠지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도 바쁜 일상을 보냈다.

어느날 예고 없이 훌쩍 내 곁을 떠나신다는 것은
항상 남의 이야기인듯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곁에 계실 때 후회 없도록

더없이 살가운 딸이 되어봐야겠다
.

지금도 친정에 가면  '엄마~'하고 먼저 찾으면

아버지께서는 '니는 맨날 오자마자 네 엄마만 그래 찾니?'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벌써 흰머리 염색을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나는 아직도 어릴 때처럼
 철부지 외동딸이 되고 싶은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지난주 부모님과 볼일을 보고 점심을 먹으면서

'이렇게 두 분 계시니까 맛있는 것도 먹으러 오고

얼마나 좋아요. 내 쉬는 날 종종 놀러 다닙시더'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너무 오래 살면 자식들이

지겨워한다. 갈 때 되면 가야지'하셨다.



엄마 나는 하나도 안 지겨우니까
아직도 여전히 엄마 앞에서
철부지 딸이고 싶으니까
건강하게 내 곁에 오랫동안 있어주세요.

사랑합니다.
나의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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