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KTX가 힘차게 달려가는 장면을 보시던 아버지께서 무심코 "나는 아직 KTX를 못 타봤는데 내가 죽기 전에 타 볼 수 있을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서 아버지께서 제주도며 외국여행도 갔다 오셨는데 KTX를 못 타보셨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매번 서울 갈 때는 오빠가 부모님 힘드실까 봐 승용차로 모셔서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딸 들을 보러 서울에 갈 때마다 KTX를 타고 가는 걸 보시고는 아버지께서 내심 한번 타보시고 싶었던 것 같았다. 연로하신 아버지는 병원에 갈 때도 차에 내리시면 내 팔짱을 끼고 걸으시고는 한다. 물론, 혼자 걸으실 수 있으시지만 달리는 차도 많고 사람들과 부딪힐까 봐 걱정도 되고 어떨 때는 앞으로 꼬꾸라지실 때도 있기에 불안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무심코 말씀하셨겠지만 나는 조만간 부모님 모시고 당일치기라도 KTX를 타고 서울 갔다 오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큰딸한테 했더니 그럼 당장 예매할 테니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터라 토요일이지만 수업을 빼기가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기말고사가 끝나는 때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더 늦어지면 추울 것 같기도 하고, 단풍도 마침 울긋불긋 어여쁘게 물들었을 듯하여 지금이 딱 제격인 듯했다.
함께 경주에서 살고 있는 막내 오빠도 부모님이 가시면 나 혼자 힘들까 봐 감사하게도 동행해 주기로 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둘째 오빠는 조경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에 가을이라 바쁜 것 같아 따로 연락하지 않고 조용히 갔다 오려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왜 본인한테 연락하지 않았냐며 섭섭해할 것 같아서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갑자기 서울행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알렸다.
그랬더니 둘째 오빠는 부모님이 서울에 오시면 당연히 본인 집에서 자야 한다고, 좁은 원룸에 살고 있는 우리 딸들의 방에서 자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당사자인 부모님께서는 "아들 집에서는 일전에 자 본 경험이 있으니 원룸에서 자도 상관없다."라고 거듭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연로하신 두 분이 하룻밤 묵기에는 불편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님 의사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토요일 새벽 5시 48분에 신경주역에 출발하는 KTX를 타고 부모님, 막내 오빠, 나는 광명역으로 향하였다. 아버지는 KTX를 타고서는 연신 이곳저곳이 신기하신지 두리번거리셨다. 빨리 달리는데도 새마을호와 달리 별로 흔들림이 없는걸 신기해하셨다. 새벽 일찍 준비하시느라 피곤도 하실 텐데 주무시지도 않고 난생처음 타는 열차에 한껏 들떠 계신 것 같았다. 아버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실로 오랜만에 봤다.
두 시간도 채 안 걸려 광명역에 내리니 둘째 오빠가 마중을 나오셨다. 아버지께서는 경주랑 다르게 역이 너무 커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시겠다시며 혼자서는 오지도 못하겠다며 웃으셨다.
둘째 오빠는 우리를 태우고 인천 영종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소래포구에 가서 조개구이, 새우찜, 해물칼국수로 한가득 사주었다. 부모님 덕분에 나까지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곳곳을 둘러보며 모처럼 기분 전환도 했다.
결국 오빠의 성화에 부모님은 둘째 오빠네서 주무시고 막내 오빠랑 나는 두 딸이 사는 원룸에 와서 맥주 한잔하며 회포를 풀었다. 오빠들은 둘째 딸이 공부하는데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도 두둑하게 쥐어 주셨다.
회사 다니며 부모님 곁에서 힘들게 농사지어서 나와 우리 딸들에게도 매번 넉넉하게 나누어주시는 막내 오빠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언제쯤 이 감사함을 다 갚을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을 일찍 드시고 부모님이 조카와 함께 와서 좁은 원룸이 꽉 차 발 디딜 때가 없었다. 그래도 외손녀들이 어떤 곳에 사는지 내심 궁금하셨는데 와보니 좋으신 듯하였다. 잘 사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이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서울 가이드를 자청한 큰 딸의 제안으로 우리 일행은 덕수궁에 가서 아름다운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보려고...'이런 글을 쓰면서도 언젠가는 부모님이 안 계실 때가 온다는 사실에 벌써 마음이 아려온다.
광장시장 가서 장수막걸리에 맛있는 육회랑 빈대떡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카페에 갔다. 사실 처음에는 팔순이 넘으신 부모님께서 카페를 낯설어하셨다. 아무래도 생소한 장소가 아니겠는가. 왜 이런 곳에 와서 한 잔에 오 천원이 넘는 값비싼 커피를 마시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래도 일부러라도 자주 모시고 가다 보니 이제는 여유롭게 즐기시는 것 같았다. 엄마께서는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토를 드시며 한껏 미소를 지어 보이시기도 했다.
카페를 나와 바로 앞의 청계천 나들이를 갔다. 광장시장에서 오래 돌아다녀서인지 연신 앉을 곳을 찾으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둘째 오빠는 다리가 아프신 부모님을 위해 서울 일대를 드라이브시켜주었고, 저녁에는 서울에 사는 사촌 오빠가 저녁으로 장어구이를 사주면서 새로 산 건물은 부모님께 자랑하며 구경시켜 주셨다. 또 경주에 돌 아가사 셔 맛있는 것을 사서 드시라며 용돈도 두둑이 주셨다.
광명역에서 저녁 8시 기차를 타고 신경주역에 도착한 순간 나는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를 끝마친 학생인 것처럼 너무 뿌듯했다. 바쁘고 피곤할 텐데도 같이 동행해준 막내 오빠도 너무 고맙고, 이틀 동안 부모님을 포함한 우리 일행을 모시고 다닌 둘째 오빠에게도 너무 감사하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멀리서 오신다고 열심히 청소한 두 딸도 고생이 많았다고 꼭 전해주고 싶다.
우리 아버지께서 이제 TV에서 KTX가 달리는 모습이 보이면 "나도 이거 한 번 타봤는데..." 하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