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저녁 8시 학원 수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달려가 딸들에게 해 먹일 반찬을 이것저것 챙겨서 양손 무겁게 짐을 챙겨 신경주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학교 다닐 때는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내려오더니 이젠 둘째 딸이 공부하느라 거의 일 년을 오지 못 해 '나 엄마 밥 먹고 싶다'라는 말에 한 주 동안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또 서울로 갑니다.
매번 전화가 너머로 "엄마 나는 김치전도 먹고 싶고, 오이무침, 오징어볶음, 꼬막무침도 맛있겠다."며 도대체 엄마 언제 오냐고 합니다. 집에서 매번 먹던 것인데 서울만 가면 자꾸 생각이 나나 봅니다. 나는 내가 만들지만 않으면 다 맛있던데..
예전에는 음식 하는 걸 좋아했는데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신랑과 자식들 위해서 만들지만 일에 지쳐 퇴근하면 귀찮을 때도 많습니다. 저녁 한 끼로 먹을 수 있는 마법 알약이 개발되면 정말 좋으련만... 곧 그런 날도 오겠죠.
8시 40분 신경주역에 도착하면 역사 내부는 사람들도 북적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다 밝습니다. 아마 즐거운 주말을 보낼 생각에 설레여서겠죠. 모두들 한껏 들뜬 표정으로 KTX에 올라탑니다.
저마다 각자의 사연을 싣고,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서울로 향합니다.
예전에는 지방에 사는 저로써는 당일로 서울 갔다 오려면 정말 힘들었는데 KTX가 개통된 지금 큰딸은 여기 경주에서 월요일 새벽차를 타고 서울로 출근도 합니다. 세상 참 좋아졌죠.
10시 47분. 서울역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큰딸이 마중을 나와있습니다. 매번 가는 길이라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 큰딸은 엄마가 먼길 온다고 꼭 마중을 나옵니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상기된 얼굴로 '엄마 왔어'하는 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스물이 넘은 나이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두 딸이 사는 원룸이라 갈 때마다 이곳저곳 손 봐줄 곳이 많습니다. 나름 엄마가 온다고 몇 날 며칠 대청소를 했다고는 하지만 주부 몇십 년 차인 내가 보기엔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 회사에 다니면서 살뜰하게 동생을 챙기는 큰딸이 참 기특합니다. 내가 오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 다 해달라며 이것저것 장을 봐 놓고 기다리는 딸들을 위해 이것저것 냉장고를 털어서 좁디좁은 싱크대에서 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엄마 손 맛을 뽐내봅니다. 평범한 음식도 연신 "맛있다." 하는 딸들을 보면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솜씨를 부려 음식을 내어놓으면,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딸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엄마 손맛이 그리웠을까'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고요.
사실 그동안 살아가면서 서울에 갈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곳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경주는 주차할 곳도 많고 요금도 거의 무료로 차를 몰고 다니지만, 서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차 공간도 협소하고 주차비도 만만치 않아 차를 가지고 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죠. 그래서 항상 KTX나 SRT를 타고 올라가서는 지하철로 움직입니다.
그러니 걸어야 하는 시간도 많고 건물도 복잡하고 공기도 답답하니 숨이 막혔습니다. 하지만 어연 4년쯤 되어가니 사람인지라 익숙해지고 새로운 곳을 항상 구경시켜주는 딸들 덕분에 서울 여기저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둘째 딸은 매번 "엄마 서울 집은 경주 내 방 정도밖에 안 되지?" 하면서 집에 오면 넓어서 좋다고 했건만 못 온 지 일 년이 다되어 갑니다. 부모가 되어 능력이 없어 더 넓은 집을 구해주지 못해 갈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이 좁디좁은 방에서 언제쯤 두 딸들은 해방시켜 수 있을지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박 3일간 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때는 매번 아쉽기만 합니다. 큰딸은 "엄마 안 내려가면 안 돼? "라고 합니다. 안 내려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올라갈 때마다 매번 합니다. 그럴때 마다 혼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