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뭐 해? 카톡 보냈는데 보지도 않고?"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였다. 항상 퇴근하고 저녁때면 문자나 전화를 해서 그러려니 하고 바쁘다고만 하였다.
"엄마 드디어 책이 나왔어. "하는 말을 듣고는 카톡을 확인하였다. 인쇄소에서 책을 받아 들고, 걸어가면서 책을 넘기는 동영상과책 사진 몇 장이었다.
딸은 6개월 전부터, 책을 내겠다고 나와 남편에게 선언했었다. 원래는 8월 출간이 목표였지만, 수정할 것도 많고 분량도 엄청나서 이를 줄이고 다시 쓰고를 반복한다고 좀 늦어졌다. 밥 먹는 시간은 물론, 수면 시간까지 줄여가며 악착같이 쓴 글임을 잘 알기에 사진을 받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내 딸이 책을 쓰다니' 책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평소 책을 잘 사지도 않았던 사람이다. 내가 취미로 하는 다육이를 보면 예뻐서 계속 사는 것처럼 큰딸은 서점만 가면 눈이 반짝반짝했었다.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딸의 얼굴을 보면 처음 책을 낸다고 말할 때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픈 일을 다해보라고 응원했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설마 회사를 다니며 1인 출판사를 설립하여, 사업자등록증도 내면서까지 책을 출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직도 내겐 철없이 어린 딸인 것 같은데 대학을 졸업하고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여기저기 직장을 옮겨가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는데 지금은 회사도 잘 다니며 하고 싶은 글도 쓰는 걸 보니 안쓰럽지만 대견한 것 같다.
"엄마 책 잘 팔릴까?" 하는 딸의 말에 나는 "처음이니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얼마나 팔리는지는 걱정 안 했으면 해"라고는 했지만 기대를 하고 있는 딸이 실망을 할까 또 걱정이된다.
4년 전 동생 대학 진학 때문에 세종에서 서울로 직장을 옮기라고 부탁한 게 나였기 때문에 서울살이가 힘들어 보일 때마다 내심 미안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여기 경주에서는 할 수 없는걸 뻔히 알기에 다 정리하고 내려오라는 소리를 못 하였다.
한 달에 한번 경주에 오던 딸이 두세 번씩 올 때는 서울살이가 힘들어서인걸 나는 알았다.
그때마다 큰딸은 금요일 밤늦게 경주에 와서 월요일 새벽 5시 50분 KTX를 타고 서울로 출근하곤 하였다 딸을 배웅하러 신경주역에 도착하면 2층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열차를 탈 수 있다. 서울에 간지 2년째까지 에스컬레이트에서 매번 큰딸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생생하다.
"엄마 나 서울 안 가고 싶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꼭 서울로 보내야 되나... 여기서 할 일은 없는 걸까'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까운 대구, 부산 정도에라도 있으면, 힘들 때 달려가서 엄마가 위로해 줄텐데...
서울은 너무 멀어서 항상 맘이 아린다.
밤 12시가 넘어서 둘째가 "엄마 언니가 배가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해"라고 연락이 오면 응급실 가라고 말만 해줄 뿐 차를 몰고 당장 가지도 못하고 밤새 걱정되어뜬눈으로 잠을 못 이룬다.
평소 글은 쓰는 일을 하기에 예민해서인지 위경련이 자주 생겨 딸이 고생을 하는데 멀리 있으니 부모라도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반찬 해서 택배로 보내주고 한 달에 한번 서울 가서 집 정리해주면서 먹고 싶은 거 좁디좁은 원룸 주방이지만 내 새끼 먹일 거라 즐거운 맘으로 음식을 만들어줄 뿐이다.
서울 올라간 지 2년이 지났을 때쯤 신경주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면서 "엄마 이제 나는 서울에 살 거야. 여기서는 할 게 없다" 하길래 마음은 아팠지만, 험난한 서울 살이 잘 극복하고 하고픈 글을 쓰면서 살았으면 했다.
참고 견딘 결과, 첫 책을 내는 딸이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해 냈다는 것만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딸이 쓰는 브런치를 보고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 싶어 작가 신청을 해서 몇 편을 올렸지만 글은 쓰면 쓸수록 힘들다. 큰딸한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이제 그만 쓸란다. 글 쓰는 거 힘들어. 너는 회사 다니면서 책도 쓰고 브런치 글도 올리는 거 보니 대단하다."라고 했더니 처음으로 엄마한테 인정받았다며 좋아했다.
평생을 학원에서 수학 문제만 풀다가 딸이 브런치 글을 쓰는 걸 보고 나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수많은 브런치 글을 보며 작아지는나를 발견하고 글을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발행 누르는 게 두려웠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