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모유는 모성에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선배 육아맘이 보내준 출산 시 필요한 준비물. xslx에 있는 준비물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본 양배추 팩을 팅팅 부은 가슴에 올려놓고 오한에 이를 딱딱 떨면서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모성은 건강한 체력에서부터 비롯된다 생각한다. 나는 임신시절도 지난했었다. 우선 12주가 넘자마자 입덧을 시작했는데 먹덧+공복덧에 당첨되어 속이 비면 바로 구역질이 나왔고 그렇다고 많이 먹으면 꼬부기처럼 변기에 대고 분수토를 해야 했다. 그러니 적절한 양을 아주 자주 꾸준히 먹어줘야 하는 그지 같은 입덧에 당첨되었던 것이다. 섭취와 구역질은 임신기간 내내 쉴 새 없이 지속됐다. 아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소박한 나의 골반과 연약하기 짝이 없는 발바닥도 20주쯤 '환도 선다 & 족저근막염' 콤비를 이루어 임신생활을 고난으로 풍성하게 해 주었고 아이를 낳으러 향한 38주 즈음엔 완벽한 거동불가능 & 역류성식도염과 불면. 입덧의 하모니로 처참한 몰골이 완성되었다. 그쯤 내 소원은 "하루라도 뭘 먹지 않는 것"과 "출산과 동시에 자유로 탈출하는 것" 오로지 내 머릿속엔 '자신'뿐이었다. 임신이 뭐길래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기능이 상실이 돼버리는 것인가. 임신기간 내내 한 번도 편해본 적이 없었고 당연히 모성이란 단어는 어디에도 낄 수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육아는 산후조리원과 산후도우미 그리고 엄마에게 맡기고 육아에 관련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리라. 자유로 떠나리라. 그런 내가 왜 새벽 1시에 젖몸살로 드러누워 이다지도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일까.
어쩌다 나는 여기까지 와버렸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살면서 뭔가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부러워할만한 건 불가항적인 것이었으므로.
가령 비 오는 날 데리러 오는 '엄마'라던지 , 추운 아침 등굣길을 따듯하게 데워진 차로 데려다주는 '아빠'라던지, 물이 울컥울컥 들이차는 반지하 셋방 대신 창문으로 나무가 보이는 1층짜리 집이라던지 말이다. 그런 건 부러워해봤자 실현가능성이 0에 수렴했다. 주체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타인의 노력으로(결국은 부모) 이루어지는 것들에 대해 갈급해해 봤자 남는 건 고통뿐이므로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부러움'이라는 욕구는 거세된 지 오래였다. 부러움이 없다는 건 경쟁심도 없다는 것이고 열등감도 크지 않다는 것인데 그 덕에 고만고만하게 노력해서 적당히 낮게 이루고 남들의 삶에 흔들리거나 자극받지 않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었다.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가거나 좋은 대학에 가거나 멋진 남자를 사귄다거나 하는 등의 그 나이에 부러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에도 늘 심드렁했으며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열망도 당연히 없었다. 굳이 꼽아보자면 같이 먹고 함께 뚱뚱해졌건만 혼자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구를 봤을 때 꿈틀한정도랄까. 건조하고 무심했다.
그러나 서른일곱. 나는 엄청난 질투심과 열등감에 범벅이 되어버리는데....
"아무리 유축해도 이게 한계예요..."
"산모님 처음엔 다 그래요. 아기가 물면 양은 금방 늘어요 걱정하지 마요."
고통의 젖몸살로 하루라도 한 시간이라도 빨리 오케타니 선생님(모유수유 마사지 전문가)을 불러달라며 절규하던 밤이 지나 월요일 오전, 오케타니 마사지를 받고 유선이 뚫려 한층 편해진 가슴덕에 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규칙적인 시간에 해야 젖양이 는다는 말에 물과 두유 미역국을 우걱우걱 밀어 넣고 누구보다 바쁘게 시간을 맞춰 유축을 했음에도 도무지 30미리를 넘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점점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타이밍이 비슷해 같은 시간에 유축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 오는 다른 산모들과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젖병이 가득 차있을 때면 괜히 부끄러워져 비굴한 모양새로 쭈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씨... 개 부럽다 진짜"
옥시토신과 질투의 화신이 된 나는 조리원에서 푹 쉬고 나가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새벽에도 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열정적인 유축머신이 되었다. 그러나.
쪼북/20:00/30ml
저녁시간. 회수바구니에 유축을 마친 다른 산모들의 젖병들이 가득 놓인 시간엔 의도치 않은 염탐을 해야만 했는데 어떤 젖병은 같은 이름이 두 개나 적혀있었고 노란 초유가 가득 담긴 젖병도 보였다. 죽어도 30ml 이상을 못 넘는 나의 젖병은 단연코 한껏 초라했다. 이름표까지 써붙이니 노골적인 모성의 증빙서류 같기도 했다. 임신기간 내 아이에게 변변찮게 내어준 애정이 어쩌면 그때서야 후회스러웠다.
'어쩌면 모유는 모성에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내 모성이 너무 허접하고 빈약해서 모유양이 적은 게 아닐까..'
이름이 보이지 않게 뒤쪽으로 돌려 구석자리에 놓고 돌아서며 맹렬한 열등감에 뒤통수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그 지끈거림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마다 산모들은 혈압을 측정해 노트에 적어내야 했는데, 유축 후 혈압을 재어 보니 145가 넘어갔다. 이 지끈거림은 유축을 하는 내내 이어졌고 일주일 후 들른 산부인과에서 유축을 잠시 중단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직수 금지, 산모의 유축 금지를 권유받자 모유수유에 대한 열정이 짜게 식어버렸다. 애초에 크지도 않기도 했고 말이다. 거기다 하루하루 열등감과 싸워내야 하는 피곤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퇴소와 함께 단유를 했다. 단유 하기 직전까지도 내 모유는 30미리를 넘는 날이 없었으며 약도 없고 젖몸살도 없이 나의 모유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출산 전 내가 바라고 또 바라던 제왕절개와 분유수유를 모두 이루게 되었지만 딱히 기분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 혼자만의 수유량대결은 한심한 스코어로 지지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다 결국 기권패를 당했다. 오랜만에 이기고 싶었는데 아니 함께 경기출전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30ml의 미약한 모정을 찰랑이며 혈압 145로 헥헥 대다 뻗어버린 한심한 엄마는 정말이지 원하는 타이틀이 아니었다.
울분을 토하다 보니 어느덧 커피는 바닥을 드러냈다. 다섯 명의 엄마들 중 모유수유를 성공한 엄마가 없다는 게 다행이면 다행일까. 우리는 서로 저마다 아쉬움을 토로하며 가장 아쉽고 애달픈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이야기들을 취합해 보니 모두 마의 30ml를 못 넘고 포기했다고 했다. 깔깔대고 아쉬워하다 결국은 "분유도 괜찮어.." 하며 마무리된 그날의 대화.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걸 주며 키우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처음으로 줄 수 있는 것을 주지 못한 아쉬움은 항상 열등감으로 따라왔다. 나는 늘 임신시절 아이를 사랑하지 못한 대가인 걸까 자학을 했는데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도 어쩌면 불가항의 영역일 수도 있겠구나 싶어 더 이상의 자학은 안 하게 되었다. 30ml는 어쩌면 모성이 아니라 열등감의 깊이일수도 있지않을까? 그렇다면 나에게 30ml는 더이상 애달픈 수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