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ml의 모정-1

by 쪼북


*이번 화는 '젖'이라는 단어가 제법 나옵니다. 거부감이 있으시거나 젖을 젖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하실 분들은 살그머니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어린이집 아기엄마들 넷이서 모여 커피를 한잔씩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저마다 현재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하원 후에는 주로 뭘 하는지. 괜찮은 문화센터 강좌가 오픈을 했는지, 그 수업의 질은 어떤지, 감기기운이 있는지, 밥태기는 안 왔는지 현재상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그리고 커피가 반쯤 줄어들 즈음, 시점은 이미 뒤로 훌쩍 물러나 우리가 서로를 몰랐던 그때로 당도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처음 볼 때만 해도 서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부끄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으니 신기한 일이다.

"언니는 자분(자연분만)했어요 제왕 했어요?"

"어 나는 나이 때문에 제왕 했어. 고민도 안 했어"

"저두 고민도 안 하고 제왕 했어요ㅋㅋㅋ 난 출산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도우엄마는?"

"난 첫째를 자분해서 둘째도 자분하고 싶었는데 긴급제왕했잖아. 진짜 너무 힘들었어 그때"

"아악. 긴급제왕 진짜 아프다던데.. 도토리엄마는 어땠어요?"

"어.. 저는 자분 했어요 ㅎㅎ"

"역시 젊음이 좋구나!!!!"

가장 막내인 아기엄마의 자분 커밍아웃(?)이 이어졌다. 아이들 나이는 비슷하지만 엄마의 나이는 몹시 제각각이다.


"그럼 다들 수유는요? 모유수유했어요?"

내 질문에 모두가 아주 잠깐 숙연해진것은 기분탓은 아닐것이다. 민망해진 나는 재빨리 뒤이었다.

"나느은.. 젖이 안 나와서 못했어ㅠㅠ힝"




내 성격이 새침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타인 앞에서 마구마구 젖젖 거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싶다. 그러니까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이 지하철에서 옆자리 엄마에게 참젖 물젖 타령하다가 호되게 욕을 먹는 씬이 있다. 분유를 먹는 아이를 보며 엄마가 물젖이라 소젖을 먹는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고 "니는 참젖이냐?"라는 아기엄마의 질문에 "나는 참젖인디.." 하며 나지막이 (약간은 자랑스럽게) 읊조리는 장면까지다. 그녀와 나의 젖밍아웃은 다른 개념이라고 짚고 넘어가야겠다.

슬프게도 본인의 '젖타령'은 자부심이 아닌 자조적 한탄이기 때문이다.

그 장면을 본 무자녀시절의 나는 고민했다.

'여자에게 젖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고학력 인텔리들이 모여 모여 만든 미래 식품 테크놀로지의 집합체 -분유-라는 것이 종류별로 타입별로 이다지도 많이 판매되는 세상에서 과연 모유의 가치기준은 어디에서 생성되는 것인가?'

응당 출산을 한 여자라면 당연히 모유가 나오는 것이고, 분유는 선택지가 아닌가? 둘의 다른 점은 모유는 무료고 분유는 유료다. 때문에 분유는 산모의 쾌적한 복지를 위한 부가적인 사치제라고 생각했고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슈퍼 빠르게 -제왕과 분유수유-를 선택하기에 이른다. 젖몸살도 싫고 수유콜도 싫다. 나는 아이를 낳으면 분유수유로 편하게 키우고 조리원에서 밥 먹고 잠만 자고 올 것이다. 이른바 자발적 비수유를 하겠다! 며 사전에 꼼꼼하게 성분을 비교분석해 둔 분유를 주문해 놓고 산후조리원에 보낼 계획까지 세웠다.


또한 임신 후기, 건강검진에서 검사결과 하나가 유독 높게 나왔다는데 그것이 프로락틴수치라고 했다.

과해지면 비임신인 상태에서도 유즙이 나온다던가 하는 이른바 '유선자극' 호르몬이라는데 원래 수치가 조금 높은 편이었으나 별다르게 이상증상이 없어 추적관찰만 하고 있던 중 임신말기 때 평균적 산모들의 수치보다 훨씬 웃도는 수치가 나와버렸다. 현재로썬 딱히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어 출산 후 예후를 지켜보자는 말에 나는 속으로 '젖이 얼마나 나오려고 이러지? 하지만 미안하게도 아가야. 나는 모유수유를 할 생각이 없어. 아쉽게 됐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나였다.




출산직후 반응이 없는 가슴을 볼 때만 해도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왕은 젖이 늦게 돈다는데? 잘됐지 뭐. 나는 모유수유를 안 할 거니까! 그리고 병원 퇴원 하루 전 산모에게 올바른 수유자세등을 교육하기 위해 수유 코치 선생님께서 병실을 순회하는 그곳에서 우리 아이는 모유수유계의 신동 타이틀을 거머쥔다.


"어머 어머 이 아기는 벌써부터 자세가 딱 잡혀있어요 ! 야무지기도 하지. 빨기도 잘 빨고 힘도 아주 좋구요. 아기들이 처음엔 힘이 없어서 젖을 못 빨고 배고파서 울고 그러거든요? 근데 산모님 아기는 뱃구레도 크고 발도 크고 말이예요. 잘먹고 쑥쑥 크겠네. 오늘 내가 본 아이들 중 가장 최고점 주고싶다 이 친구한테!“

"아.. 그런가요..? 아악 근데 너무 아파요 잠깐잠깐.. 으악!! 좀 내려놓을게요..."


아이가 가슴에 안긴 순간.

누군가는 모성에 눈물 흘린다는데 나는 발가락이 오무라들만큼 아팠고 제왕으로 인한 통증까지 서라운드로 여기저기 욱신거리는 통에 신동이고 뭐고 귀에 들리는 게 없었다. '와 진짜 못하겠다. 절대 안 해야지' 자발적 비수유에 대한 다짐만 굳건히 하는 계기만 되었을 뿐.

그런 금쪽이 마인드로 조리원에 입성했다. 조리원은 나의 모유수유여부를 당연하게 '여'로 상정하고 있었는데

도착한 첫날. 점심을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으니 부원장님이 요상하게 생긴 기계의 사용방법을 가르쳐주러 들어왔다. 동글동글한 생김새와는 상반되는 쓰임새와 이름이 기괴했다. 이른바 '유축기'

가슴에 대고 버튼을 누르면 모유가 유축된다고 하는데 리듬감 있게 '후악-후악'대는 소리가 몹시 별로였다.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산모님 한번 지금 해볼래요?" 유축기를 가져다 대는 부원장님에게

"아뇨 아뇨! 제가 이따 혼자서 해볼게요."라고 황급히 대답하고 '어차피 안 할 건데 뭐'하며 멀찌감치 치워놔 버렸다.

'어우. 싫어 징그러워ㅠㅠ'라고 중얼대며 말이다.




우리 조리원은 모유수유를 강하게 권유하진 않는 곳이였다. 코로나의 여파로 산모들은 모든 일과를 개인호실에서 보내야했으니 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처럼 엄마들이 시간마다 한자리로 모여 수유를 할일이 없었고 시간마다 수유여부만을 물어보는 확인전화정도가 다였다. 와중에 아기는 황달진단을 받아 모유수유 중단 / 분유수유를 권고받았기 때문에 내 모유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희미해져 버렸다. 있으면 주고 없으면 만다 식이였다고 할까. 생각보다 너무 조용하자 나는 슬그머니 청개구리 심보가 올라왔다. 그리곤 저녁 간식으로 나온 떡을 우물거리며 유축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자발적 비수유는 내 선택이지만 강제적 비수유는 기분이 나쁜 법이지"


가슴에 대고 떨리는 맘으로 유축기 버튼을 누르자 참을만한 압력이 느껴져 왔다. 오? 시작된건가? 부원장님이 가르쳐준 대로 왼쪽 오른쪽 각각 몇 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내 찰랑이는 액체가 젖병에 담겨졌다. 10ml 남짓도 안 되는 흐릿한 무언가….


"저 젖 나왔어욧!!!!!!!!!!!"


감격에 겨워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간 복도에서 마침 우리 아이를 안고 들어가려던 원장선생님과 마주쳤고 그녀는 나의 상기된 목소리와 시뻘건 얼굴을 보고 다소 놀란듯 했다. "아이고 우리 산모님 첫 유축 하셨구나! 장하고 기특해~~ 정말 잘했어요. 이건 분유에 잘 섞어 먹일게요“ 하며 마치 뼈다귀를 물고 온 강아지를 대하듯 토닥여주었고 그 순간이었을까 ‘자발적 비수유'라는 단어는 흔적없이 휘발되어 버린 것이.

모유를 생산해 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여의도불꽃축제마냥 광란의 옥시토신 파티가 벌어졌다. 하지만 모성에도 명암은 있는법. 나는 뒤이어 따라온 지옥의 젖몸살을 마주하게 되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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