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쪽쪽이-3

불안의 연대기

by 쪼북



"나 눈물 날 거 같아 어떻게 해...."

새벽녘 극렬했던 쪽쪽이 전쟁이야기를 침울한 표정으로 주절거리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들은 도우엄마의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 아니 이게 울일이에요?ㅋㅋ"

"뭐라도 해보려고 한 거잖아 그 작은아이가... 쪽쪽이를 옆에다 빼놨다는 게 더 슬퍼. 나름 노력한 거잖아.."

31개월 아이가 쪽쪽이를 무는 행위의 귀책이 부모탓으로 여겨질까 봐 대화 중간중간에 방어기제를 잔뜩 넣어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우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는 놀라운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머쓱해진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 그런가?"

"그렇지! 난생처음 이별을 하는 거잖아요. 힘들어도 스스로 시도한 게 난 너무 대단한데? 그리고 마지막엔 빼고 잤고 말야! 너무 기특하지 않아요?"


그날밤의 핵심요약 - '이러다 내가 죽겠다.' '대체 저놈의 망할 쪽쪽이는 언제까지..'- 등의 탄식, 절망, 좌절들은 당연하게도 가득했으나 기특하다거나 대단하다거나 노력이라거나 하는 단어를 넣을 생각조차 못한 나는 도우엄마의 말을 듣고 아이와 쪽쪽이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자 그제야 짚고 넘어가야 했던 지점이 생각났다. 쪽쪽이 끊기 2회차. 새벽마다 발작하듯 울어재끼는 아이에겐 어떠한 것도 통하지 않았다. 이쯤 되는 아이들은 감정은 다각화되는데 그만큼 언어능력이 따라주지 못해 눈물과 떼쓰기로 감정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은 온몸으로 방출되었고 어설프게 달래려고 다가가다가 얼굴 두어 군데를 발로 차이고 씨익씨익거리며 앉아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 오열이 흐느낌으로 바뀌며 안겨오고 나는 아이를 꼭 안은채 기절하듯 곯아떨어지고의 반복이었다. 매일매일 폭풍 같던 새벽. 지친 얼굴로 졸다 깬 내게 아이가 말을 건넸다.


"엄마 미아네요.."

"응? 뭐가 미안해?"

깜짝 놀란 내가 되물었다.

"엉엉 울어서..."

"무엇이 그렇게 슬퍼서 울었어?"

"쪽쪼기.. 쪽조기가 없어서..."

"쪽쪽이가 없으면 슬프고 무서워?"

"응.."

"그래서 잠도 못 자고 짜증 나고 화도 내고 그랬던 거야?"

"응..."

나는 조금 고민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아이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건 말이야. 불안하다.라는 감정인 거야.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어. 네가 피곤하고 힘들 때마다 쪽쪽이를 물고 누워서 쉬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그러고 싶은 상황에 도와줄 존재가 없을 때 드는 마음이 불안하다.라는 거야. “

“부란애..? 불안애..?”

되지 않는 발음으로 불안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어보려고 하는 아이를 보며 입안이 썼다. 하지만 내내 아이와 이 지옥 같은 새벽을 보내는 것보다 적어도 우리가 어떤 감정을 지나고 있는지는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날 위해서 일수도 있다. 이해를 할 거라 기대도 안 했고. 그러나 아이는 다음날 밤 내게 말했다.

“엉엉엉 쪽쪽이가 없어서 불안해.. 마음이 불안해…”





나는 프로 불안러다.

20대 중반 차량 사고로부터 발현된 불안장애는 나를 구성하는 필수요소가 되었다. 지하철에서 급똥이 마려운데 화장실이 안 보인다라던가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 정도의 불안함과는 격이 다른,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신속하게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압도적인 불안을 체감토록 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불안은 아빠의 치매로 완벽한 나의 것이 되었다. 이질적인 감정이었다. 매일매일 이렇게 일상의 위협을 받는 기분이라니. 생경하고도 불쾌했다. 떼어내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불안을 잠재우는 법. 불안을 이기는 법. 불안을 받아들이는 법 등등의 주제로 발간된 여러 가지의 책들을 먹어치우듯 읽어댔고 회당 9만 원을 육박하는 심리상담과 운동, 뇌파치료에 약물치료까지 받아보았으나 나의 불안은 아주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악다구니를 하고 나서야 이 지긋지긋한 놈들이 이미 내 dna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고 답은 생각보다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엄마와 외할머니. 어머니와 어머니가 그 범인이었다. 얕고도 가늘게, 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시냇물처럼 우리를 따라 흐르고 있는 불안의 DNA는 나의 어린시절에도 잔뜩 묻어있었고 정체를 파악하고 나니 오히려 맘이 편해졌다.(욕은 좀 했음.)

떨쳐낼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거라면 인정하고 살기로 맘먹은 것이다. 티 내지 말고. 말하지 말고. 매사 여유 있는 것처럼, 무심한 것처럼 행동하면 쉽게 위장하며 살 수 있다. 그러면 된다. 그래서 누구보다 불안에 떨고 고통스러워했지만 그 누구보다 불안을 모르는 것처럼 살았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만큼은 불안이 없는 삶을 주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크겠는가.

불안의 연대는 후천성으로 발현된 피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잘못 만난 여자들의 저주인가 싶을 정도로 남편들이 형편없었다. 나의 아빠도 그랬고 외할아버지도 그러했다고 한다. 증조외할아버지도 비슷했겠지. 사랑받지 못한 여자들은 불안했고 자식에게 불안을 물려줬다. 하지만 나는 선대와는 상황이 달랐다. 나와 남편은 각별하다. 집안의 반대에도 꿋꿋했던 나름 드라마틱한 상황도 있었고 초장거리 해외 롱디도 1년을 넘게 버티며 10년을 연애했다. 결혼 4년 차엔 아빠의 치매도 겪으며 산전수전 다 겪은 끈끈한 전우애마저 생겼다. 7년 차. 아이가 태어났고 놀만큼 놀아 더 이상 할 것도 놀 것도 없던 우리에게 육아라는 공동퀘스트는 모든 것을 내주고도 모자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때문에 매일매일 생명과 정신에너지를 아이에게 아낌없이 소모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행복해하고 감사할 줄 아는 부모에게 태어난 우리 아이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모르고 살 줄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내 불안의 귀책을 엄마에게 돌렸던 나날들이 타당해지는데?

노력한 나날들이 무색하게도 쪽쪽이 따위에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다니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게 뭐라고 상실과 불안을 이토록 일찍 알아버리게 하다니. 쪽쪽이를 물렸던 첫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어코 죄책감에 머리를 박는 자학도 했다. 하지만 이런 히스토리를 알 턱이 없는 도우엄마는 내 머리를 한번 더 띵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아이는 본인의 불안을 조절할 도구를 일찍 찾은 거잖아요. 본인이 불안하고 힘들 때마다 쪽쪽이로 해소를 한 거잖아.”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불안과 삶을 공유하면서도 약물 이외의 도구를 찾지 못한 나였다. 끝없이 흘러내려오는 불안의 폭포를 온몸으로 맞아가면서도 방법을 몰라 급선책으로 대상과 상황을 소거하기 급급했었다. 그런 방식으론 사라질 리 없던 불안이 아이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기겁하며 떼어내려 했는데. 선대와 다른 건 내가 아니라 나의 아이였다. 엄마와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는걸 극도로 부끄러워했으며 감추는걸 미덕으로 삼았고 그로 인해 두터운 방어기제라는 부작용만 생겼는데, 아이는 감정의 이름을 알려준 후부터 "엄마 쪽쪼기가 없어서 부안해”라며 더듬더듬 짧은 발음으로 마음을 표현했다.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되자 우리 모녀 사이엔 이유 없는 떼쓰기도 분노폭발도 줄어들었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불안할게 뭐가 있냐며, 남들 다 하는 걸 왜 못하냐는”다그침도 없어졌다. 불안함을 자신 있게 표현하는 나의 아이가 기특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연대라는 게 어찌 보면 기질이라고 하는 부분인거지. 부모가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데 애는 안 그러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갓 태어난 아이는 백지상태에 가깝고 그 위에 어떠한 오점도 없이 키우겠다는 생각은 아이의 본질적인 특징이나 성향들을 ‘내 선택으로 좌우할 수 있다.' 오만한 육아관이었고 나는 쪽쪽이 전쟁으로 그 생각을 철회했다. 실은 백지가 아니라 고도로 정교한 설계도면이었고 그 도면에는 부모의 선대부터 이어져내려 온 수많은 특성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설계도를 수정해 낼 수 있는 깜도 되지 않고 자격도 없다. 타고난 기질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이 도면의 기호를 잘 이해하여 온전히 만들어낼 수 있도록 부모가 더욱 열심히 연구를 해야 한다.라는 결론에 이르었다. 아이의 쪽쪽이를 입에서 떼내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쪽쪽이를 내려놓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 부재로 인해 오는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상실을 받아들일 거라는 것. 이후로도 살면서 겪을 모든 불안을 스스로 인정하고 각각의 방법으로 다루는 법을 찾아야 하는 것임을 가르쳐줘야 함을 깨닫고 쪽쪽이 해방령을 내렸다. 남편은 오래된 쪽쪽이를 다 갖다 버리고 새로운 쪽쪽이를 대량구매했다. 불안을 다루는 방법을 못 찾은 건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마찬가지이므로 어떤 의미에선 우리보다 선구자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듯했다.


“물고 싶을 때까지 실컷 물어! ”

아이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새로운 쪽쪽이를 물고 방에 들어가 나게 빨기 시작했다. 시각이 달라지니 그것을 보는 내 마음도 달라졌다. 불안에서 흐뭇함으로. 그렇게 일주일, 한 달의 시간이 지난 현재 우리는 아직도 쪽쪽이와 이별은 하지 못했다.

“오늘은 보라언니처럼 안물고 잘 거야!”

하지만 어떤 날은 즐겨보던 베베핀의 등장인물 이름을 대며 먼저 거부하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잠이 안 오면 배시시 웃으면서 ‘쪽쪼기…. '하고 가져와 수줍게 물고 자는 날도 있고, 피곤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 먼저 찾아 물다가 새벽에 뱉어 치워 두고 아침까지 쭈욱 자기도 하며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선대의 어머니와 어머니에게 불안이라는 이름의 유산을 받아 이건 왜 상속포기각서 따위로 취소가 안 되는 거냐며 엄마를 푹푹 찌르고 다니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스스로 방법을 찾아 뚜벅뚜벅 걷고 있다. 때문에 나는 아이에게서 나의 모습을 찾을때마다 불안해지지만 또 한편은 설레기도 한다. 불안의 연대기는 지속된다. 다만 조금 다른 모습을 할 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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