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쪽쪽이-2

유레카! 나를 닮은 애 모습에 화가 난 거구나!

by 쪼북




"대체 왜 너만 못 타는 거야 왜!!!"

아무리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지. 너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질 않았어. 집에 가서 미미인형을 사주겠다고 해도 싫다. 열차를 타고나면 솜사탕을 먹자고 해도 싫다. 진짜 고집이 고집이. 황소고집 저리 가라더라. 나는 어떻게든 너를 함께 태우고 싶었어. 그러려고 왔으니까. 못 탄다고 떼를 쓰는 아이들이 한두 명 정도 더 있었다면 그 정도까진 아니었을 테지. 하지만 그 많은 아이들 중 딱 너 하나만 무섭다고 울고불고하는 걸 보니까 너무 속이 상했어.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



다운로드.jpg 에버랜드 문제의 비룡열차





엄마에게는 '때렸다'라는 기억은 완벽하게 소거되어 있었고 그때의 기분만 어렴풋만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니까 쪽팔렸다는 뜻?"

"어 뭐... 그런 것도 있었겠지."

"하지만 엄마 나라면 때리진 않았을 거 같아. 보통 쪽팔린다고 딸 뺨을 때리진 않잖아."

"미안하다 미안해. 근데 오죽했으면 그랬겠어라고 생각도 해봐. 너도 내 입장이 되면 그럴 수 있었을 거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억울하게도 나는 그때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나를 두고 출발한 비룡열차에 타고 있던 같은 반 친구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던 것까지 말이다. 모녀의 오랜 실랑이로 기다림에 지친 아이들은 짜증을 냈고 선생님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의 입술 사이에서 말들이 짓이겨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고 더욱 불안해졌다. 이대로 다시 돌아가 비룡열차에 타면 그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뺨에서 불이 번쩍 피어올랐고 꼬마에겐 비로소 완벽한 명분이 생겼다. 패닉에 빠져 울고 뒤집어지는 나를 질질 끌고 내려오던 그때 엄마의 마음속엔 무엇이 있었을까.

'나였다면 그냥 타지 말라고 해줄 텐데. 그게 뭐라고. 쪽팔린 게 뭐라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대체 왜 너만 쪽쪽이를 못 끊는 거야. 이제 끊을 때도 됐잖아! 언제까지 쪽쪽이 물고 잘 꺼야!?! 너는 이제 아기가 아니잖아!!!"

하지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그날. 나는 그녀가 어린 딸의 뺨을 올려붙이기까지의 마음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이었구나 젠장! 유레카!'





부자동네에서 가난한 집으로 살던 우리. 잘 정돈된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소풍, 노령의 담임선생님은 당시 30명이 넘는 초딩들을 통솔하기에 힘이 부쳐 학부모들에게 보조요청을 했으나 그 답에 응한 건 우리 엄마뿐이었더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집안의 가장인 엄마로선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나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담임과 함께 버스 안에서 멀미로 토를 해대는 아이들의 입을 닦아주면서 오로지 하나를 위해 참았다고 했다. 내가 부모의 보살핌을 많이 받는 아이처럼 보이기를. 그리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으쓱해질 수 있기를 말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나는 혼자서만 롤러코스터에 타는 것에 실패했다. 엄마는 기가 막혔다고 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엄마가 있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거냐고.

엄마가 내 뺨을 올려붙인 건 스스로에게 화가 난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용감하게 놀이기구를 즐기지 못하는 심약한 딸의 모습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했을 테고 그걸 덮어주기 위해 꾸역꾸역 따라나섰지만 실패했을땐 모서리가 삐죽하게 튀어나온 것처럼 불편했을것이다.


“엄마. 근데 엄마가 있어서 내가 못 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비빌곳이 있으면 비비고 싶거든.”


조금 비겁한 말이었지만 아예 틀린 건 아니다. 친구들 손을 잡고 웃고 떠들면서도 엄마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면 불안했다. 처음부터 안 왔다면 찾는 일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엄마가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나만 봤듯이 나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만 보였다. 문제의 비룡열차는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낮은 고도의 놀이기구였다. 2분남짓? 약간의 빠른 속도로 좁은 레일을 두세 바퀴 돌면 끝나는 아주 이지한 난이도였으나 타고난 겁쟁이로 타본 놀이기구라곤 회전목마! 심지어 말 타는 것도 무서워서 호박마차만 타던 나에게는 생사를 논할 급의 놀이기구인 것이다. 때문에 늘 말이 무서우면 마차를 타도 된다며 선택권을 줬던 엄마가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죽어도 비룡열차에서 죽어라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나의 비겁함에도 정당성은 있는 것이다.


"무서우면 안타도 된다.라는 선택권을 줬다면 탔을지도 모르지."

아이를 낳기 전 엄마에게 주장하던 것은 저러하였다. 엄마가 그때 내 뺨을 때리지 않고 불안을 존중해 주었다면 나는 좀 더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자주, 종종 엄마의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죄책감을 지속적으로 찔러댔다. 엄마도 내가 속을 자세히는 알 순 없지만 적어도 이런 식의 주장을 전개했을 때 고개를 숙이며 그래 네가 좀 더 좋은 부모,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같은 대답을 하는 걸 보면 자책과 자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한 것 같았다.

실은 구라다. 난 아직도 롤러코스터를 못타거든.



"엄마는. 엄마는 그때 어땠어?"

"불안했지. 나는 그 당시 기억하면 불안한 기억밖에 안 나.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너는 어떻게 키우나..

엄마도 할머니한테 제대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 어릴 때부터 불안해하며 살았지. 버려질까 봐. 할머니는 매일 밖으로 나가 도시던 분이었거든. 널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지. 너희 아빠가 일을 안 했잖아. 편하게 발 뻗고 잔 날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그때는 그랬어. 그래서 너만이라도 나같이 안 살기를 바랐던 거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려고 했었고. 그래서 소풍도 따라간 거고..근데 그러는데도 못타고 있는 널 보니 참..."

"내가 아기한테 느끼는 감정이 그거였어!!!!유레카입니다 어머니! 3인칭에서 보면 별거 아닌데 1인칭으로 돌려놓고 보니까 자꾸 내 모습이 보이니까 화딱지가 난거였어."


비룡열차가 무섭다며 울고불던 딸에게 매일매일 불안과 걱정에 잠긴 본인을 투사했던 엄마

아기가 쪽쪽이를 끊지 못하고 집착하는 모습에 그날 발을 동동 구르고 울던 나를 투사했던 나는


"왜 너만 못하는 거야!!"


환경과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투사하여 자식을 대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운명의 장난 같은 금쪽이들인가. 가장 싫은 모습까지 닮은 자식을 보는것이 힘든거구나. 를 깨달으니 머리는 복잡했지만 속은 시원해졌다. 그래, 원래 친구도 나랑 너무 똑같으면 꼴뵈기 싫어지는 지점이 있지. 쿵짝이 잘 맞는 부분도 일치하지만 뚜드려패버리고 싶은 부분도 똑같거든. 부모자식도 비슷한 것 같다. 숨기고 싶고 감추고 싶은 약점만큼은 기가 막히게 닮게 태어나 겨우 덮어냈던 과거의 나까지 끌고 오는 것이 자식이란 존재구나.라고 고백하자 니 같은 딸 낳아서 (당해) 키워봐라 라는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진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그날밤 쪽쪽이를 다시 되찾았다. 늘 다정하게 달래주던 엄마가 갑자기 소리를 치자 놀랜 아이는 히끅거리며 오랫동안 흐느꼈다. 눈을 감고 쪽쪽이를 빠는 아이가 잠이 들었나 싶어 쪽쪽이를 빼보려 하면 "으응! "하며 꽉 물고 놓아주질 않았다. 왠지 오늘만 참으면 쪽쪽이를 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아직 정신못차림) 몇 번의 회유와 설득을 하는 멍청한 짓을 다섯 번 정도 하다가 포기하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잠이 든 그날 새벽. 잠시 눈이 떠져 살펴보니 아이입엔 아무것도 없었고 옆에는 스스로 빼서 둔 것 같아 보이는 쪽쪽이가 얌전하게 놓여있었다. 아이는 나랑 달랐다. 끝내 비룡열차를 못탔던 나와 달리 아이는 마음이 진정되자 혼자 쪽쪽이를 빼는 용기를 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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