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쪽쪽이-1

아이에게 나를 투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by 쪼북


나의 육아를 이루는 것 중 가장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투사라는 버릇이다. 그것은 나에게 실이 되기도 득이 되기도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득을 얻고자 남발하면 반드시 크나큰 대가가 따른다. 그렇기에 투사라는 것을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있지만서도 멘탈이 약해지고 체력이 약해지는 순간 어김없이 비집고 뻗어 나온다. 이번이야기는 바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쪽쪽이 끊기 대작전


32개월을 돌파하는 나의 아이는 아직도 쪽쪽이를 물고 잔다. 유독 잠에 대해서 만큼은 예민한 기질로 태어났는지 2년 내내 통잠이라는 것이 없었다. 아이는 자주 깨고 자주 울었다. 이앓이도 심했다.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새벽 2시고 3시고 나가서 카시트를 태워야만 겨우 잠이 드는 아이였고 그렇기에 그 소중한 잠을 유지해 주는 장치역할을 하는 쪽쪽이는 구세주와 같았다. 그렇지만 빠르면 돌 이전에 끊는다는 쪽쪽이를 세 살이 되어서도 놓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 나의 불안을 지속적으로 자극했으니. 무엇인가에 집착적으로 의존하고 의지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점점 돌출되고 동그래지는 치아의 형태도 , 혀 짧은 소리를 하는 것도 불안했다. 쪽쪽이를 끊으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식초도 발라보고 자르기도 하며 시도를 했지만 아이의 강한 반발로 중단된 것이 돌 직후쯤이었나 그렇다. 그때는 여유가 있었다. 두 번째는 조금 더 정교해진 방법으로 도전했다. 쪽쪽이가 너어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며 요즘 한참 빠져있는 타요 구급차를 당근으로 공수해 와 제 손으로 직접 입원을 시키게 (?)했다. 아이는 "쪽쪼가 건강해야 해~꼭 나아서 와~"하며 현관문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이번엔 꼭 끊어야지' 첫 치과검진에서 대번에 쪽쪽이를 물어서 치열이 틀어진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마음이 급해져 왔다. 두 돌이면 끊을 때지. 시기도 근거도 충분했다. 아이도 잘 견뎠다. 중간에 엉엉 울며 깨긴 했지만 안아주면 다시 잘 자기도 했고.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잠은 못 자는 거 일주일정도를 새벽에 두어 번씩 깨어 발버둥 치는 아이를 안아재우며 얼굴은 노래져갔지만 궁극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이 정도쯤이야 뭐! 싶었다.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쪽쪽이를 찾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성공인가? 설레발을 치려던 그때. 아이가 조금씩 달라졌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발을 구르며 우는 날이 많아졌고 한번 시작된 꼬장(?)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마치 나의 인내심을 끊어내려 작심한 것처럼 행동했다. 아마 꾹꾹 참던 그 어린 마음이 어디선가부터 터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그중에서 가장 마음을 철렁하게 했던 건 우는 와중에 '쩌억쩌억' 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섞어 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새벽에 1시간에 한 번씩 깨어 20분씩 오열하는 밤이 시작되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하자 우리 부부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가 내는 소리가 쪽쪽이를 빠는 것을 흉내 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후 큰 충격에 빠졌다. 차라리 쪽쪽이 다시 내놔!! 하고 졸랐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고 그 마음이 분노가 되어 자꾸 튀어나왔으며 그것으로도 감당이 안되어 음성이라는 대체제를 찾아낸 것이었다. 남편과 상의 후 우리는 아이에게 쪽쪽이를 다시 돌려주었다. 아이는 다시 평온해졌고 시도 때도 없이 부리는 짜증도 사라졌다. 곧이어 아이는 2년 유아 인생 가장 고통스러운 '어금니 앓이'를 시작하였고 그즈음 어린이집에서 '낮쪽쪽이를 끊었다'라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어쨌든 하루 두 번의 수면 중 한 번이라도 쪽쪽이의 도움 없이 잠을 잔다는 것이 고무적이었으며 이앓이가 시작되면 어차피 끊었어도 다시 찾을 수 있다.라는 합리화를 하며 남편과 서로를 토닥였다.


그리고 저번주가 바로 5개월 만에 다시 쪽쪽이를 끊는 시도를 했던 날이다. 36개월 안에는 꼭 끊으라는 치과선생님의 말씀에 30개월을 넘긴 지금 마음이 급해진 내가 추진했다. 다행히 아이가 성장하며 사회적 시선이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쪽쪽이는 아파서 쪽쪽이 병원을 가야 해’ 라던지 ‘쪽쪽이를 자꾸 물면 마녀할머니처럼 된다.’등의 추상적인 핑계보다 편리한 방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소아과선생님의 적극적 지원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아기 때부터 꾸준히 다닌 탓에 히스토리를 파악하고 계신 선생님은 선뜻 그러겠노라 해주셨다. 그리고 대망의 날. 코감기약을 받으러 온 아이에게 단호함을 섞은 목소리로

“쪽쪽이는 이제 물면 안 돼요. 알겠지?”

“네!!!!!!!!!”

“쪽쪽이를 물면 주사 맞을 때 아프게 놓고 안 물면 안 아프게 놔줄 거예요. 알겠어요?”

“네!! 안무께요!!”

하며 아이의 우렁찬 대답까지 받아내 주시는 쾌거를 이뤄주셨다.


"자 선물로 사탕도 줄게요. 쪽쪽이는 이제 안녕해요~"

"감짜합니다."

데스크 간호사에게 받은 막대사탕까지 받아 챙긴 꼬맹이의 눈빛은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주사 안 아프게 맞고 싶어…”라며 쪽쪽이를 물지 않겠다 선언하였고 중간에 깨서 두리번댔지만 이내 혼자 잠을 다시 청하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쭈욱~잘 잤다. 이번엔 왠지 감이 좋았다. 쪽쪽이 떼려다가 소음민원까지 들어왔다던 친구의 아이가 32개월쯤 하루 종일 물고 다니던 쪽쪽이를 스스로 보내주었다던 말이 생각났다. 그땐 우리 아이가 그때까지 물겠냐는 오만한 생각을 했지만. 현재는 큰 위로로써 감명 깊어졌다.

'이쯤 되면 알아서 끊는구나. 괜히 불안해했네 휴!'

육아가 이제서야 내 가동범위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에 아침부터 기분이 무척 좋았다. 나를 계속해서 자극했던 불안은 남들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이 사라지자 나는 무척이나 인자해졌으며 또 지난 행적을 뒤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다.


'전에는 내가 마음이 급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지. 이번엔 쪽쪽이랑 이별을 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겠어'


쪽쪽이 파티에 4만 원짜리 인형과 3만 원짜리 케이크를 사는 극한의 사치도 부렸고 말이다.

"쪽쪽이가 보고 싶을 땐 요 인형을 만지면 돼~!"

"쪽쪽이 나라에서 쪽쪽이를 보내줘서 고맙다고 케이크를 보내왔네~우와! 맛있겠다!"

마흔 줄의 남녀 둘이 앉아 말도 안 되는 개뻥을 진지하게 쳐가며 세 살짜리를 현혹한다. 영문 모르는 아이는 마냥 신나서 쪽쪽이에게 생일파티 노래를 부르며 잘 가~~ 쪽쪽이~~ 다음에 또 만나~ 인사를 하고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틀째의 밤.

아이는 새벽 2시에 일어나 대성통곡과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안아주면 금방 달래졌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쪽쪽이를 무조건 물어야겠다며 소리를 지른다. 불안과 짜증이 트위스트를 추며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무려 7만 원을 써가며 파티를 열어줬는데!!! 너도 쪽쪽이한테 안녕!!!! 하고 인사했잖아. 왜 이제 와서 또 이러는 거야?라는 말을 애써 참으며 아이를 달래본다. 이래도 싫어. 저래도 싫어. 쪽쪽이를 물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결국 폭발한 나는 “진짜 넌 왜 다른 애들 다 끊는걸 아직도 못 끊어서 이러고 있어!!”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 음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소풍을 갔던 유원지에서 놀이기구가 무서워 못 타겠다며 발을 동동 구르고 울던 내 뺨을 차갑게 올려붙이며 엄마가 나에게 한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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