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비린내 나는 우정

어린이집 엄마가 알고보니 내 친구?

by 쪼북


도우엄마


그녀는 내가 아이의 엄마가 돼서 만난 첫 번째 학부모였다.


무자녀 시절 '내가 만약~'으로 시작되는 상상 속에서 나는 아이엄마들과 만나 하하 호호 서로의 고충을 나누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로망으로 그리곤 했다. 아이들도 친해지고 엄마들도 친해지고 서로가 모두모두 해피해피- 즐거운 공동 육아월드. 이 로망은 어릴 적 환경에 기인한다. 동네 근린공원에 돗자리를 피고 삼삼오오 고기를 구워 먹는 어른들. 그 옆 놀이터에서 한 번씩 돌아와 고기 한점 얻어먹고 다시 뛰어들어가는 그들의 자녀들. 주말만 되면 그렇게 깔아지는 돗자리 어느 곳에도 나의 자리는 없었기에 멀리서 바라보는 그 장면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고 부러웠던지. 그래서 꼭 아이를 낳으면 친구들과 공동육아를 해야지 결심했으나 나의 노산 이슈로 인해 이미 한참 전에 아이를 낳아 키울 만큼 키운 친구들. 혹은 아예 결혼. 출산. 육아에 관심이 없는 사회인친구들로 나뉘어있었고 그 둘 사이에도 역시 나의 자리는 없었다. 새로 친구를 만들어야 로망을 이룰 수 있었기에 다급해졌다.


"애기 엄마들이랑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내 질문에 선배엄마들은 시니컬한 입장이었는데,

"니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래. 엄마들끼리 친해져 봤자 아무 소용없다. 피곤하기만 할걸? "

아이로 친해진 관계는 아이로 인해 언제든지 틀어지기 마련이라는 근거 역시도 그럴싸했다.

교집합이라곤 꼬물대는 아이 외에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사회활동을 한참 왕성이 할 나이의 여성들이

무작위로 만나 하나의 타이틀을 나눠갖게 되는 사이 '어린이집 엄마'

아이들의 성장만큼이나 가변적으로 휘몰아치는 관계의 변곡. 그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잡음들에 대한 피로함의 토로. 듣기만 해도 기가 쭉쭉 빨린다는 호구조사, 기싸움, 아이 발달 공유.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껍질을 과도하게 벗기지 않기 위해 정밀한 컨트롤을 하며 '누구누구의 엄마'로 입지를 굳혀야 한다는 말에 꼬맹이시절 희미하게 그려놨던 로망을 고이 접어두고 확신의 히키코모리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래.. 뭐 고기는 고깃집 가서 구워 먹으면 되지 그게 뭐라고.."


아이는 돌이 지나고 첫 기관에 입소했다. 세 돌까지 친정엄마와 함께 가정보육을 하겠다는 야심 찬 일념은 내가 히키코모리 형 육아를 하겠다는 다짐과 더불어 가장 얼탱이 없는 목표였다고 회고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손주는 남의 손에 절대 크게 할 수 없다'라고 강력하게 외치던 엄마가 아이의 체력과 기질에 두 손두발 들고 돌이 지나 친정으로 도주(.)했다. '어린이집 빨리 보내야겠다;;' 라는 말과 함께.

엄마의 부재와 하잘것없는 나의 체력문제로 겨우 걷는 돌쟁이아기를 어린이집에 입소시켜 놓고 눈물의 일주일을 보냈다. 적응기간 아이와 함께 등원한 나는 그때 도우를 처음 봤다. 도우는 8개월에 입소를 한 같은 반 아이였다. 돌에 입소시키는 것도 너무 이른 게 아닌가 하며 자책하던 나에게, 여러모로 짱짱해 보이는 도우는 존재 자체로 위로를 주는 친구였다. 낯선 곳에서 한껏 긴장하고 움츠러든 내 아이의 모습과 정 반대로 도우는 이곳에서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나는 도우보다 도우엄마가 더 궁금했다.

이렇게 일찍 보낸 이유가 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정서에 별 문제가 없는지. 일찍 보내서 힘든 부분은 없었는지... 등등 같은 반 친구 엄마라는 유대감을 핑계삼에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었다. 그 시점부터 히키코모리가 되겠다는 원대한 소망도 사그라졌는데 태생이 엔프피인 내가 고립형 육아를 한다는 건 애초에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었으므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적으로 도우엄마를 만났다. 하원시간도 두 시간정도 차이가 나서 더욱 만나기 힘들었던 유니콘 같은 그녀.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어떻게든 연락처를 따서 친해져 보리라! 계획적인 접근을? 하였으나 그녀에게 큰 딸이 있다는 말에 큰 상실감을 얻었다. 도우와 5살 터울이 나는 큰언니의 존재는 도우엄마가 나 같은 조무래기와는 어울릴 수 없는 고렙의 엄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엄마는 육아초보에게서 얻을 정보도 없을 것이며 성장지표에 대한 스몰톡도 흥미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망과 신념은 어느새 모두 깨졌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여 나와 내 아이는 친구도 고기도 없는 외로운 육아생활을 이어나갈 것만 같았고 조금 우울해진 채 시간은 흘러갔다.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놀이터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아파트 놀이터 그곳은 바야흐로 만남의 장이었다.

나는 돌 전에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때우러 아파트 놀이터에 가거나 하지 않았으나 그렇지 않은 엄마들은 일찌감치 아기띠나 유모차에 태워 놀이터 데뷔를 하는 것 같았다. 서로서로 얼굴을 보며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보면 모르는 엄마가 와서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같은 어린이집에 입소하여 적응기간 동안 우리 아이를 봐서 알고 있다고 했다.(나는 모름) 그런 식으로 엄마들과 조금씩 안면을 트며 학부모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두 돌 즈음인 걸로 기억한다. 그 무렵의 아이들은 전두엽에 대공사가 시작되고 체력적으로 노쇠한 부모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탈탈 털리게 되는데 이때부터 공동육아의 빛이 발한다. 이번 연도 여름. 수족구가 무서워 수영장도 물놀이터도 아무 데도 못 가겠다며 울부짖는 어린이집 워킹맘들을 꼬셔 하원 후 워터룸 방문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 엄마들과 적극적인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하원 후 뭐 하세요?’

대부분 나와 같은 입장이었던 아기엄마들은 남아도는 아이들의 힘과 시간을 함께 소요하기로 동의하였고 내가 원하는 로망의 삶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선배들의 조언도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들 사이에서 불필요한 호구조사, 기싸움등은 허공에 메아리치는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전세예요 자가예요 물어봤자 대답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 22-30개월 아이들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시간을 소모하고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며 나도 함께 기절. 그날 아이엄마들과 나눈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휘발되고 리셋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기싸움’이라는 요소가 배제되자 , 친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구마구 만나고 친해지기 시작했다. 로망에 조금씩 가까워지고있었다.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키즈카페로 공원으로 함께 가는 날이 잦아졌다. 그러나 여기에도 도우엄마는 없었다. 아쉽게도 그녀와 나는 생각보다 더 접점이 없는듯했다.



게비린내 나는 우정


우리 사이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간 것은 도우엄마의 개업소식으로부터다. 그것도 '빵집'

자칭타칭 빵순이인 나는 온 동네 빵집을 다 순회할 만큼 밀가루에 진심이라 베이킹도 취미로 종종 하곤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빵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아니더라도 빵을 먹으러 가고 싶었다. 정말 진심이다. 작은 선인장이 담긴 화분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빵집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접점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평행우주 같은 건가? 할 만큼 접점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서로 겉돌고 있었는지 모른다. 엄마를 잃은 시기도, 엄마를 잃고 방황하던 시기도 같았다. 아이의 나이도 우리의 나이도 하다못해 남편들의 나이도 비슷했으며 가장 황당했던 건 집 호수까지 똑같았더란 것이다. 그녀의 첫 딸은 내가 가장 사랑하던 고양이와 이름이 같았다.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후로도 우리는 꾸준하고 열렬히 친해졌다. 요리하는 것도 나누는 것도 좋아해서 아파트 중앙광장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만나 음식을 나누고 하루의 이야기를 하며 깔깔댔다. 도우엄마는 내가 책을 냈다는 사실에 굉장히 만족할 만한 리액션을 보여주더니 그 길로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우리 집으로 게 먹으러 올래요?"

"좋아요! 꽃게 완전 좋아해요~!"


마침 집에는 엄마가 와있었고 나는 엄마에게 친구가 온다며 꽃게탕 대자를 주문했는데 엄마가 어떤 친구냐고 히스토리를 물어온다.

"응 그러니까, 어린이집 친구 엄만데 우리애들끼리는 완전 단짝이고. 나는 이번에 알게 됐는데 나랑 비슷한 점이 많고 성격이 밝아서 금방 친해졌지 뭐야. 내 책도 읽고 있대. 엄마 밥 한번 먹여주고 싶어서 그래"

"딸 버린 못된 할매라고 손가락질하겠구만"

"엄마 사람들은 생각보다 엄마를 볼 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 엄마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이제 그만 좀 신경 써."

아빠를 고발하기 위해 쓴 책조차도 자신의 치부가 묻어있다며 주변인들에게 ‘딸이 쓴 책이라며 ‘ 자랑하지 못한다던 엄마다. 하지만 도우엄마는 '우와! 책에 나온 그 어머니를 뵙게 되는 거예요??" 하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딸을 데리고 집에 온 도우엄마를 보며 엄마는 다소 긴장했다. 하지만 엄마가 만들어준 꽃게탕을 맛있다며 활짝 웃는. 또 말할수록 나와 언니와 비슷한 점이 많은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매료되어 엄마는 영업비밀레시피를 술술 털어놓았다.(대호감이란말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뺏고 뺏기고 싸우고 이르고 엉엉 울고 까르륵거리고 엄마들은 아이들의 입에 게살을 발라주고 열심히 웃고 떠들며 게를 먹었다. 행복한 밤이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가고 집엔 오랫동안 게비린내가 남았다. 남편이 묻는다.

“비린내 엄청나네. 이래서 게를 먹기가 싫어 손도 많이 가고. 왜 하필 게야?”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굳이 이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함께 먹고 싶은 상대가 생기면 게를 먹는 거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 무의식이 그리 향했나 보다. 이렇게 번거롭고 비린내가 나는 게를 먹는다면 그녀와 먹고 싶다고 생각했나 보다. 말을 하면서 게비린내가 어떠한 관계를 정립할 때 필요한 용기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아이와 친해진 사이는 아이 때문에 멀어진다.라는 말이 머리에 맴돌았으나 우리는 아이가 없었어도 언젠가 친해졌을 것이다. 조금은 다른 모습이지만 로망은 실현되었다. 돗자리 속 가족에 속하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던 꼬마는 자기 자식을 기어코 그 자리에 앉혀놓았다. 이런 식으로 나의 결핍이 하나씩 치유되는가 보다. 게비린내와 함께 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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