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이가 정말 싫어
금쪽같은 엄마들 에피소드 중 초반을 차지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통제광인 시어머니와 자식 버리고 나가는 게 특기인 엄마를 흉보는데 많이 할애했다. 그 이유는 조금 비겁한데, 언젠가 운 좋게 이 글이 출판되어 책이 되어 내 딸에게 당도했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할머니들의 이야기이기를. "아 뭐야 엄마 아빠가 맨날 하는 소리잖아~"라며 따분함을 느껴 흥미를 잃어주기를. 그리하여 뒷면에 펼쳐질 '사실 너희 엄마가 제일 금쪽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말 쓰잘데기없는 상상력과 계획성이다.
이 정도로 숨겼으면 되지 않을까? 이 글의 코어를 담당하고 있는 메인 금쪽이인 본인의 엄마로서의 첫걸음을 적어보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분리불안이 심했다. 엄마가 날 버렸기 때문이라고 우겼지만 과거를 되짚어보면 그것보다 훨씬 오래전이다.
외가/친가는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했다. 친가는 가족끼리 사이가 박살 난 지 오래였으나 외가는 가족끼리 단합을 자주 하는 분위기였다. 성격자체가 인싸재질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갑분싸 대장인 아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엄마는 외가모임에 갈 때마다 아빠를 빼놓고 가는 것을 감행했다. 가족이 셋인 것과 둘인 것은 차이가 크다. 아빠의 부재는 더욱. 우리의 사정을 잘 아는 외가식구들은 많은 배려를 해주었지만 왠지 나는 그들 사이에 속하는 것이 어색했다. 불쌍하니 곁다리로 껴준 느낌이 들었다. 또 이곳에서 더 자주 웃고 신나 보이는 엄마도 낯설었다. 스스로가 이방인 같았고 이곳에선 엄마만이 안전지대였다. 때문에 나는 모임 내내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칭얼대다 유독 호랑이처럼 무서운 둘째 이모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고 큰 이모가 반가워 이쁨 받으려 다가오는 사촌동생들을 모조리 밀쳐내 엄마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갖기도 모자라! 너희는 너희의 엄마 아빠가 있잖아. 나는 늘 부족하다구. 우리 엄마에게 다가오지 마."
그래서 아이가 싫었다. 나는 이렇게 전전긍긍 긴장하고 눈치를 보고 전투를 해야만 받아낼 수 있는데. 그냥 존재자체만으로도 엄마의 전폭적인 관심을 받는 세 살배기 사촌남동생이 싫고 미웠다. 어른들이 무턱대고 이뻐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보면 속에서 울렁거림이 요동쳤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누군가가 알려주었다면 해소되었을지도 모를 그 감정들은 결국 굳은살이 되어 오랜 시간 나와 함께 커간다. '난 아이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채.
커가면서 엄마가 지나가는 아이를 이뻐하든 사촌동생을 물고 빨 든 심드렁해지게 되었지만, 아이들 특유의
'나는 사랑받으러 태어났고 너희는 날 사랑해 줘야만 해'라는 에티튜드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그런 내가 삶을 송두리째 저당 잡혀야만 가능하다는 임신-출산에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에게 시달리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나 하나 돌보고 살기에도 바쁜 삶인데. 니가 또 뭐라고 나에게 당연한 사랑을 받으러 오는 거냐고 ,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가상의 자식에게 헛된 비난을 날리기도 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중립적 태도로 바라봤다. 나처럼 극단적인 무자녀 계획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런 와이프를 설득해서 아이를 갖자고 할 만큼 적극적인 편도 아니었다. 남편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회의를 느끼는 상태였기도 하고 '언젠간 낳겠지 평생 안 낳고 살겠어?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라는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다소 나이브한 편인 그의 성격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다른 입장인 우리 부부를 하나의 생각으로 묶어준. '좋은 부모라고 평가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자란 우리가 과연 스스로 만족할 만큼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속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못해서 일 것이다.
부모(엄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독립당한 내가 과연 내 자식에게 그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가.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르겠는데. 자식을 키우려면 이타적인 마음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는데.
아무리 속을 뒤적뒤적해봐도 나에겐 고양이에게 나눠줄 정도의 마음밖에 없었고 이것도 오랜 시간 적금 붓듯 겨우 쌓아 모은 것이다. 이것마저도 내 부모에겐 없지 않을까. 나의 부모는 이타심보다 이기심이 어울리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들에게 자식은 본인의 삶 언저리에 깔린 방해물이거나 이용해야 할 도구이거나가 아니었을까. 아빠는 죽을 때까지 나를 착취했으며 엄마는 나 포함 자식 넷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이유와 환경이 어찌 되었건 같은 상황에서 자식을 업고 도망가거나 자식을 두고 도망가거나 해야한다는 선택지를 50프로의 확률로 나누자면 나는 유전력으로 후자를 선택해버릴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부모적격검사에 가족력을 두고 본다면 완벽한 제로의 영역이다. 거기다 마빡에 '나는 아이가 싫어요'도 대문짝만 하게 붙어있다.
"난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서 애를 안 낳는 거야."
"근데 말이에요. 정말 낳기 싫으면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 아이를 위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거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거야."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꽤 키운 지인의 말이었다.
과시는 결핍이라고 끊임없이 나는 무자녀를 원한다. 아이가 너무 싫어하기 때문에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 가족은 거추장스러운 울타리일 뿐. 우리 둘만으로도 족하다라고 동네방네 외치는 것이 '사실은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는 것을 원한다'라는 결핍의 방증인 것일까. 나는 고뇌했다.
"사랑아 엄마가~.. 몽아 ~엄마가.." 고양이들에게 언제부턴가 나를 그들의 '엄마'로 지칭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나를 그들의 엄마로서 호칭했던 것 같다. 누구의 엄마로서 사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라고 생각한 것이 무색하다. 결핍된 마음들을 결혼생활을 통해 조금씩 채워지며 순간순간 스쳐가는 생각들이 있었다.
'고양이에게 하는 것만큼만 해도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에서야 고양이와 인간육아를 빗대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그 생각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 같다.
'내 남편은 우리 아빠와 전혀 다른데, 그럼 동일조건이 아니니까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엄마도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았으면 , 날 버리지 않았을 텐데.'
'나도 남편과 함께라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 말이다.
남편은 자영업자다.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만 쉰다. 공휴일/토요일 모두 출근한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마중하고 나면 7시까지는 혼자 지낸다.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생활을 하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그것도 몇 년째. 시간은 흐르고 결과물은 그대로다. 친구들은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가고 취미생활은 소박한 결과물을 남긴다. 일을 하여 돈을 벌고 그것을 소비한다. 결과물이 연결이 되지 않고 흩어지는 기분에 허망함이 느껴져 친구들과 같이 사업을 도모하기도 해 보고 취미를 파고들어 수익성을 남겨보기도 한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다. 남겨질 수 있는 더욱 의미 있고 화려한 것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감당하지 못한 여유시간들은 소화되지 못하고 잉여에너지가 되어 불안으로 자리 잡았다. 불안은 모든 업무가 끝나 더 이상 할 게 없는 해가 질 무렵의 오후부터 뚜렷한 양상을 띄기 시작했는데 주부로써 해야 할 건 찾으려면 많았지만 무조건 해야 하는 것과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장을 보지 않으면 외식을 하고, 청소와 빨래는 조금 미뤄둬도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취미 삼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시간부터 그냥 부유하듯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럼에도 내가 없이 돌아가는 집구석(?)은 편하기도 했지만 때때로 짙은 고독감을 주었고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오후 4시부터 늘 만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같이 카페도 놀러 가고 장도 보고 밥도 해 먹고 할 텐데."
헉. 이런 생각 역시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인 걸까. 나는 그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이였다.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니야 역시 아니야 내 주제에 무슨.. 하며 포기를 하며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애를 낳으면 안 되는 이유를 합리화하기 바빴다.
"고양이들 나이도 너무 많고.."
10살 너머의 고양이들이 세 마리나 있었다.
"근데 얘네들 다 떠나면?"
서로를 부모자식으로 정해놓고 나를 엄마라 그들을 자식으로 칭하는 고양이들이 모두 떠난다면 과연 그 상실감을 버틸 수 있을까. 아이가 있다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애를 낳는담"
필사적으로 애를 낳아야 되는 이유와 애를 낳으면 안 될 이유를 갈라 순위를 매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너희가 늙으면 곁에 아무도 없잖아."
"애를 우리 수발시키려고 낳나."
"너희 그렇게 열심히 돈 벌어놓고 애 없으면 그거 누구한테 물려줄래?(시어머니말씀)"
"우리가 다 쓰고 죽죠 뭐."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에 엄마들도 반포기한 눈치였다. 우리 엄마야 뭐 애를 낳으라 마라 할 입장은 아닌지라 그래 너희들 알아서 잘 살아라. 였지만 시어머니는 정말 쟤네들이 애를 안 낳고 살 작정인가? 하는 불안함을 숨기지 못하고 우회적인 설득을 시도하길 반복하셨다. 남편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잠시 주춤하셨지만 마음 한켠엔 할머니가 되고 싶단 욕망을 버리지 못하시고 계신 것 같아 보였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로 환경오염, 지구의 기온상승 이야기까지 나오자 나는 지쳐버렸고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지인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래. 어쩌면 나는 정말로 애를 낳고 싶은 것일지도 몰라. 그런데 잘 키울 자신이 없잖아? 하고 싶은걸 다 하고 살 순 없어. 잘하지 못하지만 하고 싶다고 시작하는 것은 취미생활로 족하지 자식계획을 그런 식으로 결정할 순 없는 일이지.'
남편의 인생플랜엔 무자녀란 단어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유자녀를 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남편머릿속엔 1. 회사이사를 하고 2. 집이사를 하고 3. 회사가 좀 안정되면 아이를 낳겠다.라는 계획은 있었지만 1번밖에 이루지 못했고 2,3은 무기한 보류상태라 달성률이 한참 남았기에 심리적 마지노선이 넉넉한 듯 보였다.
오히려 계획이 분명한 내가 자꾸 결단을 내고 싶어 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상정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체념하고 하는 것이 어떠한 고행처럼 느껴졌고 그만하고 싶었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가 없는 사람이야. 나는 나밖에 몰라. 그리고 분명 나의 아이를 사랑하지 못할 거야. 그럼 그 아이는 또 사랑에 허덕일 테지. 형편없는 엄마가 될 바엔 영원히 목마른 딸로 살래. 따듯한 봄이 오면 무조건 할 거야. 딩크선언"
그리고 일주일 뒤. 나는 눈이 내리는 겨울날. 임신을 확인하고 엄마가 되었다.